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을 해본 사람이라면 종종 이런 상황을 관찰하곤 한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고 싶은 조급함에 앞차량을 추월하는 상황 말이다. 나는 노인처럼 정속주행을 하는 편이라, 뒤따라오는 차들은 어디서든 나를 앞지른다.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 '빨리 안 오면 와이프가 밥 안 차려 주나?', '드라마 볼 시간인가?', '화장실이 급한가?' 흥미로운 점은 나보다 먼저 달려간 차량들을 어김없이 횡단보도에서 만난다는 사실이다. 마치 "까꿍~"이라도 하는 듯이 말이다.
운전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차 안에 있다는 이유로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해외의 아우토반이나 사막을 가로지르는 도로가 아닌 이상, 한국의 교통 시스템 상 빨리 간다고 해서 큰 시간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들은 엄청난 리스크를 감수하며 과속을 하는데, 그 이유가 뭘까?
어쩌면 무의식 중에 자신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안전의 가치성은 돈을 버는 것보다 훨씬 소중한데도, 종종 이를 망각하니 말이다.
문득 군대 있을 때가 생각난다. 내가 지냈던 부대에는 '5분 대기'라는 것이 있었다. 5분 안에 모든 장비를 챙겨 60 트럭 앞까지 집결해야 하는 비상사태를 말한다. 사이렌이 울리면 이등병부터 병장까지 준비에 돌입한다. 재미있는 점은, 병장은 여유롭게 주변을 살피며 착착 준비를 마치는 반면, 이등병들은 패닉에 빠져 동물들처럼 날뛴다는 것이다. 그 바람에 물건도 떨어뜨리고 엉망진창이 된다. 제삼자가 보기에 마치 할리우드 액션 영화 같지만 실속은 없다. 집결지에 도착한 모습은 더욱 대조적이다. 병장은 깔끔한 군복을 빼입고 반듯하게 서 있는 반면, 이등병들은 전쟁터에서 죽다 살아난 것처럼 초췌하기 그지없다.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격언이 있다.
급할수록 천천히
하지만 막상 급박한 순간이 오면 이 말을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감정에 휩싸여 이성적 판단력을 잃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에 늘 되새기고 연습해야 한다. 병장도 한때는 이등병이었다. 계급이 올라갈수록 경험이 쌓이면서 습득하게 된 것이다. 결국, 천천히 신중을 기하는 연습을 통해 체득하는 게 답이다. 그러니 급하다고 목숨 담보로 서두르진 말자. 속도를 줄이는 것은 좁혀진 시야와 생각을 넓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다주니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