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나, 해결하기

by 구천개의 생각


'나'의 행복한 하루를 위해 좋은 일을 조목조목 채워주기 전, 일단 나쁜 것을 먼저 제거하고자 한다. 여기서 나쁜 것이란, 분명히 하고 싶은 또는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계속적으로 나를 망설이게 하는 것, 나를 고민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겪는 '문제' 또한 앞서 언급한 '숨은 관심사'처럼 내 일임에도 내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게다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우울함과 분노는 그 순간에 내가 그렇다는 걸 알아채지 못하니 날 더욱 두렵게 만든다.


모든 감정이 만화 주인공이 필살기 이름을 외치는 것처럼 "우울함!", "화남!" 하고 나타나 주면 얼마나 좋을까. 아쉽게도 우리네 뇌 기능 중에는 그것을 자동으로 인식하는 기능이 없기 때문에 추가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문제 인식


위에서 나쁜 감정으로 먼저 예시를 들었지만, 사실 모든 감정은 그 순간에 즉시 알아챌 수 없다. 꽃 향기를 맡고 기분이 좋아지더라도 "음, 좋다"라고 생각하지, "내가 꽃 향기를 맡아 행복하구나"라고 생각하진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항상 '나'를 아기처럼 여기고 늘 기민하게 살펴야 한다. 아기가 아니더라도 나의 소중한 가족, 친구처럼, 매일 곁에 있는 지인, 동료처럼 다른 이를 챙기듯 '나'를 주의 깊게 바라보고 챙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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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문제가 있을 때, 나 자신을 평소보다 민감하게 살펴야 하는 이유는 내가 가끔 나 자신조차 속이는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와 주변에 걱정을 끼치기 싫어서, 또는 인정하기 싫어서, 이대로 두면 시간이 해결해 줄 것만 같아서, 이렇게 말하다 보면 어느새 그렇게 될 것도 같아서··· 여러 이유를 들어 "괜찮아", "아무렇지 않아"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하는 것이다.


나는 그 순간을 경계해야 한다고 본다. 별 거 아닌 일을 과한 감정으로 받아들일 때, 빠른 진화(鎭火)를 위해 한 두 번쯤 되뇌는 것은 괜찮지만, 만약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면, 오히려 나 자신조차도 속이는 깊은 거짓말이라면 그것에서 빠르게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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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고 우울한 감정은 처음엔 작게 태어나도 점차 그 크기가 비대해진다. 그것들은 그 어둡고 찐득한 모습이 부끄러워 마음속 깊숙한 풀장에 몸을 숨기곤 한다. 그것을 바라보는 나도 그 존재가 부끄럽고 보기 싫으니 "괜찮아", "아무렇지 않아"라는 형형색색의 공을 부어 풀장을 가득 채운다.


그렇게 하다 보면, 나중에 가서는 처음에 바랐던 것과 같이 꽉 찬 공들로 인해 그것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깨끗하고 다채로운 공들만 보기 좋게 가득 차있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감정들이 그 풀장에 뛰어들어 몸부림치며 놀기 시작하면, 어느새 그 찐득한 감정이 들러붙은 공들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 신난 감정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말랑하고 시원한 공의 질감을 느끼며 놀다가, 저도 모르는 새에 들러붙은 나쁜 감정들로 인해 오염되기 시작한다.


결국 풀장은 구석구석 지저분해진다. 하나하나 떼어내고 청소할 수도 없이 넓은 범위로 퍼진다. 순간의 거리낌으로 인해 마음속이 더욱 정리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은 손으로 집기 꺼려져도, 그 존재를 초기에 잡아내 인정하고 함께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바로 그것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원인 파악


나의 진실된 감정과 손을 잡았다면, 그 즉시 '지금 머릿속에 드는 생각이 무엇에 대한 것'인지 그 '소재'를 파악해야 한다. 이 부정적인 생각의 굴레가 무엇으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 첫 순간으로 돌아가 보는 것이다.


