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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웅이 집 Dec 25. 2023

이공이삼을 보내며

느슨하고 무난하고 단단하게

올 한 해를 정리하려니 굵직한 것들을 떠올려 본다.

쉴 틈 없이 지나왔고 무엇이 있었나 떠올려 보는데 올해처럼 달력이 이토록 화려하고 촘촘한 때가 없었지만 이런저런 게 다 모이면 여전히 무난하고 단단한 사람이 되는데 집중하고 싶은 거 같다. 계절에 맞춘 이벤트들은 전보다는 좀 느슨하게 크게 한 두 개씩 하는 쪽으로 바뀌기도 했다. 예를 들어 봄이면 꽃을 보고 여름이면 물놀이에 가을이면 단풍 구경을 나서는 것들. 이번 크리스마스도 장박 가서 맛있는거 먹으면 되지 싶었고 스페셜하게 뭘 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예전보다는 이런저런 세상살이에 무심해지고 물욕도 크게 없어졌는데, 이런 내 모습 어쩔 땐 좋고 어쩔 땐 건조하기도 하다. 건조함이 휴식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조금 늙은 걸까요^.^


그중 근래 한달인 12월을 돌아보면 멤버사 교육 과정을 꽉꽉 차게 보냈고, 캠핑 장박을 시작했고, 차를 바꿨다.

교육 과정과 관련된 것들은 본 과정이 아직 남아서 마무리된 후 1월에 다뤄보고 싶다. 일단 가서 느낀 건 규모가 큰 프로젝트를 주로 5-6 연차의 담당자들이 굉장히 잘 이끌어 간다는 점에 회사의 미래가 밝다는 생각(회사가 곧 나다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임에도) 그들에게 전적으로 맡길 수 있는 기업 문화도 많이 바뀌었다 싶다. 주어진 상황을 주도적으로 파바박 끌고 가는 친구들을 보며 나도 시간을 밀도 있게 보내야겠다는 은은한 자극도 받았다. 7년차 때부터 선배들이 뭔가를 전문적으로 해야 한다 라는 얘기를 자주 할 때면 나를 증명해내라는 건가 등의 다소 과한 거부 반응을 느꼈던 거 같은데, 이번 교육과정에서 깨닫게 된 이유나 동기부여가 과거의 거부반응을 해소해 주었다. 과정 특성상 반백명의 이름과 얼굴을 빠른 시간 안에 외워야 하는 게 어려웠는데, 이미 익숙한 사람과 환경에 녹아들어 새로움의 역치를 반증하는 시간이기도.


캠핑 장박 또한 이야깃거리가 참 많은데, 일단 요즘 보기 드문 빌리지 문화가 흥미지다. 캠핑장엔 30동의 텐트가 모여 있는데 입촌식도 하고 모르는 집에 들어가서 술 한잔하고 선물 주고받는 일도 잦고, 물물 교환도 자주 하고, 5-7세로 추정되는 예쁜 일진 무리 온냐들이 우르르 무리 지어서 뛰어다니는 것도 재미있다. 어른 애들 할 것 없이 피구나 야구로 공이 통통 튀어 다니는 소리들과 옆집 대소사를 다 알 정도로 방음을 기대할 수 없는 점, 마을 사람들마다 저 집은 저렇다더라 요 집은 이렇다더라 하는 이야기들에 사생활은 조금 보장되진 않지만, 정겨움과 신선함이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곳이다. 캠핑을 오래 해서 장박도 그냥 준비하면 되지-하다가 큰코다쳤다. 장박은 오랫동안 지켜왔던 미니멀리즘의 저 반대편에 있던 영역이라 안전과 추위를 지키기 위한 집을 짓는데 미니멀과 맥시멀의 경계를 잘 타보려 애쓰는 중이다.

 

마지막으로 차를 바꿨다. 결혼 하고 경제적인 목표로 둔 것 중에 하나였는데, 내년 10월에 출고된다던 차가 트림(옵션 모음집)을 세 번 바꾸면서 계약한 지 3주 만에 나왔다. 전에 타던 차가 오래 됐으니 내/외부의 요즘 기술(?) 대한 체감은 더 크고, 장박을 시작한 시즌에 장거리 주행을 주로 하게 되니 생각한 것보다 만족감은 크다. 차를 고르면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포인트가 세 가지 있었는데, 바퀴 휠까지 올블랙인 점, 내부 디스플레이와 음향 옵션, 트렁크 적재공간이 넓은 점이었다. 해서 내가 좋아하는 부분만 강조된 사진을 SNS에 순서대로 올렸는데, 주변에서 본인들이 추측한 차종을 다양하게 얘기하기 시작한 게 재밌다고 생각했고, 좀 더 반응을 봐야겠다는 생각에 마지막은 트렁크의 쓰임새가 좋다고 느낀 사진을 올렸더니 승합차냐는 반응까지 있었다. 혼자만 빵 터진 소소한 에피소드였는데, 인스타그램 특징인 거 같기도 하다.


무튼 계획대로 차곡차곡 예산이 모이면 해야겠다 싶은 것 중 하나였고, 레퍼런스가 생겼으니 다른 목표치들도 차근히 해나갈 수 있다는 확신도 들었다.


그러다 1차원적으로 만든 경제적 목표들을 이루고 나면, 그다음 스텝은 뭐가 되려나 싶었다. (얼마 전 유퀴즈 방송에 프로게이머 페이커가 나와서 처음엔 돈을 벌고 싶어서 게임을 하다가 목표를 어느정도 이루고 나니 존경 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얘기한 것처럼) 안전한 거처와 이동수단이 있다고 해서 그것만이 인생을 풍부하게 만들어 주지 않는다는 걸, 짧지 않은 사회생활동안 또렷히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시 이 글의 첫 문장으로 돌아가서 내 자체가 멋진(?) 사람이 되는 게 원하는 게 될 거 같다. 예를 들어, 목적을 잃고 경제적인 것만 좇으면 겉은 화려하지만 알맹이는 비어 있을게 분명하고, 사회활동만 좇으면 가족이나 주변 인간관계가 소원해질 게 분명하다. 그래서 목표는 수단 자체가 아니라 이 글의 처음을 장식한 무난하고 단단한 사람이 되는 것..! 해가 바뀌고 또 이런저런 일들이 벌어지겠지만 그 와중엔 크게 변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면모가 될 수 있기를. 간혹 방향을 잃고 흔들리는 동공이 보일 때 되새기며 마음의 안정을 찾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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