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 모예스의 <별을 선사해 준 사람>을 읽고
To.
다 읽었어요. 어떤 이야기일까 궁금해서 빨리 읽고 싶기도 했고, 다 읽어버리는 게 아까워서 아껴서 읽고 싶기도 했지만. 읽다가 어느 순간에는 얼른 끝내버리고 싶더라구요. 남아있는 페이지가 얼마 안 되는데 이야기가 좀처럼 마무리될 기미가 안 보여서 살짝 불안해서 그랬나 봐요. 결론은 아주 틈 없이 꼭꼭 닫힌 결말이어서 좋아요. 독자에게 생각의 여지를 주는 게 좋을 때도 있지만, 마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 같은 이런 내러티브는 에필로그의 에필로그까지 더해주며 확실히 끝맺음을 해주는 게 미덕이니까요.
1930년의 미국을 배경으로 보수적인 시골 마을에 시작된 이동도서관 사업과 다섯 명의 여자 사서들! 이 5인조가 결성되기까지의 과정이 제일 재미있었어요. 다섯 명 모두 개성이 뚜렷한 데다가, 절대 섞일 것 같지 않은 또렷한 성격들이 도서관을 매개로 조금씩 녹아들어 가는 과정이 좋았거든요.
주인공은 서로 모든 것이 상반된 앨리스와 마저리예요. 앨리스가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남자와 사랑에 빠져서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모험을 저지른 건 솔직히 크게 뭐라고 하고 싶지 않아요. 왜냐하면 결혼이라는 게 원래 복불복이잖아요. 잘 살지 못 살지는 실제로 살아봐야만 알 수 있는 법. 이 책이 아니었다면 같은 과정으로 결혼한 다른 앨리스는 행복하게 잘 살았을 수 있었을 거예요. 아름답고 매력적이지만 점잖치 못한 언행으로 집안의 골칫거리이던 앨리스가 숨 막히는 결혼 생활을 하다가, 사서가 되어 친구를 만나고 새로운 삶을 알게 되면서 삶의 가치관이 점점 바뀌고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그린 것이 이 책의 대주제예요. 그리고 여기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 바로 마저리구요.
마저리는 자기 스스로의 인생을 사는 사람이에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보수적인 지역 사회에서 너무나 눈에 튀는 행실들이 많아서 적들이 많지만, 사실은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고 마을을 사랑하는 정의로운 사람. 그렇기 때문에 마저리가 아무런 대처 방법도 강구하지 않고, 반 클리브에게 댐을 폭파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지라며 공개적으로 항의할 때 오히려 좀 실망했어요. 마저리라면 좀 더 똑똑한 수를 찾았어야 했는데, 뒤에 어떤 일이 생길지 어찌 알고 그렇게 대책 없이 무분별한 도발을 했을까요? 이 일 때문에 맥컬러의 살인 혐의를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된 다음 연이어 보이는 무기력함은 정말 최악이었어요. 앨리스의 성장을 그리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마저리라는 캐릭터를 이렇게까지 소극적으로 바꿔버릴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컸어요.
