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의 <졸업-설월화 살인 게임>을 읽고
가가 형사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시리즈물이다. ‘좋아, 이번 방학에는 이걸 시작으로 가가 형사 시리즈 전체를 다 읽어야지.’하는 야심을 갖고 도서관에서 대출해 왔는데, 읽다 보니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응? 이거 내가 예전에 이미 읽은 거잖아?
그럼 이미 읽은 책인데도 왜 기억을 못 했던 걸까? 그 이유는 아마 이 책이 별로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걸 다시 읽을까 말까 한참 고민하다가, 일단 빌려왔고 어쨌든 독후 기록을 해 놓지 않은 책이니까 이번에 읽고 다시 써보자는 생각으로 집어 들었다.
그리고 곧 이 결정을 후회하게 되는데...
이 책이 출간된 것은 1986년. 지금으로부터 무려 40여 년 전이다. 그러니 당시의 시대상황과 지금의 차이를 감안하면서 읽어야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읽기에는 히가시노 게이고 님은 너무나 현역이신걸. 옛날에 활동하다가 잊힌 인물이 아니라, 현재도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하고 계신 분이라서 그런지 책을 읽으면서 그런 시대 보정을 하기 어려웠다. 사실 시대 보정만 문제라고 하긴 좀 그렇다. 뭐라고 해야 할까? 그래, 이것은 바로 총체적 난국이다.
일단 가장 먼저 죽음을 맞이한 쇼코는 졸업 전 가볍게 떠난 여행에서 다른 남학생들과 술을 마시며 어울리다가 부적절한 성관계를 갖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그 과정에서 성병이 옮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결국 자신의 남자친구인 도도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는데, 처음에는 이런 쇼코를 받아들여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사실은 그렇지 않았고, 그에 대한 충격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자살을? 이런 일 때문에 자살까지???
어처구니없는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쇼코가 자살 시도를 하고 난 직후 도도가 쇼코의 기숙사에 방문했다가 쇼코를 발견하게 된다. 이때 도도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세면대 밖으로 빠져나온 쇼코의 손목을 굳이 다시 물속에 담가서 출혈이 잘 일어날 수 있게 도와준 것이다.
자신의 연인을 살리려는 시도를 하는 게 아니라요???
쇼코와 같은 숙소를 사용하는 나미카는 도도가 쇼코의 죽음과 관련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경찰에 사실대로 털어놓으라며 협박 아닌 협박을 한다. 이 와중에 나미카는 지나간 검도 시합에서 패배한 이유가, 대학 친구인 와코가 취업을 위해 사주를 받고 나미카가 마실 에너지드링크에 넣은 약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와코와 하나에가 나갈 테니스 시합을 망칠 작정으로 가벼운 비소 중독을 일으킬 결심을 한다.
예??? 물론 와코가 잘못 한 건 맞지만 비소 중독으로 맞불 작전? 당시 대학교에서는 비소 중독 시키는 게 유행이었나?
아무튼 이 작전의 실행을 위해 도도에게 비밀을 대가로 협력할 것을 종용하고, 도도는 이에 협력하는 척하면서 청산가리를 이용해서 나미카를 독살하게 된다.
아니, 저기요. 쇼코는 어차피 자살 시도를 한 거였으니까 그렇다고 치는데, 그렇다고 다른 친구를 독살할 것 까지야? 교수의 성과 재촉에 벼랑 끝에 몰린 대학생은 심리적 스트레스로 인해서 그럴 수도 있는 건가요???
마지막에 도도가 자살을 하면서 6명의 대학 친구 중 3명이 사망하게 되고, 가가와 그의 히로인인 사토코는 졸업을 하며 한 시대가 저무는 것에 대한 담담한 감상과 함께 책이 마무리된다.
정말 이런 결말로 마무리해도 괜찮은 거예요 이거?
이렇게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 물음표가 떠나지 않았으니, 가가 교이치로의 매력이 뭔지 내가 알게 뭐냐. 중간에 핵심적으로 나온 설월화 트릭도 과정은 자세하고 설명은 화려한데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는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역시 추리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트릭보다는 개연성이었던 것.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은 진짜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데 이 책은 불불불불불불호이다. 가가 형사 시리즈는 안 읽는 것으로.
+) 이 글을 쓰면서 내가 사용한 물음표는 29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