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켜고, 구박 끄고

2025년 7월 2일 수요일

by 곽예지나

am 6:04


우리 아들이 여기저기 궁글러 다니면서 잠을 자고 있어서 소리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요즘 계속 4시 30분~5시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아들이다. 양심은 있는지 밤에 보통 10시가 되기 전에 잠드는데, 그저께는 11시가 넘어서 잤다가 어제 5시에 일어났더니 평상시보다 피곤했나 보다. 일어나는 습성대로 일단 몸을 일으켰는데 졸음을 떨치지 못하고, 소파에서 자다가 방에 들어가서 자다가 다시 거실 바닥에 나와서 자고 있다. 덕분에 어디서 일기를 써야 할지 갈피를 못 잡다가 이제야 유림이 눈치를 보면서 살금살금 키보드를 두드린다. 더워서 그런가? 시원한 바닥을 찾아다니는 걸까?

그 어느 때보다 일찌감치 에어컨을 가동했다. 나는 더위를 안 타는 편이라, 사실 7월 말까지도 에어컨 없이 잘 버티지만 나머지 식구들은 몹시 괴로워하기 때문이다. 남편과 린아는 얼굴만큼 체질도 쏙 닮아서 여름 더위에 금방 지쳐하고, 유림이는 날 닮은 것 같은데(직접 물어 확인할 길이 없음) 체온 조절이 원활하게 되지 않는 느낌이다. 여름에 땀을 별로 안 흘리는데, 그게 안 더워서 그런 게 아니라 몸에 열이 갇혀 있어서 발산이 안 되는 것 같달까? 혹시 이것도 자폐의 생리학적 특성인가? 아무튼 그래서 더우면 입맛이 없어지고, 활동량이 급격히 줄어서 한 자리에 앉아있거나 누워만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급격히 짜증과 화가 늘어난다. 유림이가 기분이 안 좋을 때 발산하는 음파 공격은 내 정신력에 직격타이기 때문에, 가정의 안정을 위해서 에어컨을 켜놓고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

‘이렇게 더운 걸 못 참아서야. 더운 것도 참아보고 견뎌보고 그래야 하는 거 아냐? 늘 편하게 사는 데 몸이 적응하면 나중에 힘들 때 어떻게 하려고.’


그러다가 어제저녁에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 것이다. 날씨에 적응하는 체력과 정신력을 기르기 위해 여름에 에어컨 없이 견뎌보는 것이 마땅하다면, 겨울에도 보일러 없이 추위에 떨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정작 나는 보일러를 5월 초까지도 틀어놓는데? 내복은 10월부터 입기 시작해서 4월 말에서야 간신히 피부에서 떨쳐냈고, 극세사 이불이 장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추위에 떠는 나 자신에게는 ‘오구오구, 추우면 안 돼. 우리 예지나.’라고 응석을 잔뜩 받아주면서, 더위에 질색하는 가족들을 보면서는 정신력이 부족하다며 혀를 끌끌 차고 있었던 것이다. 내로남불의 정석!


에어컨을 켜는 것이 환경적으로 큰 부담이고 결국 지구 온난화를 유발하는 문제가 되므로 가능하면 안 트는 것이 좋겠지만, 자신의 건강이 지향하는 쾌적하고 알맞은 온도를 향한 갈망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달까... 이제 구박 안 할게, 아니 좀 덜 해볼게. 나에게는 에어컨의 리모컨만큼 소중한 보일러 가동 버튼을 떠올리며.


am 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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