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책태기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를 읽고

by 곽예지나

이 책을 읽는 데 무려 한 달의 시간이 걸릴 일이냐. 정확히 말하자면, 책을 '읽는 데' 한 달이 걸린 것은 아니었다. 하루 읽고 나서 책상 위에 올려두고 일주일쯤 바라보고, 또 잠깐 읽고 나서 식탁 위에 놓아두고 5일쯤 쏘아보고. 이 책 한 권으로 이토록 심한 책태기가 올 줄은 몰랐다. 결국 9월에 완독 한 책이 한 권도 없었다. 길고 긴 추석 연휴가 아니었더라면 영원히 못 읽었을지도.


순수하게 읽은 시간만 계산하면 10시간 정도 걸린 것 같은데, 그렇게 어렵지도 않은 이 책은 동치미 없이 먹는 밤고구마처럼 목에 턱 걸려있었다. 다 읽고 나서 가장 크게 느낀 감상은 이랬다. ‘나는 헤밍웨이하고는 정말 안 맞는구나. 다시는 안 읽어야지.’


내가 헤밍웨이를 처음 접한 것은 책이 아니라 영화를 통해서였다. <미드 나잇 인 파리>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시간 여행을 하게 되는데, 당시 파리에 모인 수많은 예술가 중의 한 명이 바로 헤밍웨이였다. 잘 생긴 외모와 지나치게 마초 같은 성격, 엄청난 여성 편력을 자랑하는 헤밍웨이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나의 이런 느낌은 오해가 아니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다만 영화에서는 그런 점을 좀 더 강조하고 희화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작품 전체가 지나친 남성성과 허세에 잔뜩 절여져 있는데, 이것이 헤밍웨이를 대표하는 특유의 문체란다. 감정 표현을 절제하고 인물의 행동과 대사로만 담백하게 글을 표현한다나? 그래서 극 중 주인공은 자신의 나라에서 벌인 전쟁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에서 참전하는 젊은이들의 현실이나, 다리에 포탄을 맞아서 위급한 수술을 앞둔 상황에서도 태연자약하다. 상사의 명을 거역한 병사를 쏠 때도, 부하가 죽는 상황에서도 역시 감정의 동요는 그려지지 않는다. 탈영병이 되어 목숨을 걸고 스위스로 건너가면서 점심 잘 챙겨 먹고 술 꼬박꼬박 마시며 사랑하는 여인 캐서린과 담소를 나누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이런 주인공이 막바지에 이르러, 출산을 하다가 아이와 캐서린이 모두 사망하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가 되어서야 응축되어 있던 감정과 생각이 한 번에 툭 터지면서 글 전체를 꽉 채우게 된다. 하지만 그 변화가 너무 급격한 데다가, 처음에는 잠 한번 자보려는 목적에서 접근한 캐서린을 그토록 사랑하게 된 과정이 전혀 그려지지 않아서 그저 당황스러울 뿐이다. 글의 해설에서는 이런 변화가 바로 주인공의 성장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아니, 성장이 무슨 슈퍼 마리오가 버섯 먹는 것처럼 한 번에 짜잔~ 하고 일어나는 거야? 독자들한테 소리소문도 없이 언제 그런 일이?


비통함과 슬픔에 빠진 주인공의 마지막 모습을 그려내며 책이 마무리되지만, 나는 주인공에게는 몰입이 하나도 안 되고 그저 세상을 떠난 캐서린만 불쌍할 뿐이었다. 이 책 덕분에 지독한 책태기를 겪은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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