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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준 Jul 01. 2017

#1 여기는 호스피스입니다.

세상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1 여기는 호스피스입니다.



호스피스 병동이 자리하고 있는 6층은 병원 내 다른 층과는 조금 달랐다. 기존의 병동이 조금 묵직한 흰색으로 칠해져 있었다면, 이곳은 아이보리색과 옅은 핑크색, 따뜻한 흰색이 뒤섞여 층 전체를 뒤덮었다. 이제껏 봐왔던 병원의 모습이 ‘전문성’을 강조하는 대학교에 유사했다면 여기는 특이하게도 ‘경건함’이 묻어있는, 수도원에 가까웠다. 그래서 그럴까? 정숙을 요구하는 식의 조용하고 묵직한 공기층과 잘못하면 크게 혼날 거 같은 분위기가 동시에 들었다. 으레 겁이 많은 나는 이런 분위기에 짓눌려 옷매무새를 바로 했다.

병동 입구 바로 앞에는 떡하니 안내데스크가 있었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데스크엔 누구 하나 자리하고 있지 않았다. 처음엔 운도 지지리 없다 여겼는데, 유심히 살펴보니 그건 또 아닌 거 같았다. 데스크에는 방금 누군가가 자리하고 있었다가 잠시 자리를 비운 흔적조차도 없었다. 마치 원래 아무도 없었다는 듯이. 

  

“여기서 계속 기다려야 하나?”


시간을 확인하니 대략 1시 5분. 1시 30분까지 도착하라 했으니 이 정도면 약간 여유를 가져도 되겠다 싶어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기다리다 보면 간호사 선생님이 한 분은 이 길을 지나가겠지. 그러면 용기를 내 물어보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간호사 선생님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10초. 10초. 그리고 또 10초. 간호사 선생님을 뵈면 어떻게 물어볼까 머리로 끊임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1분. 1분. 그리고 또다시 1분. 채 5분도 되지 않아 나는 다급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다가 10분이 지나도 간호사 선생님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래서 첫날부터 지각이라는 끔찍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면, 봉사 첫날 이후 내 행방이 묘연해질 거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어떻게 다짐하고 시작한 건데..!

그래서 일단 가까운 쪽부터 확인하자는 생각에 발걸음을 옮겼다. 돌아다니다 보면 간호사 선생님이나 아니면 다른 봉사자 선배님들을 만나 뵙지 않을까 싶어서. 때마침 옮긴 그곳은 만남의 광장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꽤 넓은 공간이 편안하게 조성되어 있었다. 한쪽에는 성당이 자리해 있었는데, 마치 병동 전체의 분위기를 아우르는 것 같았다. 공간 내 옹기종기 원형 테이블이 놓여 있었는데, 그곳에 앉아 있는 몇몇 ‘환자와 가족들’(이라 예측되는 사람들)은 그곳에서 옹기종기 모여 담소를 나누었다. 그들의 얼굴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피로감이 느껴졌지만, 이 공간이 주는 특유의 편안함이 그런대로 그들의 감정을 균형 상태로 맞추는 듯했다.

이내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각각의 병실이 차례대로 눈에 띄었다. 복도에는 여러 병실이 질서 정연하게 나열되어 있었고, 각각의 병실 복도에는 여러 사람들로 듬성듬성 채워져 있었다. 산책하는 환자, 그걸 도와주는 가족들, 부산히 움직이는 간병인, 처방을 설명하는 간호사 등 복도는 묵직한 분위기 속에서도 저마다의 움직임으로 조금은 어수선했다. 그런 어수선함 혹은 약간의 다급함이 괜스레 말을 걸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최대한 눈에라도 띄어 볼까 싶어 “저 여기, 문제가 있습니다.”라는 표정을 지으며 두리번거렸지만 결과적으론 아무도 내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거 병동 안 환자들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다.  



병실 한 구석엔 외부와의 단절을 희망하듯이 커튼으로 침대를 전부 가려놓았다.

다른 쪽 침상엔 피로감이 짙은 간병인이 간이의자에 몸을 구겨 넣은 채 누워있었다.

복도 한쪽에선 절로 귀가 기울어질 만큼 환자와 보호자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복도 구석에선 약간 울음기 담긴 목소리로 통화하는 어느 가족의 모습이 보였다.

복도 끝 방에선 환자가 숨을 거뒀는지 가족들의 울음소리가 문 너머로 흘러나왔다.  



이런 곳임을 알고는 있었는데, 또한 이런 곳이기에 선뜻 봉사를 신청한 거였는데, 막상 피부로 다가온 병동의 현실은 무섭고 또 이질적이었다. 매일 건강한 사람들 틈에서 살다가 ‘죽음이 임박한 사람들’이 가득한 이 공간과 그들이 처한 현실을 마주하고 나니 다른 세상에 툭하니 떨어진 기분이었다. 

TV로도 많이 봐왔고, 책이나 영화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을 빈번히 접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메디컬 드라마에서도 죽어가는 환자는 흔한 소재였고, 그게 아닐 지라도 병원이란 곳이 원래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 곳이니까. 더불어서 봉사 전 이수해야 하는 교육을 통해 호스피스가 무엇인지, 어떤 이들이 오는 건지 확실하게 배웠기에 ‘기초적인 건 다 알고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역시 이론은 이론이었나 보다. 

시한부 환자들이 마지막으로 머무는 곳. 더 이상 완치는 불가능해 통증 완화를 목표로 하는 곳. 그래서 죽는 그 순간까지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 이론적으로 이보다 호스피스를 명쾌하게 소개할 수 있을까? 이 문장만 접해도 누구든 여기가 어떤 곳인지 충분히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호스피스 병동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더불어 존재했다. 그저 단순히 몇 줄의 문장으로 이곳을 설명하고 상상하기엔 여기에는 너무나 많은 슬픔과 아쉬움, 안타까움, 비통한 의문 등이 가득했다. 자신의 감정조차도 100% 표현하지 못하는 마당에 어찌 다른 이들의 아픔을 몇 줄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걸 깨달은 순간, 걱정과 불안함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아, 왠지 못할 거 같은데.. 잘못 선택한 거 같은데..’



부정적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몇 번의 꼬리가 잡혔는지 모를 정도가 되자 ‘이러다가는 봉사 첫날부터 도망칠 거 같다’는 두려움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얼른 주변에 있는, 그나마 덜 바빠 보이는 간호사 선생님께 ‘자원봉사자 실’이 어디인지 여쭈어보았다. 시간도 얼추 30분 가까이 되었기에 적절한 시간 배분이다 자부하며 얼른 문을 열고 봉사실 안으로 들어섰다. 약간 당차게 혹은 다급하게 문을 여는 순간, 나는 열 분 가까이 되시는 선배 봉사자분들과 일제히 눈을 마주쳤다.



‘아.. 나 정말 못할 거 같은데..’




그날 처음으로,

나는 호스피스 병동에 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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