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부산, 부산

2025년 6월 1일

by 곽예지나

am 6:06


여행 셋째 날이자 마지막 날. 휴대폰 자판으로 일기 쓰기 쉽지 않다. 그렇지만 가뜩이나 정신없는 여행 준비에 노트북 하고 충전기까지 챙겨 올 짬은 없다.

옆에서는 린아가 쿨쿨 자고 있다. 여행 일정으로 피곤한 딸이 혹시라도 깰까 봐 조용히 일기를 쓴다. 바스락 거리는 침구를 좋아하는데, 움직일 때마다 소리가 너무 커서 마음이 쫄린다.


걱정했던 층간소음 에피소드는 더 이상 없었다. 아침 9시에 나가서 밤 9시에 돌아왔다가 9시 40분에 소등했으니 소음을 일으킬만한 시간이 없었다고 해야 하려나? 이제 오늘 아침만 잘 버티면 된다. 어차피 아침에도 준비되자마자 부리나케 나갈 거니까 괜찮다.


어제는 태종대-이케아-롯데월드로 이어지는 코스였다. 여행기를 상세하게 쓰는 타입은 아닌지라, 일기에 여행 후기를 적어볼까 했는데 급 귀찮음이 몰려온다. 서사에 약한 것인가, 서사를 기록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인가. 둘 다 인 것 같다. 아무튼 간략한 기록으로 기억의 유효기간을 늘려보기로 하자.



1. 태종대

이른 시간에 도착해서 긴 기다림 없이 다누비 열차를 이용할 수 있었다. 순환형 티켓을 구입하면 가격도 저렴하고 어디서나 내리고 탈 수 있어서 좋다. 영도 등대 근처가 경치도 아름답고, 계단을 오르고 내리면서 운동하는 느낌이 확실히 나서 좋았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내 다리 컨디션은 확실히 안 좋아졌다. 월요일에 한의원 방문 예약 당첨.


해안의 기암절벽에 부딪치는 하얀 파도를 보고 있으면 그저 시간이 흐른다. 바다를 볼 때마다, 앉은자리에서 의자만 살짝씩 옮겨 석양을 봤다는 어린 왕자가 떠오른다. 나도 하루 종일 바다만 보고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보는 것만. 직접 들어가는 건 사양...


태종사는 예상보다도 훨씬 작은 절이었다. 여기는 길가에 핀 수국이 유명한데, 5월 말인 지금은 개화철이 아니다. 대신 비교적 평탄한 길과 시원한 산책로가 영도 등대의 다이나믹한 길과 대비감을 주어 기분 좋게 코스를 마무리했다.


2. 이케아

남편이 오프라인에서만 판다는 전구를 사고 싶다고 해서 들렀다. 이런 곳에서 유림이는 입장하자마자 출구로 돌진하기 때문에 둘 중 한 명은 구경이 불가하다. 목적이 뚜렷한 남편이 린아와 쇼핑을 하고, 나는 뛰어다니는 유림이 손을 부여잡고 끌려다녔다. 대형견의 목줄을 잡고 끌려가는 주인의 모습을 상상하면 딱 들어맞는다.


이케아에서 유림이가 제일 좋아한 장소는 바로 구멍이 송송 뚫린 주차장 입구 쪽 철제 계단이었다. 시각 추구 하기 제격이니까.



3. 롯데월드

부산 롯데월드가 워낙 전반적인 평이 안 좋아서 걱정했는데, 사람도 적당히 많고 어린아이들 대상으로 한 놀이기구가 몰려있어서 좋았다. 규모가 작은 점이 가장 혹평을 받던데, 오히려 근 거리에서 대부분 해결이 되니까 편하더라. 에버랜드처럼 놀이기구 사이에 거리가 너무 멀고 경사로까지 있으면 이동하느라 진을 다 빼서 별로다. 나 혼자 놀러 오면 모르겠지만 아이들을 동반하는 거니까.


쫄보 린아는 무서운 건 못 타고 아담하고 귀여운 놀이기구만 꺅 꺅 소리 지르면서 재미있어했다. 하나 탈 때마다 평균적으로 20~30분 정도 기다렸는데, 힘들다는 말 없이 잘 서 있었다. 하지만 다음에는 간이 의자 아이템을 들고 와야겠다고 다짐했다.

놀이동산은 사람 없이 썰렁해서 바로바로 원 없이 타는 것보다, 한 개를 타더라도 소중하게 탈 정도로 적당히 붐비는 것이 더 좋다. 그래야 진짜 놀이동산에 온 듯한 기분이랄까?


유림이는 맨 처음에 회전목마 딱 한 개만 타고, 그 뒤로 저녁 먹기 전까지 2시간 동안 놀이기구 사이를 돌아다니기만 했다. 정말 놀이동산에 온 기분만 낸 사람이 여기 있네.



들을 때마다 정겨운 부산 사투리, 반짝이는 파도, 부산 친구에게 선물 받은 막걸리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라떼, 그 친구에게 덥석 업혀가던 유림이, 양꼬치 앤 칭따오 조합과 속 쓰린 마라탕, n 년만에 본 불꽃놀이. 일기에는 다 못 적었지만 그냥 흘려보내기 아까운 순간의 기억들.


여기까지 적고 나니 유림이가 거실로 나온 소리가 들린다. 나도 나가봐야겠다. 혹시라도 유림이가 숙소 밖으로 탈출하면 안 되니까.


am 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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