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만족

2025년 7월 3일 목요일

by 곽예지나

am 5:54


어렸을 때부터 체육을 잘하는 사람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특히 여자 친구들이 몸을 날렵하게 움직이거나, 이를 악물고 정신력으로 버티는 모습을 볼 때 마음속으로 참 여러 번 반했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도, 착한 친구도, 예쁜 친구도, 웃긴 친구도 조금씩 부럽긴 했지만 체육을 잘하는 친구만큼은 아니었다. 그 이유는 내가 체육을 너무나너무나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겸손이 아니다. 인간 보편적인 잣대와 객관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 나의 체육 기량 점수는 100점 만점에 10점이 채 될까 말까 한 정도랄까? 문제는 나의 외형적인 모습이 누가 봐도 너무나 운동 잘하게 생겼다는 것에 있다. 170cm가 넘는 키, 긴 팔과 다리는 운동을 위한 완벽한 하드웨어처럼 보이니까.


하지만 기대하면 실망이 더 큰 법. 예전에 학교에서 배구를 빈번하게 하던 시절, 내가 등장하면 배구에 목숨을 거신 선생님들이 눈을 반짝이며 나를 쳐다봤다. ‘드디어 인재로 양성할 후배가 등장했구나!’의 의미를 담고 있는 그 눈빛! 하지만 이내 실망으로 변할 것을 생각하면 저절로 몸이 오그라들고 고개가 숙여지고 참 송구했다. 그게 무슨 대수라고? 싶겠지만, 나는 다른 사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아주 피곤한 성격을 갖고 있다. 젊었던 그때는 자의식도 강하고 지금보다 눈치를 더 많이 볼 때라서, 배구를 할 때마다 정말 받을 수 있는 모든 스트레스를 다 받았었다. 심지어 임신했을 때 가장 기쁜 것이 배구를 안 해도 된다는 것이었으니까.


학교에서 아이들과 체육 수업을 하다 보면, 체육 활동에 기량이 뛰어난 아이들은 금방 표가 난다. 간단한 피구 경기만 해봐도 순발력, 승부욕, 유연성, 집중력, 뇌와 신체의 협응 등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폐 지구력이나 근력 등도 살펴봐야 할 부분이지만, 위의 조건을 충족하면 대부분 심폐 지구력이 좋은 편이고, 초등학생에게 근력은 굳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


여기에 스포츠맨십까지 더해지면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을 것이다. 승부욕이 너무 지나쳐서 자주 싸움을 유발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체육을 잘하는 아이들은 보통 다른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편이다. 그 이유는 학창 시절에 내가 그런 아이들을 동경했던 것과 비슷한 것이겠지. 신체적 움직임이 유려하며 기능적으로 아름다운 사람들을 향한 일종의 본능적인 끌림 같은 것이 있는 것이다. 아마 저런 사람하고 같이 있어야 생존에 유리할 것이라는 원시 시대 본능 같은 게 아닐까?


어제 반 대항 피구 경기를 하면서 이기기 위해 이를 악물고 운동에 집중하던 우리 반 아이들을 떠올린다. 나는 심판의 역할로 서 있지만 사실은 관객이나 응원단의 역할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어릴 때 체육 잘하던 친구들을 동경하던 눈으로 여전히 우리 반 아이들을 본다. 날쌘 움직임 속에서 오로지 공에만 몰두하는 그 집중력을 본다. 공을 잘 잡는 아이들은 적극적으로 선두에 나서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정말 최선을 다해서 피해다녔다. 그 순간에 완전히 몰입한 아이들의 움직임을 보다보면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30살 가까이 어린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존경심을 느낀다. 죽었다 깨어나도, 내가 지금보다 100년을 더 연마해도 절대 운동을 잘하는 사람의 영역으로는 들어갈 수 없을 겠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며 대리만족을 하는 이런 삶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원래 교사와 학생은 청출어람의 관계이니까.


am 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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