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누군가의 자식만 되어봤을 뿐, 부모는 되어보지 못했다. 어떤 방면으로도 한 인격체를 키워내는 교육자의 역할을 직접 해본 적 없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교육을 받아본 이로서 옹호하는 교육 방식은 있다. 바로 '무조건적인 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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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무조건'이란 단어에는 '조건 없이'라는 의미가 담겨있지만, 훈육과 제지 없는 교육은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할 수 있으니 이 조건만은 남겨둬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다.
내가 말하는 '무조건적인 지지'는 각자의 기준에 맞게 훈육과 제지는 하더라도 "이렇게 (강하게) 말해야 오기가 생겨서 더 열심히 하지"라는 말로 동기부여의 방향을 어긋나게 잡거나, "사회가 얼마나 냉정한데! 이 정도는 약과야"라며 상처될 말로 피드백하는 것을 지양하는 교육방식, 또 무언가를 잘 못했을 때 별 일 아니라는 듯 여길 수 있는 용기와 어느 방향으로 넘어져도 언제나 그 곁에 지지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믿음을 심어주는 교육 방식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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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조건적인 지지' 교육 방식의 수혜자다. 내 노력은 조금도 가미되지 않았고, 오직 엄마의 인성과 인내심이 그걸 실현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했던 덕분이다.
엄마는 나에게 "널 돌보는 건 시한폭탄을 들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 적 있었다. 어떤 이에겐 자식에게 '시한폭탄'이라고 하는 것이 다소 폭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상처 받기보다 공감의 웃음을 터뜨렸다.
앞의 <나, 깨닫기> 편에 잠시 나온 것처럼 나는 가출을 허락받고 하는 예의 바른 망나니였고, 중학생 땐 어버이날에 주먹으로 학교 창문을 깬 후 어버이날인 걸 기억하지도 못한 불꽃 불효녀였으며, 고등학교는 입학한 지 얼마 안 지나 자퇴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유치원생 때는 놀이터에서 놀다가 높은 곳에서 떨어져 눈가가 찢어지고, 더 커서는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 팔꿈치가 찢어졌다. 엄마 친구 아들인 동생과 같이 유괴범을 따라가다가 엄마에게 급하게 구출된 적도, 오빠랑 손 잡고 집에 가던 길에 빵집에 홀려 서있다가 길을 잃어 마침 지나가던 유치원 선생님이 집에 데려다준 적도 있었다. 쓰다 보니 '시한폭탄'은 순화된 표현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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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이렇게 탱탱볼처럼 세상을 튀어 다니던 나를, 그리고 또 다른 방향으로 튀어 다니던 오빠를 늘 사랑으로 감싸주었다.
당신이 맞고 자랐던 게 싫어서 자식들에게 단 한 번도 매를 든 적이 없었고, 3남 1녀 중 유일한 딸로 자라며 죽도록 차별받았던 게 싫어서 오빠와 나도 성별의 차이를 두고 대하지 않았다. 우리 남매가 혼날 일이 있을 때에도 한 명의 잘못을 짚어 억울하게 만들지 않고 연대 책임으로 둘 다 혼냈다.
엄마가 주는 가장 큰 벌이라곤 정색하고 말하는 정도가 다였다. 그런데 그마저도 어찌나 무섭던지, 나는 다 클 때까지 엄마가 "쓰읍"하고 눈을 부릅뜨면 금세 서러워져 울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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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존재를 계속 과거형으로 표현하는 이유는 지금 내 곁에 없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가 19살 때, 심장병으로 돌아가셨다. 그때가 향년 마흔여덟 살 때였는데, 스물네 살에 오빠를 낳았으니 말 그대로 반 평생 자식만 키우다 가신 거였다.
내가 대신 아프고 죽고 싶을 만큼 사랑했던 엄마가 영영 떠나가 버린 일은 처음 몇 개월 간 믿기지 않았고, 이후 몇 년 간은 잘 지내던 나를 이따금씩 무너뜨렸으며, 마침내는 그냥 수긍하게 되었다. 내가 원했든 아니든, 그 빈자리가 익숙해졌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 동안, 늘 그 자리가 비어있는 것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엄마의 따뜻한 몸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내 눈으로 볼 순 없었지만, 엄마가 남겨준 용기와 지지가, 내가 지켜야 한다고 배웠던 정의로움과 양심이, 그리고 이렇게 올바르게 키워준 덕분에 얻을 수 있었던 친구들과 그 가족들, 또 그들에게 받은 신뢰까지··· 다양한 형태로 내 곁에, 내 안에 존재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나는 강인하게 만들었다. 내가 치졸하고 비굴하게 살지 않도록, 옳지 않은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지지 않도록, 혹여 그런 이에게 지더라도 내 자신을 깊이 탓하지 않도록 만들어 주었다.
내가 아스팔트 바닥처럼 차갑고 딱딱한 사회에서 이리저리 밀쳐져 넘어져도, 언제나 푹신한 침대와 같은 지지와 사랑이 있을 거라는 확신을 주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더 많은 기회에 도전하고, 강단 있게 결정을 내리고, 무언가와 맞서 싸울 배포를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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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다거나 잘난 인생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순 없지만, 이런 성격으로 사는 기분은 나쁘지 않다. 사실 꾸밈없이 말하자면, 끝내주게 좋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무조건적인 지지'의 최대 강점이다.
가끔 나 자신에 대해 나쁜 감정이 들더라도 그것에 깊이 빠지지 않는 것, 대부분의 순간에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 이따금 찾아오는 승리감을 의심하지 않고 즐길 줄 아는 것··· 내가 겪을 수 있는 긍정적인 경험들은 모두 주위에서 베풀어준 '무조건적인 지지', 그러니까 그들의 믿음과 지원과 사랑 덕분에 얻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나는 늘 그 사실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