이때 첫 생각과 지금 막 떠오른 생각은 비슷할 수도 있지만, 그 둘이 전혀 상관없을 수도 있다. 불안정한 마음을 가졌을 때는 평소와 달리 생각의 흐름이 이상한 방향으로 확 튀어나가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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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나의 경우에는, 20대 초반에 고시원에 살며 종종 그 집에 있는 것을 눈물 나게 싫어했다. 좁은 고시원에 살면 당연히 싫지 누가 좋아하냐 싶을 수도 있지만, 그때의 나는 관리비를 따로 내지 않아도 된다는 작은 장점 하나를 쥐고서 나름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하지만 가끔은 내 행복을 위해 취미로 연주할 피아노 하나 놓을 자리가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슬프게 다가왔다. 그때마다 세상이 무너진 듯한 기분이었고, 집에 대한 원망으로 시작해 나의 온 삶이 원망스러워졌다.


이렇게 보면 좁은 집에 사는 것이 문제의 원인 같지만, 사실 실제 원인은 따로 있었다. 당시 다니던 회사에 차별적 행동을 잦게 하던 선임이 있었는데 나는 그에게 아주 이골이 난 상태였다. 회사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그에게 시달리다가 집에 돌아가면, 회사와 내 공간을 구분하는 능력이 없던 어린 나는 퇴근 후에도 그 감정을 떨쳐내지 못했고, 결국 집에 대한 원망을 하기 시작했다.


'진짜 원인'은 나의 '진실된 감정'과 같이 모종의 이유로 내가 쉽게 눈치채지 못하게 숨겨져 있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생각들을 성의 있게 바라보고, 처음 들었던 생각이 무엇인지, 이 문제와 고민의 시발점이 무엇인지 최대한 잘 추적해 나가야 한다.





해결 시작


생각의 흐름을 복기한 후 문제의 진정한 원인까지 찾아냈다면, 이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작'이 필요하다. 이때 쓰이는 것이 바로 "어쩌자고"이다. 어떤 소재가 내 머릿속 굴레에서 돌고 있는지 또는 어떤 상황이 이 굴레를 시작하게 만들었는지 알았다면, '그래서 어쩌자고?'라는 반문을 건네어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해주어야 한다. 이 상황에서 계속 머무르기만 하는 것은 본인이 고통스럽게 할 뿐만 아니라 어쩌면 알차게 쓸 수 있을지도 모를 시간을 낭비하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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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는 "내가 컨트롤 가능한 것인가?"에 대해 고려해보면 큰 도움이 된다.


그 대상에 대한 컨트롤 가능 여부를 따져보는 것은 일종의 '선택권 줄이기' 단계인데, 선택권을 줄이는 것의 장점은 스캇 애덤스의 <How to Fail at Almost Everything and Still Win Big>이라는 책의 한 구절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유튜브 <That Korean Girl 돌돌콩> 채널에서 보았기 때문에 해석 또한 돌돌콩님의 자막을 참고했다.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xPx1FFNVuf8)


'선택의 패러독스'의 저자 베리 슈워츠는 삶에서 선택지가 너무 많으면 오히려 불행해진다는 얘기를 한다. 옵션이 많으면, 본인이 선택하지 않은 길 때문에 자기 의심이 도지고, 결국 다른 길을 선택하는 편이 훨씬 나았을 거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데, 그 생각이 결국 당신을 잡아먹을 수 있다.


위 내용과 같이 '선택권'이라는 것에 한해서는 '다다익선'이 통하지 않는다. 많고 다양할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정되어 있을수록 도움이 되는 것이다.


분명히 개인차가 있겠지만, 나는 '~할 걸', '~할지도 몰라'라는 막연한 가능성이 되려 나 자신을 잡아먹는다고 생각한다. 잠시 동안의 아쉬움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거고, 또 그 정도는 내 삶에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그것을 계속 붙들고 있는 것은 날 매우 지치게 할뿐더러 그걸 참고 살 성미도 가지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대상에 대해 '내가 컨트롤 가능한지' 먼저 고민해보는 것은 아주 짧은 시간을 들여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가성비 좋은 해결책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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