그나마 감사하고 다행인 점은, 마저리의 애인인 스벤이 죽지 않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다는 것? 책을 읽으면서 '이쯤이면 왠지 스벤이 죽으면서 극적인 지점이 나타날 것 같은데.' 마음속으로 계속 그런 불안함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아니더라고요. 아무래도 이 작가는 마음이 좀 약한 편인 것 같아요. 캐릭터를 최악의 구렁텅이까지 몰아넣지는 않는 걸 보면 말이에요. 이 책의 최고 나쁜 놈 반 클리브가 사소한 말싸움에서 계속 지고, 집 나간 앨리스를 도로 데려오지도 못하고, 음모라고 꾸민다는 게 금방 들통나고 허사가 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어요. 나쁜 놈이긴 한데 뭔가 좀 허술한데? 겨우 이 정도만 하고 만단 말이야?라고 자꾸 생각하게 되던데, 가만 보면 제가 현대 사회의 악에 너무 찌들어버렸나 봐요. 1930년대의 미국에서는 저 정도면 엄청 나쁜 놈일지도 모르죠.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앨리스가 사서 일을 시작한 초반, 캐서린 블릿의 집을 찾아갔던 때였어요. 자신의 영국인 억양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낄 것이 걱정되어 어설프게 미국식 억양을 흉내 내어 말하는데, 이게 캐서린에게는 꼭 자신을 놀리는 것처럼 느껴져서 화를 낸 에피소드 말이에요. 보통은 속내를 이야기하지 않고 서로 오해하다가 끝나기 마련인데, 캐서린과 앨리스는 둘 다 그렇지 않았어요. 앨리스의 진심을 알게 된 캐서린이 열린 마음으로 앨리스를 대해주고, 앨리스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용기와 보람을 동시에 얻게 돼요. 나중에 잠시 일을 못하게 된 이지를 대신하여 여섯 번째 사서로 그 자리를 채워주기까지 한 캐서린은 주요 등장인물 5명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그 누구보다 꾸밈없이 곧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 또한 처음으로 앨리스가 마을 사람에게 받아들여지는 그 순간이 그 책을 읽으며 완전히 이야기 안으로 몰입되는 순간이기도 했어요. 마치 내가 옆에서 그 장면을 보고 있는 사람처럼 말이에요.
사서 5인방 중에서 최애 캐릭터를 고르라면 저는 단연 소피아! 유색인종으로 차별받는 자신의 삶을 담담히 받아들이지만,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항상 자신의 몫을 해내는 단단한 사람이에요. 재능은 얼마나 많은지, 날렵하고 깔끔한 손재주를 바탕으로 도서관 정리 일은 기본이고 심지어 산파 역까지 해내죠. 두루 넓은 눈치로 늘 상황을 가장 먼저 파악하며, 카운슬러처럼 조언을 하거나 가슴이 뜨끔한 직언도 서슴지 않아요. 그 누구도 제어하지 못하는 마저리에게 말으로 펀치를 날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고요. 누군가는 이 책에서 앨리스가 여성성, 마저리가 남성성을 대표한다고 하던데 제 생각에는 둘 다 어떤 성별을 대표한다고 하기에는 약간 불안정성을 갖고 있고, 오히려 소피아가 모든 것을 다 갖춘 만능 캐릭터인 것 같아요.
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자주 떠올렸던 것은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라는 책이에요. 성장하는 여자 주인공, 살인 사건에 휘말리는 후반부, 그리고 재판하는 과정에서 클라이맥스에 다다랐다가 갈등이 해소되며 마무리되는 구성이 여러모로 비슷하게 느껴졌어요. 나중에 책날개를 보니 같은 출판사에서 만들었더라구요. 만약에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읽기 전에 이 책을 먼저 봤으면 좀 더 후한 점수를 줄 수 있었을지도요? 혹시 그 책을 읽어보지 않으셨다면 그것도 한번 읽어보세요. 저하고는 정반대의 인상을 받으실 수도 있어요. 비슷한 형식의 이야기에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책도 있는데, 저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훨씬 재미있게 읽었어요. 아무튼 책을 읽으면서 ‘진취적이고 성장하는 여자 캐릭터가 등장하는 책을 좋아하시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어요. 예전에 추천해 주셨던 <시선으로부터>나 <배움의 발견>도 비슷한 궤를 그리는 것 같거든요. 아니면 여자 캐릭터라는 건 저의 성급한 일반화인가요? 그냥 성장형 캐릭터가 등장하는 책을 좋아하시는지도?
책을 다 읽고 독서 기록까지 쓴 지금 뭔가 숙제를 하나 해 낸 느낌이에요. 추천하면서 그런 부담을 주겠다는 의도는 아니셨겠지만, 어쨌든 누군가에게 책을 추천한다는 것은 이 사람은 이걸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했다는 거잖아요. 이 책이 제 기준에서 아주 흡족한 책은 아니었지만, 읽는 과정에서 흠뻑 몰입했고, 그래서 정말 오래간만에 책을 ‘읽고 싶어서’ 읽었어요. 솔직히 최근에는 책을 ‘읽어야 해서’ 읽고 있었거든요.
다음에도 읽을만한 책을 추천해 주신다면 감사히 읽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