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중 제일 똑똑한 시간

2025년 7월 4일 금요일

by 곽예지나

am 5:54


어쩌다 보니 평상시보다 좀 이른 시간에 눈이 떠졌다. 5시 30분까지 좀 더 채워서 잘까 했는데 눈이 말똥말똥하다. 그렇다고 너무 일찍 일어나서 부스럭거리면 유림이가 깰 수 있다. 그 사이에 뭘 할까? 잠깐 생각하다가 영어 단어 공부를 하기로 했다. 브런치에 올릴 글을 쓰게 되기 전까지는 대부분 아침에 끝내놓던 루틴이다.

영어 단어 앱을 이용해서 공부를 한다. 일주일마다 이용자들끼리 리그전을 해서 승급하거나, 유지하거나, 강등되는 시스템이라 적절하게 경쟁의식을 자극해서 동기를 불어넣어 준다. 하위 리그에서는 하루에 50개 정도만 외워도 승급하는데 큰 문제가 없고, 지금 내가 있는 상위 리그는 최소 100개를 외워야 한다. 그래도 이 100개가 완전 새로운 낱말 100개인 것이 아니라, 복습 단어 70개에 새로운 단어 30개 정도의 비율이다. 수험생처럼 각 잡고 책상에 앉지 않아도 슬렁슬렁 할 만하다.


일어나자마자 영어 단어 외운 게 두 달만이다. 아직 덜 뜨여진 눈으로 핸드폰을 붙잡고 영어 단어를 입력해 나가는데, 아니, 내가 이렇게 똑똑했었나? 어제 공부할 때 봤던 단어들이나, 과거의 기억 속에 묻혀있던 단어들이 번쩍번쩍 생각나는 것이다. 평상시에 잘 기억나지 않아서 몇 번이나 오답을 내곤 했던 단어들이나, 분명 몇 글자는 기억이 나는데 특정 부분만 지우개로 지운 수수께끼처럼 절대 안 풀리던 단어들. 그런 단어들까지 속속들이 한 번에 떠오르는데, 갑자기 영어 단어 잘 외우는 초능력이 생긴 듯한 느낌이었다.


왜 이런 변화가 생겼는지 모르는 척 쓰긴 했지만 사실 이미 답은 알고 있다. 이 시간의 뇌가 어딘가에 집중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상태인 것이다. 피로도 0, 바깥세상의 오염 0으로 시작하는 순도 100%의 깨끗한 뇌. 그 하얀 배경에 적어 내려 가는 영어 단어들은 평상시보다 더 선명하게 기억날 수밖에 없다. 밥 먹으면서 급하게 외울 때나, 잠들기 전 그날 공부를 마치지 못해서 누운 상태로 외울 때와는 생판 다르다. 가끔 쉬는 시간에 학생들에게 영어 단어 공부에 대해서 알려줄 겸 함께 그 앱을 살펴볼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방금 전에 본 단어도 절대 기억이 안 나고 그냥 깜깜하다. 눈은 단어를 보고 있지만 내 집중력이 이미 문어 다리 개수 이상으로 여기저기 분산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아까 아침의 경험과는 달리, 혹시 나 바보인가?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하기도 한다.

한 때 인스타 피드에서 한참 많이 봤던 내용 중에, 최적의 뇌로 살아보기 계획표 같은 게 있었다. 집중력이 가장 향상되는 시간에 업무나 개인 공부를 한다던가, 창의성이 필요한 브레인스토밍이나 회의는 오후의 특정 시간에 한다던가. 그걸 보면서 나도 이런 일과에 따라서 하루를 조절할 수 있다면 어떤 성과가 나올지 궁금했다. 특히 지금처럼 30분 시간 동안 글을 다다다 쓰는 게 아니라, 2~3시간 정도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쓴다면 지금 하고는 어떤 차이가 있을지가 제일 궁금한 부분이다. 평일에는 출근해야 하고, 주말에는 온 식구들과 지지고 볶아야 하니 도무지 해소할 수 없는 궁금증이겠지만.


오늘 분량의 영어 단어를 모두 다 처리해버리고 가뿐하게 시작하는 이 아침. 루틴의 짐을 딱 하나 내려놓은 것뿐인데도 어깨가 훌훌 가볍다. 물론 오늘이 금요일이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am 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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