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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GARDEN Jan 29. 2024

[전시 후기] (구) 공간 사옥 (현) 아라리오 뮤지엄

씨앗 모으기 (Collecting)




관람일: 2024.01.16(화)

장소: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





건축 일을 하는 지인분이 남은 휴가를 사용하고 싶다며 데려간 장소.

전공자가 해주는 전시 가이드? 못 참지.





지인분이 며칠 전부터 추울까 봐 걱정하셨지만 

다행히 그다지 춥지 않았던 날...!

안국역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되어서 空間 SPACE라고 적힌 건물이 보인다.


정확한 명칭은 서울 구 공간 사옥.

2014년 2월 27일에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했고 1977년에 완공했다고 하는데, 구관은 1971년 완공이다.

김수근 건축가는 한국의 1세대 건축가 중 한 명이다.

지인분의 설명으로는 당시 국내에서 건축가가 직접 건물을 지어 

건축 사무실을 운영한 사례가 없었기에 많은 관심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수많은 건축가들이 이곳에서 (무보수로) 일을 하며 꿈을 키웠다.

'공간그룹'에서 일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큰 경력이기에 기꺼이 일했던 모양.

남영동 대공분실도 이 분이 지었다.

당시 다른 건축가들이 윤리 문제로 거절한 제안을 김수근 건축가가 수락했고, 

덕분에 국가의 지원을 잘 받으며 커리어를 쌓았다.

하지만 이런 부분은 (수많은 제자들 덕분인지) 잘 다뤄지지 않는다고.

실제로 지식백과에 나오는 주요 작품 연보를 봐도 대공분실은 빠져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 참고. 그가 건축한 부여박물관도 왜색 논란이 있다. 

김중업 건축가와 신문을 통해 많이 싸웠었다고. 찾아보니 이런 기사가 있다. 

http://www.wo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3061


그 당시 두 건축가의 칼럼이 궁금하다.

김수근 건축가는 일본에서, 김중업 건축가는 프랑스에서 대학원을 나왔다.

성격에 따라 나라를 고른 건지, 유학 다녀온 나라의 문화를 익힌 건지, 

아무튼, 바른 말을 강하게 많이 한 덕으로 김중업 건축가는

박정희 정권 때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결국 강제 추방된다.





이 모든 이야기를 들려준 지인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가 많이 되는 모양이었다ㅎㅎㅎㅎ

(내 그 마음 알지...)

건물 설명하며 즐거워하다가

대공분실과 정치 얘기에서는 표정이 안 좋아지길 무한 반복.

대공분실도 정말 용도에 맞게 끔찍이도 잘 지었다고 한다.

공포심과 고립감을 극대화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지인분은 그 건물을 가보고 싶어 했지만 지금은 휴관 중인 듯하다.






스킵 플로어 skip floor
1. (건설) 일반적인 건물의 한 층 높이의 반(半)을 올라가거나 내려가도록 설계하거나 짓는 방식. 또는 같은 층에 있는 거실, 안방, 주방 따위의 바닥 높이를 차이가 나도록 구분하여 짓는 방식.

_ 출처: 우리말샘


반 층씩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층고가 낮아 

머리를 조심하라고 일찍부터 경고해 주신 지인분 :)

스킵 플로어 방식으로 건물을 지으면

비교적 비용을 적게 들이면서 공간을 알차게 활용할 수 있지만,

증축이 불가능하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층과 층을 이어주는 계단이 마치 건물 기둥처럼

필수적인 구조물이 된다고 이해하면 쉬운 듯.






사실 내 맘에는 꼭 들었다.

미로 같기도 하고 놀이터 같기도 한 공간들.

지그재그 빙글 뱅글 다양하게 움직여야 하고,

시퀀스 자체가 다채롭고 풍성하다.


어떤 느낌의 공간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사진들.

저 연인 조각상도 사진 속 위치에서는 내려다볼 수 있고,

이어진 계단을 찾아 내려가면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무척 반짝거리고 아름다운 조각상이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신체가 기형이었다.








이렇게 커다란 앤디 워홀의 초상으로 시작하는 전시 공간도 있었다.

저 반짝거리는 머리카락들은 전동 드릴로 금속판을 빠르게 긁어내서 만든 선들이다.

