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을 앞두고 진로가 막막했을 때의 기억이다. 또다시 삶을 어디론가 던져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불안했다. 하지만 삶이 알려준 만큼 평범한 일상에서 기쁨을 찾자고 되뇌는 시간이기도 했다. 매일 고뇌의 시간을 보내며 하루를 버티듯이 살아간 것은 틀림없다.
이런 상황에서 마치 기행(紀行)처럼 겪은 이야기를 할까 한다. 7년간 대학 생활을 하며 아지트처럼 찾았던 곳이 있다. 학교 뒷산 편백 나무숲 어딘가에 있는 숲 속 도서관이다. 잘 알려지지 않아서일까? 가끔 방문하는 등산객을 제외하곤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혼자 조용히 책 읽기 좋은 곳이라 자주 찾았다. 도서관 사서님이 시에서 개최하는 '슬로시티 설명회'에 참여해 줄 수 있냐고 물어봐서 두말없이 승낙했다.
슬로시티 설명회가 있는 날 고향인 타지에 있었기에 아침부터 부랴부랴 짐을 싸 들고 기차역에 도착하자마자 숲 속 도서관으로 향했다. 슬로시티 설명인즉슨 이러했다. 도시가 처음에는 한옥마을로 한정하여 협회로부터 슬로시티 인증을 받았고, 재인증을 받으면서 도시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이렇게 인구가 밀집한 도시 전체가 인증을 받은 것은 세계에 유례없는 일이다. 그래서 시는 슬로시티의 가치를 시민들에게 설명하고, 시민들에게 사업에 동참하도록 하는 사업을 열었다. 국악 감상, 지역에서 생산된 채소로 만들어진 도시락 먹는 행사가 있었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아무 감흥이 없었다. 형식적인 행사는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했다. 하고 싶었던 기행(紀行)의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마지막 순서였다. 시 문화원에 계신 어르신이 나와 지역에 관한 갖가지 이야기를 해 주셨다. 이를테면 옛이야기 건지산(乾止山)의 본래 이름은 수지산(水止山) 이었다고 한다. 과거 수지산 일대에 물이 많아 비가 오면 홍수가 나서 민가에 피해를 주었다고 한다. 어느 노승이 산 이름을 건지산으로 바꾸면 홍수 피해를 보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건지산으로 개명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건지산 일대에 물이 없다고 하셨다. 또 하나 기억하는 이야기는 60년대까지만 해도 건지산 일대와 공원, 지역에 큰 소나무가 많았다고 했다. 그러나 70년대 시에 모 제지공장이 가동되면서 나무를 수입하면서 발생한 병충해가 그 많던 소나무를 다 말라죽게 했다고 분통해하셨다. 그야말로 지역에서 평생을 사시면서 자부심과 연구가 삶으로써 배어 나오는 분이었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어르신께서 건지산 주변을 돌면서 이것저것 설명해 주겠다고 하셨다. 거의 본능적으로 따라나섰다. 가만 보니 나 혼자 청년이었고, 다른 분들은 지역에서 나고 사신 어르신들이었다. 그래서 고어(古語)라서 못 알아듣는 말도 많았다. 그렇지만 이 기행(紀行) 같은 만남이 삶 전체를 관통할 만큼 귀한 만남이었다고 기억한다. ‘멋진 어른’이 어떻게 되는지 보고 배운 느낌이었다. 산 주변을 도는 내내 지나가는 풀 한 포기, 나무부터 지역 문화유산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내 생각엔 이야기의 전달력보다 중요한 것은 ‘말하는 사람의 느낌’이다. 단순히 아는 것을 읊는 말인지, 깊은 고민에서 우러나온 말인지, 삶으로 살아낸 말인지에 따라서 사람은 천차만별로 듣는다. 60년을 지역에서 살아내신 이야기는 그 자체로 생명력이 있었다. 당시로서는 처음 겪는 일이 아니었다. 대학 생활을 동고동락한 선교단체 활동을 그만두고 울적한 마음이 들어 공원 전망대에 올랐다. 그곳에서 40년간 자리를 지키며 사진 찍는 어르신을 만났다. 어르신은 40년 동안 하루하루가 새로웠다고 했다.
이러한 만남을 겪으며 마음을 다잡는 시간을 가졌다.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내 삶의 이야기는 어떤 식으로 풀어 나가기를 원하는가?’ 놀라운 경험은 어느 날 찾아온 불안함이 눈 녹듯 사라졌다는 것이다. 다시 일상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삶이 다시 불안하다고 느낄 때 말해주고 싶다. 그렇게 쌓아온 하루가 모여 누군가에게 감동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