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계관으로 보는 세상

채사장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0>을 읽고

by 곽예지나

am 6:07


<지대얕> 시리즈는 여러 권이 있는데, 그전에 내가 읽었던 것은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에 대한 내용을 담은 1권이었다. 인문학 서적의 누드교과서(이상한 책 아니고, 2000년대 초반 수험생들에게 핫했던 참고서적)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해하기 쉽게 쓰인 책이라고 생각했다. 개념을 설명하고, 중간중간 정리하고, 마지막에 총결산까지 해주는. 재료 준비해서 요리를 만들었는데 심지어 숟가락에 올려서 입에 떠먹여 주기까지 하는 느낌의 책이라고 해야 하나? 인문학 관련 상식이란 소설에서 주워들은 것 외에는 거의 전무하던, 신생아 같은 수준을 뽐내던 내게 한 줄기 광명 같은 책이었다.


이번에 읽은 것은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이다. ‘제로’에서 탐색하는 것은 우주, 인류, 베다, 도가, 불교, 철학, 기독교이다. 더 함축하면, 일원론적 세계관과 이원론적 세계관이다.


인류에게 큰 가르침을 준 위대한 스승들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놓고서는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논하는 것은 우주다. 정말이지 책을 폈다가 곧바로 접을 뻔한 큰 위기가 여러 번 있었지만,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알맞게 삽입된 중간 정리 챕터가 돌아서는 내 어깨에 손을 올려 나를 돌려세웠다. 그리고 힘겹게 우주 부분을 넘겼더니 그 뒤부터는 튜브를 타고 신나게 계곡의 물살을 내려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흐름을 탄 것이다.


<지대얕> 시리즈는 이름에 걸맞게 넓고 얕은 지식을 다루는 책이다. 어느 한 분야로 깊게 파고들기보다는 전체를 훑어서 큰 그림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책. 보통 사람들이 살면서 이름 한번 들어보지 못했을 학자들이나, 생전 처음 접해보는 개념을 아주 쉽게 액기스만 추출하여 알려준다. ‘이 책에서는 이 정도까지만 알아두고, 이 중에서 네가 관심이 생기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나중에 따로 더 찾아봐.’라고 말하는 것처럼.

수업 준비를 하다 보면, 이것도 중요한 것 같고 저것도 말해주고 싶고 그것도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서 마구잡이로 여러 자료를 준비한다. 그러다가 정작 실제 수업에서는 핵심에 도달하지 못한 채 곁가지만 뜯다가 끝나는 때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가는 아주 실력이 좋은 선생님이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지식을 가르칠 때 갖춰야 하는 가장 중요한 자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내용은 술술 읽혔지만 읽는 내내 고개를 갸우뚱했던 것. 그래서 작가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뭐지? (작가의 서술에 따르면) 일원론적 세계관이 이원론적 세계관에 비해서 인간 내면과 주변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서 더 정확한 시선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그래서 그게 내가 지금 사는 이 삶과 어떤 관련이 있다는 거지? 하는 질문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책의 에필로그에 이르러 나의 이 의문은 말끔하게 해소된다. 보통 나는 감상 후기에 책의 내용은 잘 싣지 않지만, 이 단락을 읽으면서 정말 문자 그대로 무릎을 탁 쳤기 때문에 옮기지 않을 수가 없다.


문제는 우리에게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갖가지 느낌과 상념이 사실은 우리가 이원론의 세계관 위에 발 딛고 있기에 필연적으로 갖게 된 것들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눈앞의 세계가 실재한다고 믿는 것도, 그래서 마음이나 정신은 소홀히 하고 눈앞의 물질세계에 마음을 뺏기는 것도, 세계와 자아를 독립된 실체로 느끼며 자신이 소멸한 이후에도 세계가 존속할 것이라고 믿는 것도, 그러니 나의 인생이라는 것은 덧없고 허무하다고 느끼는 것도, 나의 내면은 보이지 않으니 그 안을 들여다볼 생각은 하지 못하고 타인의 말에 휘둘리게 되는 것도 모두 우리가 자아와 세계를 나누는 이원론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에 갖게 된 사유의 흔적들이다.

채사장,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0> 549쪽에서 발췌


내가 살면서 수없이 의문을 가지고 답을 알고 싶었던 것에 대한 결론이 여기 있었다. 나는 인간이 결국 죽지만 왜 살아야 하는지, 나라는 존재가 사라져도 세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을 건데 그러면 나는 무슨 가치가 있는지, 물질적인 것에 탐닉하고 욕심을 부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불행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사람들은 도대체 왜 그러는지 등등 도무지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을 계속 갖고 있었다. 이런 내게 스스로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설명은 ‘이유는 없어. 그냥 그래. 의미를 찾으려고 하지 마. 꼭 의미가 있어야 존재하는 건 아니야.’였다. 하지만 그런 허무론적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은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았다. 결국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이 되지는 않으니까. 그런데 내가 이런 세계관을 갖고 내 바깥쪽을 바라보며 수없이 고통을 받았던 것이 사실은 알게 모르게 몸에 배어있는 이원론적 세계관 때문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물론 작가가 완벽하게 계산된 의도로 책을 저술한 만큼, 자신이 말하고 싶었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부분만 강화하여 안내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읽어온 책 중에 이렇게 분명한 가르침을 나에게 준 책은 없었다. 어찌 보면 위험하리만큼 단적인 결론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 하나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왜 우리는 인문학을 읽어야 하고, 사람의 마음속에 자신만의 철학이 있어야 하는 것인지.


지겹고 따분하고 현학적인 것처럼 느껴졌던 인문학에 대한 새로운 눈이 뜨이는 순간, 독서에 대한 내 세계관이 확장된 순간! 책을 덮으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am 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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