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니카 공화국에서의 기록 4

by 빛별

오늘 이야기는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거의 1년이 되어가고 크리스마스를 맞아 쓴 글이다. 봉사단원으로 떠나기 전 12월의 나는 길을 잃고 방황하는 취업 준비생이었다. 학교생활은 그렇게 기를 쓰고 열심히 했는데 막상 취업 문턱에서 보니 내가 쓸모없는 존재인 것 같았다. 이때가 2018년이었는데 시리아 난민들이 들어와 쟁점이 되었다. 특히 기독교계에서는 나그네를 환대해야 한다는 입장과, 난민을 받아들이면 그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며 한국이 이슬람화 될 수 있기에 난민을 받으면 안 된다는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런 상황에서 2018년 크리스마스는 내게 특별했다. 매년 크리스마스를 교회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이번엔 그렇게 하지 않고 여수에서 새벽 기차를 타고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는 '난민을 위한 집회'에 참여했다.


'난민을 위한 집회'에서 시리아 난민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 들은 말이 내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우리 사이에 놓인 미디어로 인해 우리는 서로를 오해하게 되었다. 그 어떤 간섭 없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이해할 날을 꿈꾼다" 그때 감정은 뭐랄까, 머리를 망치로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래. 내가 원하는 것이 이런 것이다. 진정 예수가 보이신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며 진짜 생명으로 사는 것이다. 그 크리스마스 광화문 광장의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나는 하염없이 울었다.


도미니카로 가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나는 전혀 우연이 아니라고 믿는다) 코이카와 카톡 친구가 되어 있어서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고 가슴이 뛰었다. 적어도 가슴이 뛰는 일에 반응하지 않으면 훗날 후회할 것 같았다.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보건 활동을 하는 봉사였다. 스페인어를 전혀 몰랐고, 의료 보건에 대한 지식이 없었지만 그런 건 대수롭지 않았다. 그저 살아왔던 모든 순간이 도미니카를 가리키고 있었다.


도미니카 공화국은 천주교가 국교인 나라다. 그래서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신앙생활을 걱정했지만 (이것은 나에게 큰 문제이다) 도미니카에서 홈스테이 했던 마마가 기독교인이었고 문제없이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다. 도미니카 공화국은 80년대 한국과 같아서 기독교인이 존경받았다. 청년 모임을 하는데 그들은 모임 시작을 나의 대표 기도로 시작하게 했다. 하루하루가 꿈을 이루는 느낌이었다. 그 절정이 도미니카 공화국에서의 기록 3에 기록한 활동 사업이다. 활동 사업을 하며 사비가 많이 들었지만 대수롭지 않았다. '나는 지금 가장 살아있다고 느끼며 이 시간을 위해서는 내 돈, 시간, 에너지가 하나도 아깝지 않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 비유에서 천국에 대한 말씀이 나온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마태복음 13:44)

이 성경 말씀이 내 인생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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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맞이하며)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1년… 저에게 남긴 의미는 이렇습니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나요?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제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네요. 이맘때면 작년 크리스마스가 생각납니다. 그날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요. 크리스천으로서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하면 ‘답게’ 보낼지 고민하다가 우연히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난민을 위한 집회’가 열리는 것을 알게 되었죠. 처음으로 크리스마스를 교회에서 보내지 않고, 가장 친한 친구와 광화문광장에서 예배드렸었죠. 그때 얼마나 울었는지… 그런 크리스마스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삶의 의미가 어디 있는지 어렴풋이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의미를 위해 살겠다고 친구와 함께 마음을 다졌던 일이 벌써 작년이네요.


그 일이 있고 난 후 얼마 지 않아, 저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도미니카 공화국이란 나라에 봉사단원으로 와 있습니다. 오기 전 여러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다짐한 2년이라는 긴 시간을 들인다는 것에 대한 고민, 새로운 것을 도전하는 막연한 두려움과 같은 것들이요. 작년 제 마음은 마치 광야에 버려져 어디로 갈지 모르는 막연한 심정이었죠. 어쨌든 지금 여기와 있지요. 처음 왔을 때 가장 먼저 했던 생각은, 이제 2차전에 돌입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기는 스페인어를 쓰는 국가이고, 스페인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내 역량을 쌓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그렇게 죽을 만큼 공들여서 공부한 것도 지나간 일이 되었어요. ‘약자들과 연대하며 살아가는 것’ 의미 있고 행복한 일이지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현지에 와서 그들을 위해 일을 하고 있지만, 가장 어려운 게 더디더라도 기다려주고, 맞춰가는 일이거든요. 그게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결국은 내 자아를 죽이는 일이더라고요. 한 가지 활동을 기획해도, 생각하는 기반이나 습관이 아예 달라서 너무 당연한 일도 당연하게 안 되는 일도 수두룩하고요. 또 시시각각 변하는 나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저는 이게 하나님이 이 나라에서 주신 숙제 같아요. 어쨌든 열심히 숙제하고 있습니다.


엊그제, 여기서 제법 큰 행사를 했어요. 크리스마스를 맞아 이 지역에 있는 스포츠팀의 토너먼트를 지원하는 행사였어요. 행사에서 제가 바라는 요점은 단 하나, 사업 수혜자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스스로 사업을 만들어 나가는 노력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었죠. 이게 죽을 만큼 힘들더라고요. 관련된 이해당사자도 너무 많고, 사람들 설득하러 다니고, 이견조율하고… 단순해 보이는데 쉽지가 않더라고요. 그런데도 탈진되지 않고 끝까지 행사를 잘 마치게 된 건, 이 일이 주는 의미와 마음으로 돕는 여러 사람 덕분이었던 것 같아요.


이러저러한 일을 겪으면서 드는 생각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하는 생각입니다. 그동안 1년간 있으면서 삶이 비루했지만, 그 안에는 분명히 가슴이 벅차 잠 못 드는 순간이 있었고, 뉘어가는 노을을 보며 행복을 느낀 순간이 있었어요. 삶을 이야기하기에는 잔망스러운 나이지만, ‘하루를 살아도 정말 산 것 같은’ 하루를 위하여서는 내 시간과 돈, 에너지가 아깝게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쓰는 글이 이렇게 무겁게 되었지마는, 저는 잘 지내고 있고 또 앞으로 잘 지낼 거라는 이야기를 띄우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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