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할 이야기는 아쉽게도 이전에 기록해 놓은 내용이 없다. 100% 기억에만 의존해서 글을 쓴다. 하지만 인생을 뒤흔들 만큼의 강렬했던 기억이라 아직도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느껴진다. 기독교 모태신앙이지만 사실 평생에 있어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면서 살아왔다. 신께 예배하는 마음으로 살면서도 ‘그저 네 위안을 위한 거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내가 도미니카에서 경험한 일은 결코 ‘신의 존재 증명’이 아니다. 단지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믿음을 강요할 생각은 단연코 없다. 지금 도미니카 추억을 꺼내놓는 시점에서 이 이야기를 꼭 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마음의 떨림에 반응하는 것일 뿐이다.
매주 가지는 못했지만, 수도에 갈 때면 한인 교회에 출석했다. 50명 정도 출석하는 제법 큰 규모의 교회였다. 교회에 이민 2세인 청년이 두 명 있었는데, 코이카 청년 단원이 유입되면서 청년이 여섯 명이 되었다. 코이카에서 유입된 청년 단원은 본인의 지역에서 봉사하면서도 기회가 되면 한인 교회 목사님의 사역을 도우려 애썼다. 어느 날은 청년들이 부쩍 많아진 것에 흡족해하시던 목사님이 이민 2세 청소년들을 데리고 하루 동안 청소년 부흥회를 해 달라고 부탁하셨다. 그렇게 기존에 있던 청년 두 명과 코이카 청년 단원 네 명이 드림팀이 되어 청소년을 위한 부흥회 예배를 준비하였다.
한인교회에 출석하는 이민 2세 청소년은 열댓 명 정도 되었다. 내가 보기에 아이들은 대단해 보였다. 자기들끼리 한국어로 대화하다가 갑자기 스페인어로 이야기하기도 하고 영어로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한인교회에 고등학생으로 있는 아이는 미국의 유명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이를 목표로 두고 공부하고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우리가 목사님께 들었던 말은 조금 달랐다. 목사님께서 아이들에게 “기도합시다” 하면 아이들은 그때부터 고개를 처박는 것이다. 이는 습관처럼 그 찰나에 자는 것이며, 목사님은 아이들의 ‘열정 없음’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시는 것 같았다. 하긴 그러고 보니 이해가 간다. 외국어를 잘할지언정, 이방 땅에서 외국인으로 지내는 아이들의 마음을 무너뜨리는 일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좋은 성과를 낼지언정 그 마음은 얼마나 공허할까.
청년들이 주관한 청소년 부흥회 예배는 낮, 저녁으로 나눠 진행하였다. 낮에는 조를 나눠 성경 공부를 하고, 저녁에는 부흥회 찬양과 목사님 설교를 듣는 형태로 진행하였다. 이 부흥회 찬양 시간이 잊지 못할 시간이었다. 저녁이 되어 깜깜해진 예배당 안을 은은한 조명이 비추고 있었다. 도미니카 한인 청년을 비롯한 코이카 청년 단원들이 찬양하고 있었고 아이들은 앉아 찬양을 따라 부르기도 하고 조는 아이도 있었다. 찬양 인도자가 “우리, 기도합시다”라고 말했다. 예배를 인도하는 청년들의 기도 소리가 들렸지만, 아이들의 기도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약간 실망스러운 마음으로 눈을 살포시 떴다. 아이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고 있었다. 그때, 아이들의 마음에 불을 지른 것은 무엇이었을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준비한 예배 위에 그 이상의 힘이 작용하고 있음을.
그러고 보니, 나도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고 생각한 순간은 절망적인 순간에서였다. 집단 따돌림을 받은 기억과 아버지의 부재가 내 자존감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깨달았을 때, 무너질 수밖에 없었지만 나를 회복시켰던 강한 신의 손길이 있었다. 공황장애로 사방이 막혀있다고 느낄 때 나를 도우셨던 그분의 손길이 있었다. 그리고 글을 쓰는 지금, 내 희귀병은 엄청난 가시였지만 나를 도우시는 그분을 신뢰함으로 위대한 선물이 된 것을 목격한다. 신의 살아계심을 확신하게 된 일은 도미니카에서의 기억뿐 아니라 평생에 걸쳐 깨닫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