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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Jul 22. 2024

청년 스타트업 '8 라운지': 마치며

작가의 메시지, 그리고 필명 '제로'의 의미



우리는 모두 한 번쯤 "돈에도 눈이 달려 있으니 돈을 좇지 말라"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불나방처럼 화려함을 좇지 말라", "부정적인 생각은 떨쳐버리고 긍정적으로 살아야 한다", "사람이 돈보다 중요하니 사람을 쫓아라"라는 말들도 익숙할 것이다. 이 말들은 모두 지혜롭고 옳다. 이런 어록들을 곱씹어 보면, 하나씩 실천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런데 왜 현실에서는 이를 지키기가 어려운 것일까? 돈을 좇지 말라고 해도, 현실은 우리의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현실에서 돈을 좇지 않을 수가 있을까? 특히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우리가 각종 미디어에서 접하는 많은 말들은 대부분 결과 중심적이다. “나는 이렇게 성공했으니, 너도 따라 해 봐”라는 식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 방법을 시도해 보면, 보인 것과는 사뭇 다른 결과가 나온다. 그 방법이 일부 사람들에게는 성공을 가져다주겠지만, 대부분 사람에게는 단지 구독자 수를 늘리는 역할만 하게 된다. 이런 현상의 원인은 무엇일까? 나는 본질을 중심으로 한 전체적인 균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현자들의 말은 반은 맞으나 반은 생략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자들이 의도적으로 정보를 숨겼다는 것이 아니라, 해석에 따라 그렇게 보인다는 뜻이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현자들의 말이 현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자산가들의 어록을 살펴보면, 그들의 말은 주로 미래를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사람을 쫓아라’라는 말은 사람이 돈과 함께 다른 무형의 가치를 가져다주기 때문인데, 이는 즉시 나타나는 결과가 아니라 미래에 나타나는 결과를 의미한다. 복리이자 또한 처음에는 미미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가치가 커진다. 부동산 투자, 가치 투자도 마찬가지로 미래에 대한 투자다. 그렇다면 왜 성공한 사람들의 말은 대부분 미래를 향할까? 이들은 생활의 모든 면에서 미래를 고려하며 사고하고 행동한다. 심지어 그들의 취미가 미술품인 것만 보아도, 시간의 가치를 얼마나 높게 평가하는지를 알 수 있다.


나를 포함한 서민들은 어떨까?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현실의 중력은 미래의 중력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좀 더 쉽게 설명하면, “9(현실 중력) : 1(미래 중력)”이라는 비율로 표현할 수 있겠다. 이러한 비율에서 ‘현실의 중력 9’라는 부분은, 우리와 같은 일반인들에게는 현실의 중력에 맞서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머리로는 현실의 중력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몸은 중력의 영향을 받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고 제약을 받게 된다. 그래서 매년 희망찬 새해가 찾아와도 변한 것은 크게 없다. 다이어트도 잠시뿐이고, 금연 또한 마찬가지다. 계획대로 흘러가는 일은 거의 없다. 마음만은 항상 미래에 대한 희망만 가득하다.


이러한 문제는 나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내가 그 장소상황에 놓여 있어서, 그곳에서 내 몸이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일차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즉, 내 몸을 새로운 상황에 노출돼야, 그다음에 뒤따르는 것이 정신적 변화다. 그러나 새로운 상황에 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이는 현실의 중력이 강력하므로 행동을 제약하는 힘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미래에 대한 꿈을 품으면서도,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잠시 생각해 보자. 왜 우리는 현실의 중력에 저항하는 데 이렇게 큰 노력이 필요한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큰 용기를 가져야 할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실의 중력은 9이고 미래의 중력은 1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숫자들은 우리의 인내력과 집중력을 대변한다. 대다수 사람은 현시점의 현실에만 초점을 맞춰 생활하며, 그 순간을 최대한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문제는 현실이 항상 현실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현재라고 느끼는 순간은 1초 후에는 과거가 되어 버린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현실에 충실히 살아가는 모든 순간은 곧 과거가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의 정신은 희망만 점차 커져만 가고, 그에 비례하여 몸은 현실의 중력에 묶여 점점 줄어든다. 이 점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왜 자산가들이 그토록 미래를 중심으로 현재를 계획하는지를 말이다. 그렇다. 미래는 곧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시계가 거꾸로 가지 않는 한, 시간은 항상 앞으로 흐른다. 그래서 미래를 세밀하게 계획하고 기다리는 것은 다가올 현실을 준비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원리를 자산가들은 용기를 내어 9 : 1의 중력과 싸우며 조금씩 체득해 왔다. 다시 말해, 어록에서 생략된 절반은 바로 이러한 중력과의 싸움이자 용기였다. 자산가들도 처음에는 몸을 미래에 위치시키기 위한 싸움을 격렬하게 벌였을 것이다. 내 몸이 미래에 위치하게 되는 순간, 마치 달리는 기차에 탑승하는 것처럼, 시간과의 싸움에서 점차 승자가 되며 미래의 중력은 1에서 3으로, 3에서 6으로, 6에서 9로 점차 바뀌게 된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고,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도 있다. 아침이 있으면 저녁이 있고, 탄생이 있으면 죽음이 함께 공존한다. 이처럼 모든 것은 음과 양의 흐름으로 결국 0으로 수렴한다. 있던 것이 없어지고, 없던 것이 생기는 것. 바로 이것이 세상의 이치라 한다. 이는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므로 세상은 0이란 수렴 구간을 향해 균형을 이루며 살아간다. 0은 무(無)이자 공(空)이지만, 다른 숫자와 결합하면 그 수를 방대하게 불려주는 마법 같은 숫자다. 가득 차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 빈 그릇은 그만큼 음식을 담고, 공간은 그만큼 가구를 담을 수 있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그만큼 채운다는 뜻이고, 돈을 좇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것을 그만큼 더 채운다는 뜻이다. 이런 상대적 균형에 대한 세상 이치를 알게 된다면, 극한의 부정이나 긍정을 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성공했다고 자만하거나, 실패했다고 절망하진 말자. 창업을 준비하는 모든 사람은 비어있는 상태에서 시작하므로, 이제부터 가득 채워나가는 일만 남았다. 이제부터 가슴 충만하게 함께 달려 나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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