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자리에서 구원받은 자의 기록

by 빛별

꿈같던 여행은 추억이 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졸업을 앞두고 대학교 다니며 대부분의 시간을 몸담았던 기독교 동아리 활동을 그만두었다. 귀한 여행의 추억이 남아도 인생이 늘 그렇듯 떠났다 돌아온 자리에는 허전한 마음이 그대로 있었다. 지금 돌아보건대 변함없을 텅 빈 시간을 견디는 법을 훈련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사람들을 만나서 부대끼고 세계적인 일을 하는 것에 뜻을 느끼고 무역학과에 진학했다. 대학 1학년 때 무역학을 공부하며 품은 뜻과 다른 공부임을 직감했다.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것을 꿈꿨는데 내가 바라본 무역은 누군가는 착취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진 판이었다. 대학가에 ‘국제개발협력’ 바람이 불었다. 국제개발협력이란 외교의 일환으로 제3세계국에 원조를 제공하는 정부 사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국제개발협력을 담당하는 기관이 ‘KOICA’인데 기관을 창립하셨던 멤버들이 은퇴를 하고 교수님으로 오셨다. 관련 과목들이 개설되었고, 국제개발협력 학과란 복수전공도 만들어졌다. 전공을 마주한 순간에 꿈꿔왔던 세상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학교 생활 후반전은 행복하게 할 수 있었고, 성적도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꿈꾸는 것을 공부할 때, 행복해하고 능률이 오르는 나를 지켜보며 처음으로 내 ‘가능성’에 대해 생각했다. 그런 대학 생활이었다.


다시 졸업을 앞둔 나로 돌아와서, 당시에 교회 대학부 예배에 참여하고 있었다. 거기 담당 전도사님을 참 좋아했다. 진솔하게 성경말씀을 삶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런 사람이 내 1년을 투자해 대학부 리더로 섬기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을 때, 마음이 동할 수밖에 없었고 오로지 리더의 시간을 위해 졸업을 유예했다. 1년 동안 함께 할 팀원을 차례로 뽑아가는 형태였다. 나는 그때 무언가에 홀린 듯이 모든 사람이 기피하는 사람을 위주로 뽑았다.

예를 들어 막노동을 전전하며 어렵게 생계를 유지해 가지만 집에서는 가정폭력을 당했고 이 전의 교회에서는 상처로 얼룩졌던 팀원, 이성에 대해 자기 절제를 못해 사람들이 기피하는 팀원, 다른 사람을 신뢰하지 않아 마음의 벽이 높은 팀원이 있었다.

어려운 만남이었지만, 이 사람들로 인해 배운 게 있었다. 낮은 곳으로 내려갈수록 내가 구원받는 신비를 깨닫게 된 것이다.


사는 이유

27살. 졸업을 1년씩이나 미뤄서 교회 대학부 '빛별댁' 리더로 버티고 또 버텼다. 남들은 가장 중요한 시기에, 인생을 허비해 버렸다고 비웃어 버렸을 것이다. 네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이냐고, 꼭 너여야만 했느냐고. 그 말에 나는 뭔가 대답해야만 했다.

나이가 주는 압박감, 리더로서의 무게감, 또 회의감 -. 이런 것을 견뎌내며, 지금 마지막을 바라본다.

정말 힘들었지만, 기쁜 일도 많았다. 우리는 '소외된 자를 위한 모임'을 꿈꿨다. 우리는 각자 살아간 상처가 많은 모임이었고, 그렇기에, 절대 모임을 가벼운 마음으로 할 수 없었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모이는 걸 즐거워하고, 서로의 상처를 싸매어 줄줄 알았다. 작은 것에 기뻐하고, 사소한 일에 기대했다.

어려서부터 배우기로 "축복받은 크리스천이 되어서 가난한 자, 소외된 사람, 약자를 구원에 이르게 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하지만, 소중한 1년을 던져서 깨달은 것은, 우리가 불쌍하게 여기던 그 사람들로 인하여, 내가 진정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모임의 한 친구가 내게 해 준 말이다. "저는 하나님이 있는지, 천국이 있는지도 몰라요. 그런데가 어떤 덴지도 몰라요. 하지만 천국이 우리 모임 같은 곳 이면 좋겠어요."... 또 눈물이 난다... 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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