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8일 화요일
am 5:44
케이팝 데몬 헌터스, 줄여서는 케데헌.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공개되었고 시청 1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 유명한 <오징어 게임>도 시즌 3까지 나왔지만 한 편도 안 봤는 걸. 유행하는 걸 일부러 청개구리처럼 피해다니는 건 아닌데, 영상 관련 문화예술류, 그 중에서 특히 드라마는 내 관심사와 살짝 비껴나 있다. 긴 호흡을 견딜만큼 시간적 여유가 있는 게 아니다 보니 더 그렇게 되었다.
아무튼 전 세계사람들이 다 본다고 해도 남 일 보듯이 그렇구나, 하고 넘겨왔던 며칠. 반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선생님, 케데헌 보셨습니까?” 라고 대화의 시작을 텄다. ‘이 나이대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내용인가? 그럼 공유할만한 걸 늘리기 위해서라도 한번 보긴 해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무슨 내용이냐고 물었다. “케이팝 여자 아이돌이 악마를 없애는 내용입니다.”
응? 아니, 이건 말하자면, 케이팝 아이돌 버전의 <웨딩 피치> 같은 거 아니야? 순간적으로 내 취향을 확실히 저격할 것 같은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주말 밤에 곧바로 시청 스타트! 원래는 자야 할 시간이지만 린아도 같이 보고 싶다고 해서 남편과 나, 린아 셋이 옹기종기 쇼파 앞에 앉았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노래를 통해 악령을 퇴치하는 힘을 가진 여자 아이돌 ‘헌트릭스’가 빌런이자 라이벌인 ‘사자보이스’ 및 최종 보스 귀마를 물리치고 세상의 평화를 지키는 내용이다. 세부 줄거리만 놓고 보면 이것 저것 딴지를 걸 곳이 많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짜 강점은 줄거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니, 매우 단순화시킨 줄거리가 오히려 영화의 장점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더 영리한 접근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노래와 그 노래의 매력을 극대화시켜 주는 공연 장면이다. <겨울 왕국>이 흥행할 수 있었던 가장 이유가 ‘Let it go’에 있었던 것처럼. 영화에 수록된 대표곡 ‘Golden’, ‘Soda Pop’, ‘Your Idol’, ‘Take down’ 은 그냥 노래 자체만으로도 듣기 좋고, 영상과 함께 보면 매력이 한층 업그레이드 된다. 전세계 탑급 아이돌의 공연 퀄리티인데, 현실 세계에서 할 수 없는 퍼포먼스와 카메라 무빙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케데헌을 보고 나서 하루종일 이 영화 OST만 듣고 있는데 질리지 않는다. 단점이라면 후속곡이 나오지 않는 아이돌의 팬질을 해야 한다는 것이려나.
두 번째로 캐릭터의 표정이나 움직임 등 디테일한 묘사에서 거부감이 없고 자연스럽다. 모든 영화들이 다 그렇겠지만 애니메이션의 경우, 돈을 많이 들이고 안 들이고가 정말 여실하게 차이가 난다. 예산 부족의 허술함을 주연 배우의 연기력으로 때우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돈을 갖다가 때려부은 느낌? 하나의 대사를 말할 때도 표정이 꽤 여러번 바뀌어서 실제 사람들이 대화할 때의 모습을 반영했다. ‘이런 것까지?’라는 느낌이 들었던 부분은 조이가 사자보이스에게 홀려서 터덜터덜 걸어가는 장면이었는데, 몸에서 힘을 빼고 걸어갈 때 미세하게 얼굴이 양쪽으로 조금씩 흔들리는 부분까지 구현을 해 놨더라. 헌트릭스가 악령들과 싸울 때의 싸움 모션도 호쾌하게 시원하고 동작 하나하나가 아름답다는 느낌이 든다.
샛째, 과장된 연출이나 코믹한 요소를 적절히 섞여서 텐션을 조절한다. 정의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캐릭터, 특히 자신만의 아픔을 가진 루미의 경우에는 오히려 분위기를 깨거나 혼자 겉도는 느낌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중간중간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함께 캐릭터들이 망가지는 모습을 연출해서 거리감을 좁혀주고, 만화가 너무 진지한 분위기로만 가는 것을 막아준다. 미라와 조이가 사자보이스 멤버를 보고 반한 것을 눈에서 팝콘이 튀겨져나오는 것으로 표현한 부분이 아직도 눈 앞에 어른어른하다. 그 감정을 이런 표현으로 빗대어 표현할 수 있다니!
넷째, 캐릭터들의 매력이 훌륭하다. 일단 내 원픽은 사자보이스 진우. 이제는 현실 남자 아이돌들을 보면서 전혀 가슴이 설레지 않은 나이가 된 나에게, ‘역시 덕질의 근본은 2D’라는 명언을 상기시켜주었다. 실제 인물의 가장 큼직한 매력만 긁어모아 만든 캐릭터인데 안 멋있을 수가 없지. 참고로 나는 진우의 모티브가 된 차은우, 남주혁은 전혀 관심이 없지만 진우는 좋다. 게다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데 가장 중요한 '서사'가 탄탄하잖아.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시청자들의 눈을 빼앗은 가장 중요한 캐릭터는 호랑이인 더피가 아닐까? 등장하자마자 “으악 귀여워!”라는 감탄을 연발하게 만든, 케데헌의 최고 마스코트! 만화에 꼭 있어야 할 전형적인 펫 캐릭터이면서도, 전혀 뻔하지 않게 신선하다. 요즘 국립박물관에서 <호작도> 관련 굿즈가 불티나게 팔리는 것은 다 이 영화 덕분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난 종합 감상은 잘 될 수 밖에 없다는 것. 우리 집에서도 같이 영화를 본 세 명이 성별과 나이, 취향이 다르면서도 모두 크게 만족한 것만 봐도 그렇다. 어쩌다보니 내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이 케데헌으로 도배가 되어 버려서 관련 게시물을 자꾸 보게 되는데, 똑같은 게시물을 반복해서 봐도 질리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자기 할 일 스스로 잘 챙기는 린아마저도 어제 저녁 먹고 나서 한참동안 텔레비전으로 케데헌 명장면과 노래를 감상하면서 잔뜩 홀려 있는 걸 보니. 당분간 우리집은 케데헌의 열풍이 가시지 않을 것 같다.
am 6:34
+덧붙임) 근데 월요일에 학교 가자마자 신나서 호들갑떨며 학생들한테 이야기 했더니 나만 제일 좋아하는 것 같던데 어떻게 된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