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나, 해결하기 - 문제인식 편 부록
어떤 스트레스는 내 작은 마음속에 쌓이고 쌓여 곪아버리기도 하지만, 또 어떤 스트레스는 예상외로 간단히 사라지기도 한다. 순간적으로 불쑥 나타난 것이거나, 시간 들여 해결하기엔 약간 애매한 감정들을 정리하기 위해 해 볼 만한 몇 가지 간단한 조치를 추천하고 싶다.
① 충전
몸 상태에 무심한 나는 가끔 밥시간이 되었다는 위장의 알람을 무시하곤 한다. 그럴 때면 유치한 위장이 제 힘으론 안 되겠다 싶은지 뇌의 손을 잡고 찾아와 함께 공격하기 시작한다. 둘이 같이 쿡쿡 찔러대는데, 어쩐지 위장보다 자그만 뇌가 힘이 더 세서 그것의 영향을 더 쉽게 받는다.
이것들이 눈에 보였다면 상대하기 쉬웠겠지만, 안타깝게도 두 녀석 다 시야가 닿지 않는 곳에 있다. 결국 나는 이유도 모른 채 힘센 뇌에게 두드려 맞게 되는 것이다.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선 그들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 어린 위장에게는 필요한 에너지를 제때 주지 않아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밥을, 안 그래도 온몸을 총괄하느라 바쁜데 위장 편을 들어주느라 진을 다 뺀 뇌에게는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잠을.
결국 서로 공생하는 관계이니 날 노려보던 녀석들도 나중엔 "다음부턴 그러지 마라!"하고 넘어가 준다. 그때쯤 되면, 난 안정적인 일상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된다.
② 해소
"우울은 수용성"이라는 표현은 어떤 이가 최초로 사용했을까. 그 출처를 정확히 모르는 것이 원작자에게 죄송한 일이지만, 그 표현이 나를 포함한 참 많은 사람들에게 힘과 위로가 되었다는 이유를 빌려 인용하고 싶다.
이 말은 한때 나를 달래는 상황에서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 새 회사에 들어가 팀 배치를 받은 후 이제 막 일을 시작할 때, 매일매일 집에 돌아오며 퇴사를 고민했다. 앞의 <나, 파악하기> 편에서 언급했던 팀장 때문이었다.
내 오랜 관념 중 하나는 "좋아하던 것도 계속하다 보면 질리기 마련인데, 처음부터 질리는 건 나중 가면 얼마나 더 싫어지겠냐"였기 때문에 시작부터 삐그덕거린 회사와의 관계는 금방 끝나버리기 직전이었다. 말 그대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퇴근 후 현관문을 열어 집에 들어갈 때, "우울은 수용성이랬다. 일단 씻자. 씻고 생각해."라고 읊조리며 욕실로 향하는 것은 회사와의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몇 번의 기회를 더 주었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이 몸에 닿는 동안 나는 뜨끈한 물에 '으어어 시원하다' 하는 생각도 하고, 별안간 기분이 좋아져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고, 물이 닿아도 분이 안 풀리는 날에는 날 화나게 하는 그 요주의 인물에게 쌍욕을 쏟아붓는 상황극도 했다. 어찌 됐든 그 과정을 통해 침대에 들어가기 전까진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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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유튜버 <That Korean Girl 돌돌콩> 채널의 최근 영상인 <젊은 CEO의 루틴과 습관> 편에 출연한 코너 즈윅은 본인의 독특한 습관으로 '콜드 플런지(Cold Plunge)'를 소개했다. (출처 : https://youtu.be/I2T0oRb03H4)
콜드 플런지는 아주 차가운 물에 몸을 담그는 것인데, 그는 보통 10분 정도 있다가 나와서 바로 사우나를 하고, 그 과정을 거치고 나면 아주 활기차지고 기분도 좋아진다고 언급했다.
운 좋게 한국에서 태어난 나는 그 말을 듣고 어떤 기분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대중목욕탕에 가서 냉탕에 먼저 들어갔다가 온탕으로 옮겨가면 느껴지는 살갗이 찌르르한 느낌, 뜨거운 한증막에서 나 자신을 찐만두처럼 익혔다가 냉동실처럼 추운 얼음방에 가 다시 냉동만두처럼 얼리는 느낌. 콜드 플런지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경험해볼 필요 없이 그 행복을 공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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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은 수용성"이라는 말이 공감되었던 개인적인 이유도 있다. 바로 어릴 적부터 엄마에게 들었던 말 때문이다. 엄마는 내가 서러움에 못 이겨 펑펑 울기 시작하면, 어떤 때는 애정을 가득 담아 달래주었고, 또 어떤 때는 그냥 울라고 내버려두었다. 그리고 다 울어서 머쓱해질 때쯤에는 늘 "다 울었어?"하고 장난스럽게 물어보았다. 그 후엔 이러든 저러든 눈물을 닦아주며, "울면서 나쁜 게 빠져나간다"는 말을 덧붙여 날 위로해주었다.
어릴 때의 나는 그 형태를 눈으로 볼 순 없었지만, 엄마의 말을 믿었다. 무언가 답답하고 축 처지면서 기분이 가라앉을 때, 무슨 방법으로든 눈물을 쏟고 나면 확실히 나아졌기 때문이다. 요즘도 그렇다. 아무리 나에게 지금 일어난 안 좋은 일이 별 일 아니라고 알려주어도 회복되지 않을 때, 적든 많든 눈물을 흘리고 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이렇게 물이라는 매개체는 내 몸에 닿는 방식으로, 내 몸에서 빠져나오는 방식으로 항상 위로가 되어주는 듯하다. 다시 한번 "우울은 수용성"이라는 짧은 말로 나의 마음을 대신 표현해주신 분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③ 탈출
마트에 가보면 진한 색채를 가진 크고 작은 어린이 장난감들이 꼭 매대 하단에 진열되어 있다. 판매 전략으로 어린이들 눈높이에 놔둔 것이다. 아이들은 돈의 개념을 모르니 냅다 그것을 가지고 싶다고 칭얼거리고, 떼를 쓰고, 울기 시작한다.