이 사진 맞은편에 앤디 워홀의 작품이 걸려있어서,

마치 앤디 워홀이 자신의 작품을 보고 있는 것 같은 구조가 된다.

작품 선택이나 배치에 제법 신경을 쓴 티가 난다.

건물 내부가 어둡기도 하고 스산한 느낌이 있는데,

그 느낌을 살릴 수 있는 공포스럽고 기괴한 작품들로 골라둔 느낌.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원색이 돋보이는 팝한 작품들을 걸어뒀으면 어땠을까 싶다.

나에겐 무서운 느낌보다는 놀이터 느낌이 강해서 더 그랬을 지도. 





한참 뒤 올라간 다른 층에서 다시 앤디 워홀 아저씨를 볼 수 있었다.

"이제 저도 똑같이 턱을 치켜들고 앤디 워홀을 볼 수 있어요."

하고 키득거리며 사진을 찍었다.

이 건물 정말 너무 재밌다.

아, 그리고 스킵 플로어로 지은 건물은 

모든 공간이 연결되어 있어서  사장님이 큰소리치면

아마 온 건물에 그 소리가 다 들렸을 거라고...ㅋㅋㅋㅋ

신관을 지은 가장 큰 이유일 지도 모른다며 지인분과 낄낄거렸다.







백남준 작가



키스 해링



인간 통조림과 벤츠 심벌(얘네 내 취향임)



심벌 말고 진짜 차도 있다



사실 둘은 비슷한 사이즈지만 각자 어울리는 렌즈로 과장해 보았다



귀엽다고 난리 쳤던 외계인 가족. 털실로 짠 수세미 같은 걸로 온몸이 덮여있다.



이것도 내 취향. 초록색 드럼통 위에서 녹슨 하반신. 초록색 페인트가 꼭 피 같다.



아기 요람, 침대, 수액걸이 그 옆에 놓인 네온 관


관 뒤쪽 창으로 궁궐이 보여서,

그쵸... 저기 있던 분들도 다 관에 들어가셨겠죠... 하고 중얼거렸더니

지인분이 엄청 크게 웃으셨다. 쩝.

전시 사진을 보여줬더니 짝꿍이

인류의 기원에 대해 다룬 전시인 듯하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관점.

짝꿍을 데리고 한 번 더 가야겠다.







공간 자체가 알뜰살뜰 지어지기도 했고,

작품도 정말 여기저기 한가득 들어차있다.

작가의 머리를 본떠서 틀을 만들고 거기에 작가의 피를 가득 채워서 굳힌 작품도 있고,

공간을 임의로 분할해서 작업실, 침실, 화장실 등 공간 전시를 한 작품도 있다.

가라오케 룸이 있었는데 시청각실로 매우 탐났음.

말이 말을 타고 있는 모습도 있고, 비디오 아트도 제법 있다.







아래에 사슴은 멀리서 볼 땐 반짝거려서 예뻤는데,

가까이서 보니 좀 징그러웠다. 심지어 알고 보니 박제였던 작품......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 음......







유리창이 깨진 걸 보고 있었더니,

지인분이 저건 깨지라고 만든 유리창이에요, 했다.

제 역할을 다한 거죠, 수리하긴 해야 하지만요.

그 이야기가 좋아서 조금 더 바라보다가 움직였다.







건물 외관 모습.

스킵 플로어라는 건물 특성상 창이 각기 다른 크기로 여기저기 붙어있는데,

아마 그게 보기 싫어서 담쟁이덩굴을 키웠을 거라고 지인분은 추측했다.

여름에 오면 파릇파릇한 담쟁이를 볼 수도 있으려나.

그치만 이 겨울 버전도 무척 잘 어울린다.

창 대부분이 열릴 리 없는 통창이다. 환기는 쉽지 않았겠으나 아름다웠다.







몇 번을 가도 질릴 거 같지 않은 공간이다.

한국에 이런 건물도 있구나 감탄했다.

여기서 1시간 반쯤 있다가 나오니 

주변 다른 건물들이 무척이나 실용적이고 심심해 보였다.

뭐, 실용적인 건 늘 그런 식이긴 하다.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역시 내 공간을 갖는다면 재밌는 편이 좋겠다.

꼭 다시 가야지(●'◡'●)!!!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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