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찾아온 봄기운이 무서운 요즘이다. 길어지는 취준 기간에 위기감을 느끼고 당장 다음 달 월세부터 해결해 보자는 마음으로 집 앞에서 알바를 시작했다. 무슨 일을 해도 항상 재밌고 즐겁게 하는 편임에도 이번에는 어서 탈출해야겠다는 마음뿐이다. 진짜 다양한 알바를 해봤다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로 종류도 다양하고 독특한 알바를 많이 해봤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못 견디는 건 단순 반복에 생산성이 없는 일이다. 20대 초반, 알바의 상징과도 같은 편의점 알바를 처음 했었다. 갓 스물이 된 나에게 텅 빈 새벽의 편의점은 낭만이었다. 처음 내 노동으로 번 돈, 새벽의 고요한 공간, 그 속에서 듣는 라디오와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보던 책과 영화는 노동보다 즐거움이었다. 새벽 편의점에는 역시나 주취자도 많았고 이상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당연하게도 새벽을 성실히 살아내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 시간들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인간 군상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였다.
이후에도 새로운 일들을 정말 많이 했다. 흔한 알바부터 독특한 알바까지, 이런 일들을 내가 지금 해보지 않으면 언제 해보겠어라는 마음가짐으로 언제나 재밌게 임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언제나 배움과 깨달음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주문 같은 말이 이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나에겐 이제 재밌는 경험이 아닌 삶을 꾸려나갈 직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처절하게 느끼는 중이다. 그래서 강력한 취업 의지가 생성되었다. 그 무엇보다 내가 이 알바를 그만두기 위해서라도 난 취업을 해야겠다고 되뇌는 요즘이다.
동시에 내가 얼마나 나태하고 교만했는가 깨닫는다. 같이 일하는 점장님이 나보다 한 살 많은데 벌써 자리를 잡고 본인 일에 열심히 하는 것을 보며 난 얼마나 오만한 자세로 언제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자만했는지 반성한다. 그리고 수많은 곳에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보면서 생각한다. 내가 얼마나 빈틈 투성이의 이력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인가를 말이다. 우리나라 사회가 고학력 고스펙의 경쟁사회라고 하는 것을 기사에서나 봤지 이렇게 체감하기는 처음이다. 이렇게 대단한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서 나 정도 열심히 산 건 굴러다니는 흰색 몸에 검은색 모자를 쓰고 있는 볼펜만큼이나 흔한 것이구나 생각한다. 그래도 난 내가 살아온 시간들이 헛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화려한 포장지가 없을지라도 그 볼펜을 쓰는 순간에는 최고의 쓸모를 하고 있을 테니까. 그러니 열심히 써내다 보면 누군가 능력을 알아주겠지라고 생각한다. 꼭 당신들이 원하는 대답을 뱉어내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나와 당신의 이해관계와 가치가 맞는 그런 사람임을 알아주는 회사가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