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숙의 <라이팅 클럽>을 읽고
제목만 봤을 때에는 주인공이 글쓰기 교실을 운영하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들을 모아 놓은 옴니버스 형태의 책일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사실 이 책을 빌려오게 된 가장 큰 계기는 마지막에 수록된 이슬아 작가님의 작품 해설 때문이었지만. 내 기준 ‘징하게 글을 잘 쓴다’ 싶은 작가가 추천하는 책이 어떤 건지 궁금했고, 그래서 얼른 읽어보고 싶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그래서 어땠는데?”라고 질문한다면 속 시원하게 대답하기 애매한 구석이 좀 있긴 하다. 하지만 확실한 건 뒷 이야기가 계속 궁금한 책이었다.
주인공인 영인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형태의 모성애는 기대하기 힘든 엄마 ‘김 작가’와 함께 생활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열린다. 서울 계동에서 세 들어 사는 아주 작고 좁은 집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는 놀랍게도 후반부에 이르러 머나먼 미국 땅까지 그 활동의 장이 넓게 열린다. 이쯤 되니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야기의 흐름이 약간 당황스럽기도 하면서, ‘그래. 그럼 어디까지 가는지 한번 보자.’하며 자세를 고쳐 앉고 읽기 시작했다. 결국 주인공이 하는 고민은 서울의 좁다란 집 한 귀퉁이나 광활한 미국에서나 사라지지 않고 마찬가지다.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몸이 상하도록 글을 써 재끼다가, 급기야 전단지를 돌려 자신과 같이 글을 쓸 사람들을 모집하는 라이팅 클럽을 연다. 김 작가의 글쓰기 모임을 그렇게나 경멸하고 질색했으면서 결국 엄마와 똑같이 라이팅 클럽을 만들게 되는 주인공의 운명이란.
주인공이 질색하는 김 작가는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며 근근이 생계를 유지한다. 생계유지가 목적이라고는 해도, 사실은 삶의 원천이 솟아나는 숨구멍 같은 곳이다. 매 시간 누군가와 함께 하면서 대화를 나누고 술을 마시며 인생의 교집합을 둔다. 최악의 시기를 보내는 때조차 김 작가는 혼자 틀어박히지 않는다. 사실 이 책은 철저히 주인공의 시선에서 서술되기에, 김 작가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며 질색팔색하는 언급이 많으므로 독자도 어찌 되었든 김 작가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도, 독서 기록을 쓰는 지금 이상하게 자꾸 김 작가의 편을 들게 되는 것이 희한하긴 하다. 하긴, 책의 마지막에서 주인공도 결국 김 작가와 진실된 화해의 순간을 이루어내는 걸 보면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머나먼 미국땅까지 가서 라이팅 클럽을 결성하고야 마는 자신과 엄마는 결국 닮은 사람이라는 것을. 개정판을 낸 작가의 말을 보면 작가 또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처음에 난 아마 영인 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약간은 김 작가 편이 된 것 같다.’ 새파랗게 젊고 치기 어릴 때는 보이지 않는, 조금은 나이 먹은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발견할 수 있는 인생의 미덕이라는 것이 분명 있는 모양이다.
도대체 쓴다는 것은 뭘까? 쓴다는 게 무엇이길래 어떤 사람들은 쓰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것처럼 글을 쓸까. 나 또한 정신적으로 절벽에 다다른 것 같은 순간에 글을 씀으로써 그 순간을 간신히 넘기곤 했던 경험이 생생하지만, 그 외의 평이한 삶에서는 쓴다는 것이 가끔은 부담스럽고 귀찮은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쓰지 못해서 견딜 수 없는 그 사람들은 매 초 매 순간이 절벽에 서 있는 것 같을까? 그런 날 선 신경선 위에 서 있지 않다면 작가가 될 수 없는 걸까? 적당히 안락하고 윤택하며 견딜 수 있을 정도의 쓰지 않는 삶과, 도저히 쓰지 않을 수 없어서 살기 위해 늘 쓰는 삶 중에서 골라야만 한다면 나는 어떤 삶을 고를 것인가?
결말까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는 이 책의 가장 마지막에 수록된 김 작가의 편지 6줄은 이 책을 읽는 데 사용한 나의 시간을 의미있게 만들어준다. 나 또한 특정 시각마다 마음속으로 되새김질하게 될 그 편지. 왠지 그냥 턱 하고 공개하고 싶지가 않다.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낸 독자들끼리만 공유할 수 있는 비밀 아닌 비밀으로 남겨놔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