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환의 <그릿>을 읽고
여기저기서 들어서 워낙 유명한 앤젤라 더크워스의 <그릿>을 올해 3월에 읽었었다. ‘참 좋은 말이긴 한데, 뭔가 마음을 덜컹하고 움직이는 게 없네?’라는 것이 종합평.
블로그에 독후 기록을 업로드하며 책의 링크를 걸었는데 김주환 교수의 저서였고, 블로그 이웃님이 링크가 잘못된 것 같다고 알려주시면서 김주환 교수를 소개해주셨다. 그렇게 알게 된 김주환 교수의 <그릿>. 도서관에 예약 신청을 해 두고 한 달여의 시간을 기다리다가 드디어 읽게 되었다.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독자들이 오해하고 있는 점은, 그릿이라는 개념의 창시자가 당연히 앤젤라 더크워스일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김주환 교수가 그릿의 초판을 발행한 것이 2013년이고 앤젤라 더크워스의 그릿이 출간된 것은 2016년이다. 이렇게 김주환 교수의 책이 3년 먼저 출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김주환 교수가 앤젤러 더크워스의 책을 따라 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한국 학자가 먼저 어떤 개념을 구상해 책을 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독자들은 알아주길 바란다.”라고 적고 있다. 저도 반성합니다…
김주환 교수의 그릿은 앤젤라 더크워스의 그릿과 비슷한 듯 하지만 다르다. 일단 김주환 교수의 그릿이 좀 더 포괄적인 개념이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차이점. 더크워스가 설명하는 그릿은 어떤 것을 해내기 위해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끈기를 말한다. 하지만 김주환 교수는 더크워스의 그릿은 성공의 원인이 아닌 결괏값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니까 지독한 끈기가 있어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내면의 힘을 길러 마음 근력을 강하게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이 그 지독한 끈기라는 것이다.
한 개인의 성장을 완성하기 위해 저자는 ‘편안전활’이라는 단어를 소개한다. 편도체 안정, 전전두엽 활성화의 줄임말이다. 이것을 좀 더 풀어보면 대인관계력, 자기 통제력, 자기 조절력을 길러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고 이 마음 근력들을 기를 수 있는 방법을 책 전체에서 알맞게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자세한 내용을 내가 굳이 이 글에 옮겨 적지는 않겠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내 독후 기록이 약간 이런 식이다. 책에 대한 정보는 없고 대신 내 상념들만 잔뜩 떠다니는...
이 책은 단순히 자기 계발서라기보다, 학업에서 우수한 성적을 기르고 싶은 학생이나 학부모, 선생님을 위해서 저술된 책이다. 그래서인지 성공의 결과와 성적 향상을 연결짓는 설명이 많다. 하지만 현재 입시와 직접 관련 없는 독자에게도 적용 가능한 팁들이 많다. 전반적으로 더크워스 버전보다 김주환 교수 버전의 그릿이 훨씬 재미있고 실용적이며 알찬 구성이라고나 할까?
좀 더 공격적으로 책을 읽었다면 대학교 때 공부하던 것처럼 각 장의 목차를 따서 중요한 내용을 요약 정리 했겠지만, 그렇게까지 심혈을 기울여 읽을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으므로 인상 깊은 몇몇 문장에 태깅만 했다. 그랬더니 큰 뼈대와 하위 가지들의 분류 없이 정보들이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떠오르는 식이라서, 독서 후기를 적는 지금 상당히 고전하고 있다. 더 정확히 묘사하자면, 문장 한 줄 작성하면서 머리 한 번 쥐어 뜯는 중이다. 역시 비문학 감상 후기는 쉽지 않아.
마지막으로 읽으면서 그냥 떠올랐던 자잘한 생각 하나.
저자가 ‘감정은 기억이나 생각에서 유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의 반응에서 오는 것이다. 나쁜 기억을 떠올렸을 때 우리 몸의 상태가 변하고, 그 변화를 뇌가 감정으로 해석해 내는 것이다.’라고 쓴 부분을 읽으며 이런 장면을 상상했다.
흔한 커플들의 싸움 장면. 여자가 토라졌다.
“오빠, 나 지금 아까 오빠가 한 말 때문에 지금 너무 슬프고 우울해.”라고 말한다.
그러자 남자가 이렇게 대답한다.
“네가 지금 느끼는 감정은 우울이 아니라 두려움이야. 모든 부정적인 감정의 근원은 두려움이거든. 그리고 내가 한 일 때문에 우울해진 게 아니라, 내가 한 일을 떠올렸을 때 일어난 너의 신체 반응으로 인해 뇌가 그렇게 해석하는 것뿐이야.”
과연 이 커플의 운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