반대로 돈 무서운 줄 아는 어른들은 철통방어를 펼친다. "너 이거 집에도 있잖아" 하며 논리적인 이유를 들어보기도 하고, "엄마/아빠 간다"하며 협박도 해보고, "다음에 사줄게"하며 무보증 수표도 날려본다.
이런 과정에선 순서가 어디든, '회유'의 단계도 꼭 등장한다. 이미 있는 장난감이나 준비된 간식을 들고 일단 그 매력적인 새 장난감 곁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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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아이들을 보며 "하여튼 애들이란.. 참 단순하다니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이 방법은 어른에게도 잘 통한다.
오늘따라 왠지 재수 없거나 운 없는 일만 반복되는 것 같을 때, 갑자기 이유 모를 짜증과 분노가 솟구칠 때 다른 흥미로운 일을 일단 눈앞에 갖다 대면 의외로 쉽게 정신이 팔린다. 다 큰 어른이 그런 거에 속겠냐 싶을 수도 있지만 진짜 효과 있다. 처음엔 씩씩대다가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것에 집중하느라 왜 성질이 났었는지 그 이유를 순식간에 잊어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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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원인과 감정의 무게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불분명한 이유로 드는 가벼운 분노라면 분명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시선을 돌릴 수 있는 일은 다양하다. 하려다가 못 했던 소박한 일을 하는 것도 좋고, 평소에 관심 있던 주제의 미디어 컨텐츠를 보는 것도 좋다.
한 가지 특징이 있다면, 이때 하는 활동은 아웃풋이 아닌 인풋 위주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상황의 목표는 지금의 무의미한 짜증과 분노를 시선을 돌려 막는 것이지, 그 감정을 표출해 더 크게 키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갓 생겨난 자그마한 불씨에 굳이 산소를 불어넣어 큰 불로 번지게 할 필요는 없다.
*06. 나, 해결하기 - 해결시작 편 부록
① 시간
'후회'는 '이전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친다'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본인의 과오를 스스로 깨닫고 반성한다니 정말 성숙하고 멋있는 일이다.
하지만 사전에 미처 담지 못한 후회의 특성이 있다. 바로 딱 한 번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후회는 계절이 바뀌듯 잊을 만하면 몇 번이고 다시 나를 찾아와 괴롭게 한다. 그게 바로 '후회'라는 단어가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사전에서 중요한 포인트를 짚고 있기도 하다. 바로 '이전의 잘못'에 대한 것이라는 부분이다.
생각해보면, 과거에 일어난 모든 창피한 일, 후회되는 일, 미련이 남는 일들은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일임이 자명하다. 내가 지구 상에 몇 없는 타임머신 개발자도, 숨겨져 있는 타임머신을 발견한 운 좋은 목격자도, 누군가 판매하는 타임머신을 살 수 있는 부자도 아니니 말이다.
만약 내 통장에 '내 돈'과 출처 모를 '남의 돈'이 있다면, 마땅히 그 '남의 돈'을 '절대 쓸 수 없는 돈'으로 인식할 것이다. 요즘은 피싱 사기가 유행하니 어쩌면 더 꺼림칙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과거' 또한 이 '남의 돈'처럼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 절대 손쓸 수 없는 일에 속한다. 그런데 왜 이 사실은 외면하고 그것을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인 것처럼 몇 년이고 몇십 년이고 붙잡고 살게 될까?
나는 보다 현명한 선택을 하고, 그에 따른 결과를 누릴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남 보기에 좋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나를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 현명한 선택은 과거를 후회하며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아닌 나의 현재를 값지게 소비하고, 나의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니 과거는 손에서 놓고, 현재만 꼭 붙잡은 채 미래로 나아가자.
② 인물
나와 남들은 모든 역사를 함께 걸어왔다. 내가 나보다 큰 존재를 믿을 때 남들도 그것을 믿었고, 내가 농사를 지을 때 남들도 농사를 지었으며, 내가 지구를 평평하다고 믿을 때는 남들도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고, 내가 인간으로서 당연하게 가질 수 있는 권리를 권력자로부터 되찾았을 때 남들도 그것을 되찾았다.
수억 년에 걸쳐 모든 것을 함께 한 그들이지만, 늘상 나와 맞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나와 같은 관념을 가지고 행동했으면, 나와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으면, 나와 같은 마음 가짐으로 다른 이들을 대했으면 좋겠지만, 그게 내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결국 나는 그들에게 짜증, 경멸, 나아가서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이 '다른 점'을 계속 싫어하고 욕하거나, 또는 그 반대로 그들을 온전히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분명히 시간과 에너지 낭비가 될 것이다. 세상의 어떤 물질은 절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나 아닌 타인들도 절대 나와 똑같은 인간이 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 역시 내가 놓아야 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존재로 보아야 한다. 가끔은 그들에 대한 분노와 경멸의 원인이 그들 자체가 아닌 그들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나의 바람에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두 함께 분노해야 할 대의적인 일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지만, 사사로운 관계에서는 타인에게 신경을 끌 필요도 있다. 지금 이 시각, 지구 반대편에 사는 아무개의 삶을 내가 알지도, 완전히 이해하지도, 그것이 딱히 궁금하지도 않은 것처럼 나의 신경을 거스르는 주변인이 있다면 그에게서도 관심을 끌 필요가 있다. 오히려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