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제제(師師弟弟)

교사는 교사답고, 제자는 제자다울 때 교실의 질서가 선다.

by 곽예지나

예전에는 학생들에게 많은 권한을 부여할수록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교실의 일에 대한 주도권을 갖는다면 그만큼 주인 의식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교사가 할 수 있는 일과 학생이 해야 하는 일의 경계를 더 명확하게 긋기 위해서 노력 중이다.


첫째, 급식 검사, 청소 검사와 같이 학생들끼리 분쟁이 일어날만한 일은 반드시 교사가 관리한다. 위의 일들을 학생과 나누어 관리하면 교실에서 교사의 관리 부담이 확 줄어든다는 점은 확실하다. 그러나 엄청 간단해 보이는 이 일들은 의외로 객관적인 판단이 어렵다. 어떤 친구는 국물까지 싹 비웠고, 어떤 친구는 국물은 다 남겼다면? 어떤 친구는 국물밖에 안 남겼지만, 어떤 친구는 국 안에 건더기가 조금 있다면? 아침부터 배가 아파서 급식을 먹기 어렵다면? 분명 괜찮았었는데 갑자기 배가 아파서 급식을 다 못 먹겠다면? 배가 아픈 건 아닌데 구내염이 심해서 다 먹기가 어렵다면?


이런 상황이 교실 밖에 사람들에게는 별것 아닌 일에 엄청난 에너지를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당사자인 아이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아이들은 공평하게 대우받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교실에 n명의 학생이 있다면 변수는 n명에 몇 배를 곱한 값으로 발생하므로 각 사안들에 대해서 융통성 있게 접근하고 판단을 내리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판단을 앞두고 아이들끼리 실랑이가 벌어지게 된다.


게다가 똑같은 결정을 교사가 했다면 아이들이 그냥 넘어갔을 일들도, 친구들끼리는 납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판단 주체의 권위와 관련 있는 것으로, 같은 학생들 사이에서도 A가 검사할 때는 별다른 마찰이 없었지만, B가 검사할 때는 자잘한 문제들이 계속 발생하기도 한다. 결국 이런 작은 갈등의 씨앗들이 모여서 언젠가 큰 갈등을 유발하게 된다.


둘째, 교실 정숙의 역할을 학생에게 맡기지 않는다. 학교 다닐 때 반장이 교실 앞에 나와서, 칠판에 <떠든 사람>이라고 적힌 글씨 아래 다른 친구들의 이름을 적는 모습. 다들 익숙할 것이다. 나도 발령 초기에는 학창 시절에 늘 봐 왔던 그 기술을 자연스럽게 사용했었다.


하지만 이내 문제점이 드러났다. 정말 심지가 굳은 스타일이 아니라면, 반장 역할을 맡은 학생의 스트레스가 너무 컸던 것이다. 분명 저 친구가 장난을 쳐서 이름을 적은 건데, 적힌 친구가 반성하기는커녕 내 이름을 왜 적었냐고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경우가 빈번했다. 나랑 친한 친구의 이름을 적어야 할 때는 친하니까 이름을 막 쓰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마냥 봐주기도 어려운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반장에게 교사를 대신하여 실내 정숙을 맡기는 순간은 교사의 회의나 업무 때문에 잠깐 교실을 비우게 될 때이다. 하지만 일이 끝나고 막상 교실에 들어와 보면 교실이 조용하기는커녕, 아이들끼리 실랑이를 벌이다가 술렁술렁하거나 서로 나쁜 감정이 오가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이 90년대 학교처럼 교사가 막강한 권력을 발휘하고 그 힘이 반장에게도 이양되는 교실 분위기라면 괜찮았겠지만, 현재의 학교 상황과는 맞지 않아서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교사가 교실에 입실해 있을 때는 실내 정숙 지도는 교사가 담당해도 충분했다. 그리고 부득이하게 자리를 비워야 할 때는 반장 역할을 맡은 학생에게 딱 한 가지만 부탁했다. 학생들이 자기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다. 돌아다니지 않고 자기 자리에 앉아 있으면 큰 장난이나 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예방할 수 있고, 이 정도만으로도 교사가 없는 상황에서 교실 정숙이 필요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셋째, 질서를 어기는 아이들을 교사가 아닌 다른 학생이 지적하지 않도록 한다. 줄을 안 서고 있는 친구에게 “야, 빨리 와서 줄 서.”라고 말한다거나, 수업 시간에 떠드는 친구에게 “너 땜에 시끄러운 거 안 보이냐? 조용히 좀 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그 친구가 맘에 안 들어서 갈구고 싶은 것이었든, 아니면 교실 질서 유지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든지 간에 이것은 옳지 않은 선택이다.


단기적으로는 장점이 있을 수 있다. 분위기를 살피지 못하고 행동하는 아이들이 교실의 여론을 인식하여 그 순간에는 잠잠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 이렇게 한 사람을 공개적으로 지적하는 방식은 교실 안에 또 다른 암묵적인 규칙을 만들어 낸다. 서로 간에 비난이 용인되고, 문제가 될 만한 일을 했다면 한 명을 다수가 공격해도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팽창하는 우주처럼, 한 지점에서 시작된 성질이 교실 전체로 서서히 퍼져 나간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범위는 넓어지고 학기 말에 가까워질수록 교실의 공기 자체가 달라진다. 한 번 자리 잡은 비난의 분위기는 저절로 수그러들지 않으며 다시 중립적인 상태로 되돌리는 일은 처음부터 그런 흐름을 만들지 않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분명하게 선을 그어 주었다. 교실의 질서를 관리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교사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학생들의 역할은 교사를 대신하여 누군가를 단속하거나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가 생기기 전에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정말로 친구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잘못된 행동을 지속하기 전에 조용히 신호를 보내주면 된다. 줄을 안 서고 멍하니 있는 친구 옆에 살짝 서서 함께 줄을 맞추거나, 선생님의 시선을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떠들고 있는 친구의 책상을 가볍게 톡톡 두드려 주는 것이다. 누군가 규칙을 어길 때 대신 나서서 말해 주는 것이 정의로 포장되기 쉽지만, 실제로 그것은 또 다른 통제이자 공격이 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내가 학생들에게 종종 하는 말이 있다.

“그건 선생님의 일이야. 선생님이 알아서 할게.”


이 말은 권위를 앞세우겠다는 뜻이 아니라, 책임을 너희에게 넘기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교실의 질서를 세우고 판단을 내리며 갈등을 감당하는 일은 교사가 맡아야 할 몫이지, 학생들이 대신 짊어질 짐이 아니다.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역할을 떠맡기면, 교실의 역할 구조가 흔들리게 된다. 아이들은 서로를 단속하고 평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정한 말을 주고받고 우정을 쌓기 위해 학교에 왔다. 교사가 제자리에 서서 자기 몫의 책임을 감당할 때, 아이들은 비로소 안정된 교실 안에 머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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