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한강 작가의 작품 중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에 이어 세 번째로 읽은 책이다. 길게 글을 쓸 만큼 몰입해서 읽지 못했고, 여러모로 아쉬웠다. 쓰고 보니 앞 뒤가 바뀌었다. 여러모로 아쉬웠고, 그래서 몰입해서 읽지 못했다.
일단 흡입력이 부족했다. <채식주의자>는 내 인생 Worst3 안에 꼽히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첫 장을 읽은 그날 끝장을 봤다. ‘도대체 뭔 소리를 어디까지 하는지 한번 보자.’ 하는 심리 때문이었다. <소년이 온다>는 챕터 별로 화자가 바뀌기는 했지만,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읽기 쉽게 쓰인 책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 역시 하루에 다 읽어버렸다. 마음속에 오래 담고 있는 것이 괴로워서 얼른 털어버리고 싶기도 했다.
반면 <작별하지 않는다>는 책이 시작되고도 한참 동안 작가가 하는 이야기 중에서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 읽어야 하는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4.3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데도 그랬다. 경하의 암울했던 인생과, 작업실에서 큰 부상을 입어 고통스럽게 재활을 하는 인선과, 인선이 살리고 싶었던 새와, 인선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들이 연결성 없이 불쑥 등장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몰입해서 읽을라치면 갑자기 새로운 장이 열렸다. 그래서 책을 읽어내는 시간도 오래 걸렸다.
한강 작가의 특기이자 강점,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너무 괴로워서 견딜 수 없게 만드는 적나라한 서술도 여전히 나랑 맞지 않았다. 그러면 안 되는데, 받아들이기 너무 힘든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그것과 용기 있게 대면하기보다는 자꾸 모른척하고 싶어진다. ‘내 불행의 밑바닥을 같은 이유로 다른 사람이 외면해도 된다는 소리야?’라고 스스로에게 여러 번 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피하고 싶었다.
얼어붙을 듯 차가운 추위를 표현하기 위해 작가가 거듭해서 사용한 다양한 묘사를 곱씹는 것도 쉽지 않았다. 시각적 묘사를 계속 떠올리며 읽어야 하는 책은 피곤하다. 내가 보는 건 그냥 검은 글씨뿐인데도 눈앞이 지나친 시지각 정보에 혼란을 일으키는 것처럼 뻐근해진다. 이것은 감각적 묘사를 받아들이는 나의 능력이 너무 취약한 탓이지, 작가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역시 힘들었다.
그냥 일상에서 가볍게 스쳐 지나가는 한 장면에도 작가는 모든 감정과 감각과 심오한 내면을 찾아내고 그것을 글로 표현한다. 얼마나 괴로운 삶인가. 얼마나 버거운 인생인가. 다른 사람과 똑같은 하루를 살지만, 다른 사람이 느끼는 것의 2배, 3배의 기쁨, 슬픔, 괴로움, 즐거움, 고통, 흥분, 그리고 죄책감을 느끼는 삶은 얼마나 무거울까. 심지어 작가가 느끼는 감정이 부정적인 부분에 한껏 몰려있다면. 그렇고 싶지 않은데 불가항력처럼 결국 그렇게 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