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나 인간이나

조제 오웰의 <동물 농장>을 읽고

by 곽예지나

am 6:03


책을 재미있게 읽으면 오히려 독서 후기를 쓸 때 좀 긴장된다. 잘 쓰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에 읽은 <동물 농장>과 그 뒤에 수록된 에세이를 읽고 난 후처럼 너무 즐겁게 읽고 머릿속에서도 여러 가지 생각들이 수 없이 뒤 섞이면서 기분 좋은 긴장감을 느꼈지만, 막상 그 문장들을 정선하고 정렬하여 한 편의 글로 묶을 수 없을 것 같을 때 더욱 그렇다.


이 책을 읽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닌 것 같다. 책의 결말에서 돼지들이 인간처럼 옷을 입고 두 다리로 걸어 다니는 모습과 관련된 삽화를 어디선가 본 것 같기 때문이다. 살이 뒤룩뒤룩 찐 이 돼지 인간들의 이미지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나오는 돼지들의 얼굴과 겹쳐서 어찌나 생생하게 떠오르던지. 돼지 하면 생각나는 가장 부정적인 이면의 이미지들, 곧 탐욕, 게으름, 음험함 등의 느낌을 강렬하게 전달하여 혐오감의 감정에 도달했다. 쉽고 재미있게 읽히면서도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아마 어릴 때 이 책을 읽고 나서 특별한 감상이 없었던 것은 아직 사회를 보는 눈이 길러지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굳이 초등학생 정도의 연령에게 추천해본다면, 이상한 동물들의 세계를 본 것 정도의 재미만 알게 되어도 충분할지도? 하지만 어린이들은 누가 봐도 나쁜놈인 돼지들이 처단당하지 않고 끝나는 열린 결말에 좀 당혹스러워 할 수도 있다.


이 책은 스탈린 시대의 러시아를 우화와 풍자 형식을 빌려 비판한 책이다. 언뜻 생각하면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체제 자체에 대한 비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조지 오웰이 비판한 것은 체제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그 체제의 이념을 바르게 펼치지 못하고 1인 독재로 변해버린 정권에 대한 비판이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역시 공산주의(또는 사회주의)는 실패한 체제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현재의 자본주의도 이거랑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든다. 돈이 세상을 지배하는 사회. 사람보다 돈의 가치가 더 우선시 되고, 돈이 많으면 다른 사람 위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 소수의 지배자가 모든 것을 독점하고, 일반 시민들은 그들의 이익을 위해 개미처럼 일을 하며 착취당하는 사회. 현재의 자본주의란 이런 모습 아닌가? 그래도 뭔가 좀 더 나은 점을 찾자면, 나처럼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글을 쓴다고 해서 곧바로 어디에 잡혀가거나 사상검증을 당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한 몸처럼 움직이는 민주주의는 일단은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법으로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물 농장>에서는 혁명이 실패한 세상을 보여주고, 대중들이 지도자들에게 무관심하거나 무지하거나 비판 의식을 갖지 못했을 때의 결론이 얼마나 처참할 수 있는지 알려준다. 혁명 직후 돼지들이 우유와 사과를 빼돌렸던 가장 처음, 다른 동물들이 그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다면 혁명은 성공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편으로 '과연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선량하고 똑똑한 사람들 99명이 있어도, 단 1명의 욕심 많은 사람 때문에 맑은 물이 흐려지고 모든 것들이 틀어지기 때문이다. 동물들의 진짜 문제는 무관심이나 무지가 아니라, ‘설마 그렇게 나쁜 놈들이 있을까?’라고 서로를 너무 믿은 것에 있다. 왜냐하면 자신의 세계를 기준으로 판단할 때, 그렇게 이기적이고 비열하게 살기에는 양심이 너무 괴로우니까. 그러므로 돼지의 여러 가지 술수를 정말 선의의 목적으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다른 동물들에게 혁명 실패의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인가?

100%의 사회 구성원이 어느 정도 이상의 양심을 갖고 있다는 전제가 있지 않은 한, 위아래 구분 없이 평등한 세상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사실 <동물 농장>보다도 뒤에 수록된 작가의 수필 ‘나는 왜 쓰는가’를 너무 재미있게 읽었는데, 조지 오웰의 생각 흐름이 익숙하고 편안해서 흥미롭게 읽었는지, 아니면 번역가가 너무 내 스타일로 번역을 잘해서 그랬던 건지 모르겠다. 이 번역가가 작업한 다른 작업물들을 읽어봐야겠다.

am 6:29


매거진의 이전글나의 작은 아씨들은 이렇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