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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GARDEN Jan 03. 2024

클레오의 세계(2024)

씨앗 모으기 (Collecting)









Short Review

2024.01.01


INFO.

TITLE 클레오의 세계

DIRECTOR 마리 아마슈켈리-바르사크

RELEASE 2024



클레오는 갓난아기 때 엄마를 잃고 유모 글로리아의 손에서 키워진다. 글로리아의 무한한 애정 아래서 클레오는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글로리아 어머니의 부고 소식이 전달되고, 글로리아는 친자식들이 있는 고향 섬으로 돌아간다. 못내 이별이 아쉽고 클레오가 걱정스러운 글로리아는 클레오의 아빠에게 아이를 방학 동안 자신의 섬으로 보내달라고 부탁한다.



클레오는 단식 투쟁을 통해 마침내 그리웠던 글로리아에게 돌아가는데, 그곳엔 클레오가 모르는 글로리아의 세계가 가득하다.

"신기해요, 난 글로리아랑 함께한 추억밖에 없는데."

심지어 글로리아의 손자가 태어나면서 클레오의 외로움과 심술은 날로 짙어진다. 과연 클레오는 이 예정된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영화는 클레오의 감정에 집중한다. 그러나 클레오의 시선을 드러내는 방식은 다소 모호하고 이미 많이 봐왔던 것이며 감상에 의존한다. 관객은 도입부터 중반까지의 루즈함과 다투어야 클레오의 최종적인 선택과 결말에 다다를 수 있다.


그러나 평범한 장면들이 이따금 마음에 비수처럼 꽂힌다.



글로리아가 놀이터 벤치에 앉아 그녀를 지켜보는 동안 클레오는 친구들과 아무런 걱정없이 뛰어논다. 그러나 두 사람이 함께 벤치에 앉아 있다가 글로리아가 통화를 위해 잠깐 멀어지면 클레오의 시간은 어쩐지 외롭고 서럽고 멋쩍은 것이 된다. 아이가 가장 외로운 건 혼자 있을 때가 아니다. 주 양육자와 함께 있으면서도 그의 관심을 온전히 갖지 못할 때다.




곧바로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간만에 엄마를 만나서 반갑게 떠들다가 급한 업무 전화로 엄마가 한참 통화를 하면, 하염없이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풀이 죽어 서러워지곤 했다. 혹여라도 엄마 통화에 방해가 될까 꼬옥 입을 다문 채로 말이다. 

헤어짐을 일찍 경험한 아이들은 다음 헤어짐이 어느 불시에 찾아올지 늘 경계하며 사는 모양이라고, 클레오와 나의 세계를 가만히 교차해 보며 생각했다.



나의 이별은 무탈히 지나갔으니, 클레오의 이별도 그럴 것이다. 아이들은 아이들만의 세계가 있다. 그 세계는 부모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개구리는 올챙이 적을 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언제나 어른들이 없는 순간에서 훌쩍 자란다. 그러니 자녀와 부모가 서로에게서 독립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별의 본 속성이 슬픔인 게 변하는 건 아니다. 다만 성장은 언제나 고통을 동반한다는 속성 역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떻게 이별 앞에서 더 지혜로울 수 있을까, 먹먹히 고민해 본다. 특히나 나에게는 이번이 첫 번째가 아니지만 당신에겐 처음으로 기억될 이별 앞에서 우리는 대체 어떻게 지혜로워져야 하는 걸까?



아직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했기에 사람들은 종종 지키지 못할 약속을 입 밖에 내는 대신 추억의 증표를 남기는 모양이다. 글로리아의 목에서 클레오의 목으로 옮겨간 고래 꼬리처럼, 치히로의 머리카락에서 반짝이던 머리끈처럼, 비를 따라 연주하던 프루스트의 우쿨렐레처럼.

망각은 축복이라지만, 나는 더 오래 더 많이 기억하고 싶다. 내가 사랑했던, 나를 사랑했던 모든 이들에 대해서. 



그리하여 이별 앞에서 굳은살 하나 없이, 영영 아이의 살갗처럼 여린 피부를 맞대어야 한다고 해도 나는 기꺼이 그러고 싶다. 글로리아의 엄마가 세상을 떠난 사건에 누구보다 서럽게 울어주던 클레오처럼 말이다.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이 나는 건 그런 어리석은 바램이 여즉 나의 마음에 존재하기 때문이고, 그럼에도 내가 잊어갈 많은 이들을 예감하기 때문이다. 클레오의 세계는 지극히 보편적인 우리 모두의 세계다.










Fin.


*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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