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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눕 Jan 31. 2023

일상이 흔들린다


“여보 큰일 났어”

“아니 왜 또?? 어이구, 뭔데?”


남편의 목소리가 몹시 다급하다.

여느 때처럼 별일 아닌 일에 괜히 요란 떤다며 퇴근 후 늘어질 대로 늘어진 몸을 이끌고 터벅터벅 거실로 나왔다.


“엄마 암 이래.”


건강 검진 결과지를 들이미는 남편의 목소리는 떨렸다.  남편도 나도 그저 한 동안 말없이 서로 바라만 보았다.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그렇게 건강하고 강하신 분이 암이라니. 우리 부부는 오히려 평소 지병이 있으신 아버님 건강을 더 살피던 차였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겠어."

평소 이성적이고 판단이 빠른 남편이 말했다.


순간 5년 전, 친정 아빠가 암 진단을 받으셨던 날이 떠올랐다.  너무 놀라고 슬퍼서 우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많이 놀랐을 남편을 대신해, 이번엔 최대한 정신을 차리려고 부단히 애썼다.  눈을 질끈 감고 떴다가를 반복하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상급병원 진료 요청을 위해 내원이 필요하다고 적혀있었기에 다음날 가장 빠른 시간으로 진료 예약을 했다.  그 후 위암 명의가 있는 병원을 검색하고 그중 온라인 예약이 가능한 대학병원 2곳을 숨 가쁘게 예약하였다.  


혹시나 다니기 더 가까운 거리의 병원 중 더 빨리 예약 가능한 곳이 있을까 싶어 리스트를 다시 한번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리고 대학 병원 중 전화 예약만 가능 한 곳들은 아침 일찍 전화로 예약 가능 일자를 확인하여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가까운 대학병원 진료를 볼 수 있도록 계획하였다.  그리고 남편은 다음 날 휴가를 내고 시댁에 가서 어머님을 모시고 병원에 가서 소견서를 받기로 하였다.  


“모르고 계실 텐데, 가서 뭐라고 말씀드리지?" 남편은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에 일어나서 출발해야 하는 남편을 토닥여 겨우 잠이 들도록 했다.  덩치가 산만한 남편의 손을 꼭 잡아주며 걱정 말라고 계속 안심시켰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시댁에 도착한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이미 다 알고 계셨어.  대학병원 진료 보셨고 추가 검사도 이미 다 하고 오셨대."


바로 어머님께 전화를 걸었다.


“엄마 초기인 거 같대.  걱정하지 말어라.  다음 주에 가서 수술 가능 여부 확인하기로 했어.  너 괜히 신경 쓰게 해서 어떡하니?"


담담한 척 애써 꽉 붙들고 있던 멘털이 어머님 목소리를 듣자마자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아이처럼 그냥 엉엉 울음이 쏟아졌다.  


평소 대범하시고 용감하셨던 어머님은 이번에도 자식들에게 피해가 갈까 싶어, 혼자서 병원을 이미 다녀오셨다.  




친정 아빠의 암 진단 후 한 동안 제정신이 아닌 채로 살았다.  자다가도 밥 먹다가도 일하다가도, 일상 중에 한 번씩 생각날 때면 터져 나오는 울음을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무심했던 나를 자책하며, 시부모님 건강 챙기며 병원 모시고 다닌 적은 있어도, 친정아빠 병원 한번 모시고 가지 못한 내가 너무 원망스러웠다.  


인터넷에 올라온 글들과 관련 카페 글들을 샅샅이 뒤져 몸에 좋은 것, 해로운 것 등을 빠짐없이 공부하며 눈물로 지새운 많은 날들이 떠올랐다.  


아빠는 다행히도 현재 상태를 유지하시며 비교적 건강하게 지내고 계신다.  아니 매달 수치를 확인하러 병원에 가시니, 매달 마음 조리며 지내고 계신다는 말이 맞겠다. (여전히 환자인 아빠 앞에서 고작 나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종종 무심함을 합리화 하는 나는 못나디 못난 딸이다.) 


남편도 그동안 무심했던 본인을 자책하듯  밤낮으로 열심히 공부하며 어머님을 살뜰히 챙기고 있다.  5년 전 꼭 내 모습과 닮아 더 애처롭다.


초기인 경우에는 수술 후 대부분 완치가 된다고 하지만, 수술 후 전이를 발견하면 안 좋은 병기를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생각을 깊게 할수록 걱정이 더해진다.  남편을 최대한 안심시키고자 애써 덤덤한 척 하지만 사실 두렵다.  내게 부모님의 부재는 아직은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어머님의 암 진단으로 지난 한 주간 우리 가정의 일상은 크게 흔들렸다.  애써 씩씩한 척 태연하게 지내보려 했지만, 몸은 그게 안 됐는지, 원인 모를 복통이 일주일간 더해져 병원까지 가야 했다.    


퇴근 후 집안 살림을 제대로 돌볼 여유도 없었다. 어머님을 수술하실 의사는 실력이 있는 분인지, 퇴원 후 집으로 모시게 되면 식단은 어떻게 해얄지, 회사에 가족 병가는 얼마나 낼지 등등 확인하고 결정해야 할 것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집안일을 함께 돕던 남편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는지 집은 점점 엉망이 되었고, 매주 한편씩 발행하고자 스스로 다짐했던 글도 모두 올스탑이었다. 


아이의 돌봄 신청 서류도, 국기원심사 신청도 겨우  마감 시간 직전에 가까스로 제출하였다.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지내주셨던 부모님의 존재가 얼마나 크고 감사했는지 새삼 깨달아지는 시간들이었다.  


부디 수술이 잘 끝나고 빨리 회복하시기를.

내 삶이 분주하고 정신없다는 핑계로 가장 중요한 걸 잊고 살지 않기를 다시금 다짐해 본다.


Photo by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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