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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담 Jul 30. 2024

#6.  매콤 칼칼한 <애호박돼지고기찌개>

케렌시아(Querencia). 그는 나의 피난처이자 안식처였다.

종일 말한마디 하지 않은 오늘 하루.

그에게 전화가 오지 않으니, 딱히 입을 열어 말을 할 이유가 없다.

매일같이 수시로 울리던 전화였다.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밥은 먹었는지 잠깐씩이라도 전화를 걸어 내게 묻던 그였다.

수시로 걸려오는 전화로 몸은 떨어져 있지만 늘 같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외로웠던 나는 그가 있어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면 난 늘 혼자였다.

해외에 나가계신 아빠와 늘 바빴던 엄마.

하루종일 밖에 나가 곁에 없던 엄마는 저녁이면 서둘러 돌아와 저녁을 차려주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엄마도 무척이나 외로웠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이 내가 그 나이가 되어 살아보니 엄마의 삶도 조금은 달리 보인다.

엄마도 분명 외로웠던 거다.

마음 붙일 곳 없이 바쁘게 바쁘게 허깨비를 쫒듯 살아갔던 엄마.

그렇게 정신없이 살아가다 예고도 없이 본인의 스위치를 꺼버리고 동굴 속으로 들어가 버렸던 엄마.

동굴밖에 내버려진 아이는, 어미의 온기도 느낄 수 없었고, 지켜주는 이 하나 없는 세상이 늘 두려웠다.




여름이면 상위에 오르던 애호박돼지고기고추장찌개.

그 이름 참 길다. 이름에 들어있는 재료 세 가지는 모두 들어가야 맛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제법 매울 만도 하지만 하얀 밥 위에 달걀프라이를 올리고 연신 땀을 흘려가며 먹는 애호박돼지고기고추장찌개는 어린 내게도 참으로 맛있었다.


냉동실을 열어 돼지고기를 꺼내 차가운 물에 담가 해동시켜 준다.

_ 보통의 경우에는 전 날 미리 냉장으로 옮겨 자연해동을 시킨다.


육수를 끓여줄 차례이다.

냄비의 반정도 물을 담고 다시마 한 조각, 멸치 다섯 마리를 넣고 약불에 올려준다.

채소에서 나오는 채즙도 있어서 욕심껏 물량을 맞춰서는 안 된다.


육수가 끓여지는 시간 동안 채소를 손질한다.

애호박, 감자, 양파, 대파, 마늘을 꺼내오고 흐르는 물에 씻어주고.

어느 정도 두께감이 있게 뭉텅뭉텅 썰어준다.

찌개는 오래 끓여 재료 본연의 맛이 진득하게 우러나야 맛있기 때문에 채소는 큼직하게 썰어주는 편이 먹을 때 식감이 좋다.

대파, 마늘은 다져서 따로 준비해 놓는다.


끓어오르는 육수에서 다시마, 멸치를 건져내고 고추장 1스푼 듬뿍, 된장 반스푼을 넣어준다. 뭉친 곳 없이 잘 풀어주고 다시금 끓어오르기를 기다려준다.

육수가 끓어오르면 손질해 놓은 채소와 돼지고기를 넣고, 약불로 은근히 끓여준다.

채소가 푹 익으면 다진 파, 마늘을 넣어주고 두부가 있다면 두부를 깍둑썰기해 넣어준다.

간은 소금으로만 살짝.


자리에 앉아 나를 위한 밥상을 먹는다.

유년의 추억이 스며들어 있는 엄마의 맛.


”잘 지내니? “

라는 일상적인 인사에

 ”응 “

이라는 그 간단한 대답을 하지 못해 오늘도 난 전화를 거는 대신 엄마의 맛을 떠올리며 음식을 만든다.


엄마, 나는 잘 못 지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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