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흘려보내기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고

by 곽예지나

<데미안>을 그렇게나 좋아하면서, 왜 <싯다르타>를 읽어볼 생각을 못했을까? 여태까지는 데미안을 소화시키는 것도 힘들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 작가의 다른 작품인 <수레바퀴 아래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기대치가 낮았던 탓인지도 모른다.


세계 문학 전집을 빌릴 때는 왜인지 모르게 민음사 위주로 고르게 되는데, 도서관에 갔더니 민음사의 <싯다르타>가 이미 대출 중이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문학동네 출판의 전집을 읽어보게 되었는데 꽤 괜찮았다. 이다음에 읽을 <1984>도 괜찮다면 다음번에는 꼭 민음사를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책에서 굳이 심오한 의미와 진리를 구하려고 하지 않더라도 그냥 내용 자체로 재미있었다는 게 제일 놀라웠다. 읽기 전에는 싯다르타가 부처 자체를 의미하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고 헤세가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었다. 진짜 부처는 깨달은 자이며 중생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고타마’라는 이름으로 중간에 등장한다.


싯다르타가 진정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집을 떠나 사문이 되어 수행하다가 부처를 만나지만, 깨달음은 누군가에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깨우쳐야 하는 것임을 알고 친구인 고빈다와 길을 달리하는 부분에서 하나의 막이 내린다. 이다음 행보가 매우 파격적(?)인데, 진리에 한 발자국 나아간 싯다르타가 다음으로 한 행동은 참선이나 수련이 아니라, 아름다운 창부 카밀라에게서 쾌락의 기술을 배우고 상인 카마스바미와 함께 장사를 한 것이다.


‘잠깐만, 내가 지금 뭘 읽은 거지?’ 잠시 혼란이 왔다. 하지만 헤세와 싯다르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모든 것을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제대로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모든 사랑의 유희, 돈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의 모든 값진 것을 경험해 보고 나서야 그것들이 얼마나 허망하고 덧없는 것인지를 알 수 있다는 것. 물론 아주 보통의 사람은 유희와 재력, 권력의 맛을 보면 거기서 빠져나가는 것이 더욱 어렵겠지만, 싯다르타에게는 그 또한 하나의 단계를 깨트리기 위한 레벨업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책에서는 열반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세속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을 가리켜 ‘어린아이 같은 사람들’이라고 칭한다. 자신의 본능과 욕구 위주로 살아가기 때문일까? 이처럼 자신 외에 다른 사람들을 알게 모르게 얕잡아보던 싯다르타는, 자신의 아들을 완전히 소유할 수 없음을 알고 괴로워하다가 어린아이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다. 결국 아들을 마음에서 놓아주면서 열반에 도달하기 위한 마지막 과제를 끝마치고 진정한 평화를 얻는다. 이때 그는 강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서 과거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고 비로소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물론 깨달음을 얻기 위해 떠난 싯다르타와 망나니가 되기 위해서 떠나는 아들의 상황이 완전히 같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결국 ‘어린아이 같은 사람들’에 속하는 거겠지? 중요한 건 그 어떤 것에도 번뇌를 갖지 않고 훌훌 떠나보내는 마음일테니까.


싯다르타는 시간에 얽매어 있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괴로움이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언제부턴가 내가 하루를 보내며 매시간 불안해하는 이유도 시간에 대한 초조함 때문인 것 같다. 인생이 무한히 계속될거라는 근거없는 믿음이 있을 때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마음에 불편함이 없었는데, 요즘에는 책을 읽어도, 공부를 해도, 글을 써도, 산책을 해도, 심지어 아무 일도 안 하고 푹 쉬고 있어도 마음이 편치 않다. 이 시간을 이렇게 써도 되는 건가?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하는 거 아닐까? 그런데 그 의미 있는 일이라는 건 뭐지? 그래서 이런 괴로움을 벗어버리기 위해 명상이라도 할라치면, 가만히 있어야 하는 그 시간조차 너무나 아까워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시간에 뭔가 알맹이 있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기회비용을 계산하듯이 언제나 내가 지금 하지 못하고 놓쳐버린 다른 일들을 후회하기만 하면서.


시간의 흐름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기는 어려워도, 나의 괴로움이 사실은 괴로움 자체에서 오는 게 아니라, 이것이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걱정 때문에 오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결국 하나의 한줄기의 강물로 이어지고 영원과 끝은 결국 서로 맞닿아있는 것이다. 그러니 괴로워하지 말자. 최소한 괴로움을 내가 찾아다니지는 말자. 그냥 있는 그대로 흘러가게 내버려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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