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점심
김밥이 먹고 싶었다
차가운 방을 벗어나
집을 나선다
횡단보도 앞
파란불로 변하기를
빨리 바뀌기를 기다린다
건너편 김밥집을 살피며
젊은 여자의 낭랑한 목소리
나보다 먼저 온 손님
우리 둘을 보자 조급한
어느 중년 남성
불쑥 김밥 두 줄을 집어 든다
2천 원을 안쪽으로 던져 놓고
저편으로 사라진다
여자 손님도 떠나고
혼자 남은 나
드디어 받은 김밥
묵직한 비닐 봉투
또다시 횡단보도 앞
파란불로 변하기를
조금 전엔 오래 기다렸는데
이번에는 바로 파란불
횡단보도가 나눈 나
건너편에선 경직됐던 나
여기서는 느긋한 나
김밥 몇 줄이 나눈 나
건너편에선 가난했던 나
여기서는 넉넉한 나
진짜 나는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