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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웅이 집 Jun 04. 2023

토요일, 오전 여덟 시

미뤄둔 일을 하기 딱 좋은 시간


최근에 이래저래 마음과 머리가 바쁘다, 토요일 오전에 눈을 딱 뜨고 별다른 계획이 없어 행복했다 매우. 평소 같으면 급하게 할 일 들에 슬로 모션을 걸어보며 느릿한 시간을 보냈다. 출근길에 후다탁 해버리는 이불 정리는 토요일의 힘으로 가지런히 펴서 매트리스 위에 고이 모셔놓고, 반듯반듯 모습을 보고 뿌듯해하는 시간도 추가했다. 그간 미뤄둔 일을 도장깨자는 마음으로 아침 댓바람부터 노트북 수리를 위해 집을 나섰다. 백팩에 노트북 하나 넣어 마을버스를 타고 AS센터로 곧장 가, 노트북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귀갓길엔 버스 한 정거장 거리를 걸으며 주변 가게 간판 구경도, 새파란 하늘도 열심히 쳐다보았다. 점심시간이 다가오니 콩국수를 해 먹으려 마트에 가서 콩국과 소면을 사고 아침보다 조금 무거운 백팩을 메고 집에 도착하니, 여유 시간이 끝남을 알리는 의식으로(?) 창문을 열고 가만히 앉아 바람을 쐬었다.


와중에 못다 한 일 2개가 기다리고 있었다. 글쓰기와 해외 캠핑용 항공권 구매. 이것까지 했으면 딱 좋았을련만, 여유 시간을 탐닉하다 약속준비 마지노선 작두를 타고 토요일 셧터는 내려가고야 만다. 일요일 아침이 밝자 입으로만 예약하던 항공권을 구매하고, 어둠이 찾아온 지금은 고요히 글쓰기를 위한 타자를 치고 있다.


토요일 아침에 눈을 딱 떴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빈 시간들이 행복했다. 하루종일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싶고. 일요일 오전에도 이런 느낌일까 생각해 봤는데 다르다. 일요일 오전은 월요일 전날이기도 하고, 토요일 오전에 여유의 맛을 이미 느껴봐서인지 감흥이 덜하다. 뭐 어찌 됐든 간에 이런 빈 시간들이 공존해야 마음이 너그러워지진다. 금요일 퇴근길엔 그간 먹고 싶던 추로스도 사고, 밥  하기 귀찮으니까 제철 해물탕도 포장해 오고 와중에 날씨는 좋고 마음은 바빴는데, 토요일 아침이 나의 부산한 마음을 해소해 주려 기다리고 있었다.


노트북 배터리 교체를 하며 팔만오천원의 교훈도 있었다. 기사님이 상담해 주시길 노트북 전원을 제대로 끄지 않고 화면을 닫아버려서 혼자서 계속 바쁘게 돌아가다 메인보드가 배터리에게 필요 이상으로 에너지를 쓰고 있다, 좀 이상하다 하고 차단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배터리도 필요 이상으로 뜨겁게 일하다 힘들어서 뻗은걸 보고, 우리네 삶과 다르지 않다는 점과(?) 한 템포 쉼은 언제나 필요하다 싶었다. 지난 3주는 촘촘하게 보내느라 틈새가 없었는데 이번 주말에 그 틈을 찾은 거 같아 기뻤다. 날이 좋고 하고 싶고 놀고 싶은 게 많을 때 마음이 바쁜 것도 괴로움의 한 종류라는 이 영원한 진리 속에서, 틈의 시간을 계속 사랑해야하는 이유다. 마음이 다급할수록 틈의 시간을 틈틈이 소환해 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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