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울의 <데미안 프로젝트>를 읽고
나는 책 뒤에 붙어 있는 독서 평론을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이유는 글이 너무 어려워서 왠지 딴 세상 이야기 같기 때문이다. ‘이 사람 나하고 같은 책 읽은 거 맞아?’라는 자괴감이 들 정도의 전문적인 식견이나, ‘책을 관통하다 못해 낱낱이 해석해 버리겠다’는 의지가 느껴질 정도로 조목조목 분석한 글이 약간 부담스럽다. 아마 나의 이해력이나 문장 표현력이 평범한 사람들의 범주에서 톡 튀어나갈 정도가 아닌 무난하고 대중적인 까닭이 가장 크겠지만. 그래서 나는 글을 쓸 때 가장 신경 쓰는 점이 ‘읽기 편하고 이해하기 쉽게 쓸 것’이기도 하다. 문장을 읽는 도중에 미궁에 빠져버리거나, 여러 번 곱씹어봐야 그 의미를 겨우 알 수 있는 것 같은 책의 독서를 일상생활의 취미로 즐기기는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문가들의 독서 후기에는 크게 관심이 없던 내가, 무려 ‘단 한 권의 책만 탈탈 털어보겠다’는 의지를 가진 이 책을 구입한 유일한 이유는 <데미안>에 관련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책의 첫인상은 별로 마음에 안 들었다. 표지랑 폰트가 뭔가 살짝 촌스러운 듯, 고급을 흉내 낸 B급 같은 듯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보니 작가의 철학이 반영된 듯한 표지도 예쁘고 폰트도 뭔가 사색의 느낌이 드네? 사람의 인식이라는 것은 이렇게나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웃긴 것이다.
‘이 작가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책을 읽는 동안 가장 많이 했다. 책 자체가 다른 사람들을 응원하기 위해서 쓰인 것 같기도 하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 방황하는 사람,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고 싶은 사람, 자기를 이끌어 줄 만한 멘토를 찾고 있는 사람,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이상향 등의 이야기가 데미안의 해석 속에 적절하게 녹여있다. 철두철미하게 비판적으로 각 문장을 쪼개어 해석하는 책의 평론이 아니라, 작가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나 가치관을 데미안을 이용해서 적절하게 잘 표현하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전체적으로는 융 심리학의 관점으로 데미안을 해석한 책이라고 봐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나는 프로이트는 자주 들어봤지만 융은 좀 생소했는데, 프로이트에 대해서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은 인상을 갖고 있어서 초반부에 융 심리학이란 단어가 나왔을 때 좀 경계를 하면서 읽었었다. 융 심리학은 전문적인 과학이라고 하기에는 살짝 아쉬운 부분이 있고, 철학의 영역이라고 보면 허용치가 넓어질 것 같다. 그래서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고 다 읽어보고 나니 새로운 상식이 하나 더해진 기분이랄까? 아니마(남성성), 아니무스(여성성) 같은 새로운 단어를 알게 되었고,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은 ‘사회화’가 아닌 ‘개성화’라는 관점도 배웠다. 나쁜 꿈은 없으며, 악몽이든 가위눌림이든 모든 꿈은 결국 나를 돕기 위해 있는 것이라는 부분은 큰 위로가 되었다. 나 역시 꿈에 많은 의미를 담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책에 나온 이야기는 아니고 내가 융 심리학에 대해 검색하면서 알게 된 건데, 융 심리학이 현대 mbti 성격 유형 검사의 기초가 되었다는 사실도 매우 흥미로웠다.
책을 읽기 전에 내가 가장 많이 기대했던 부분은, 그 의미가 매우 모호하여 해석하기 어려웠던 부분에 대한 궁금증이 얼마나 많이 해소될 수 있을까였다. 그런데 분명히 읽는 그 순간에는 ‘아, 그렇구나.’라고 깨달음이 온 것 같았지만, 다 읽고 나서 돌이켜보니 또 하나도 모르겠다. 아마 내가 스스로 알아낸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대신 그것보다 더 크게 얻어낸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책에 대한 해석은 자유롭게. 자신의 감상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것’이다.
독서 후기를 쓸 때 많이 망설여지게 되는 순간은 ‘작가의 의도는 그런 게 전혀 아니었는데 내가 오해한 거면 어떻게 하지?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나만 이렇게 느낀 거면 어떻게 하지?’였다. 하지만 나하고 같은 책을 수 없이 읽은 사람이라도 그 생각의 결론은 나와 전혀 다를 수 있으며 그것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쓰는 것은 작가의 몫, 읽고 받아들이는 것은 독자의 몫이라고 늘 생각은 해왔지만 그동안 나의 생각에 자신감이 없었나 보다. 이 책을 읽고 나서는 표현에 좀 더 자유로워져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데미안 프로젝트>를 읽고 나서 쓰는 나의 감상도 조금 더 자유롭게 손 가는 대로 써봤다. 사실 다 쓰고 나서 늘 그렇듯 챗gpt에게 감상평을 부탁했더니, ‘이런 문장을 추가해 봐, 이 부분은 이렇게 다듬어 봐, 이 부분은 빼고 다른 말로 써 봐.’라고 조언을 했지만 그냥 무시하고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써서 올리기로 한다!? 완벽하지 않게 쓰는 게 인간이 쓰는 글의 재미라고, AI야!
종합적인 감상은 세상은 넓고 데미안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다는 것. 한 권의 책을 읽고 난 독자가 다시 한 권의 책을 쓰는 작가가 될 수 있게 하는 <데미안>의 역량에 다시 한번 놀라는 시간이었다. 언젠가는 <데미안>을 통째로 필사해보고 싶다. 아직은 번역이 완전히 마음에 드는 출판사를 찾지 못했으니까, 일단 최애 출판사부터 찾아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