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방은 몇 번째였을까

김미월의 <여덟 번째 방>을 읽고

by 곽예지나

꿈도 없고 목표도 없는 20대 영대의 이야기와, 영대가 독립하게 된 지하 단칸방의 전 세입자 지영의 일기가 번갈아 등장하는 액자식 구성의 책이다. 영대의 이야기에서는 밑줄을 그을만한 문장이 거의 없었지만, 지영의 글은 필사하고 싶은 문장이 의외로 많았다. 내가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책을 다 읽고 나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석이라는 인물은 실존한 것일까?

지영과 절친하게 지냈지만 결국 헤어지게 된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석은 일기의 마지막까지 지영과 함께 한다. 공인중개사로 일하면서 지영이 새로 집을 구할 때나 이사할 때 빠짐없이 도움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석은 관의 친구였다는 소개로 초반에 잠깐 안내될 뿐, 지영이 글을 쓰는 현재의 시점을 제외하면 과거의 어느 순간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는 또 있다. 지영이 거쳐 간 현재 영대의 방은, 불을 껐을 때 바퀴벌레가 온 벽을 뒤덮으며, 공용 취사실과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고, 그나마 있는 화장실도 3칸 다 막혀 있어서 볼일을 볼 수 없는 열악한 구조이다. 지영이 전에 살던 곳이 궁궐같이 좋은 곳은 아니었지만, 이만큼 후진 곳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석의 배려로 취직까지 하여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었을 지영이 왜 이곳에서 살게 되었단 말인가? 게다가, 친구인 지영에게 그런 방을 소개해준 석은?


결국 생각할 수 있는 해답은 두 가지이다.

첫째, 석은 실존 인물이 아니라 지영의 상상 속 친구이다. 가깝던 사람들과 헤어져 외로움과 생활고를 겪는 지영이가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지영이를 속속들이 이해하며, 지영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친교 관계를 맺는 완벽한 캐릭터는 사실 지영의 인생에서 조금 이질적이다.

둘째, 석과 지영이 어떤 연유로든지 사이가 틀어져서 서로 멀어졌다. 그래서 석이 근무하는 부동산의 직장도 나갈 수 없고, 석에게서 새로운 방을 소개받을 수도 없게 되었다.


현실적으로는 두 번째 해석이 더 사실감 있겠지만 왠지 첫 번째 해석이 더 끌린다. 하지만 어떤 해석을 선택해도 결국 지영이 도착한 곳이 그 어두운 방이라는 것은 달라지지 않으며, 이것은 매우 비극적이다. 객기로 인하여 부모에게서 잠깐 독립한 영대와는 달리, 지영의 인생은 그 방 한 칸을 벗어나기 힘든 상태이기 때문이다.



책장을 덮고 나서 제일 놀랐던 점. 내가 읽은 책이 겨우 2판 1쇄였다는 것이다. 이 책은 2010년에 1판을 찍었고, 2023년에야 2판을 찍었다. 하지만 책의 주제나 글의 흐름, 전체적인 분위기나 문장의 유려함 등을 볼 때, 겨우 이 정도 팔릴만한 책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잘 쓴 글도 조명을 받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이 정도까지만 알려지는구나. 아쉬움과 약간의 무서움을 동시에 느꼈다.


자기 스스로와 혹은 세상과 투쟁하며 성장통을 앓고 있는 20대 젊은이들이 읽어도 좋고, 지나간 20대의 기억이 선명한 세대들이 읽어도 좋겠다. 넓은 세대를 아우르며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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