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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담 Jul 26. 2024

#5. 나를 위한 음식 <돼지고기된장수육>

시간이 만들어내는, 기다림의 음식

너는 나의 상처받음을 외면하고,
나는 너의 힘듦을 외면한다.


갑작스레 떠나온 짧은 여행지의 어느 장소에 앉아 잠시 자리를 비운 그를 기다리는 중이다.

창밖으로는 며칠째 내린 비로 수위가 올라가고 온통 흙빛인 강물이 흘러가고 있다. 하늘은 곧 비가 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무겁게 내려앉아 있다.

실내는 서늘하고, 흘러나오는 잔잔한 음악은 새소리가 섞여있어 마치 기분 좋은 숲 속에 앉아 있는 기분이다.

딱딱하긴 하지만 앉아 있기에 나쁘지

않은 나무의자에 앉아 창밖을 본다.


그는 곧 돌아올 것이다.

특유의 여유로운 몸짓으로 저 문을 열고 들어와 언제나 그랬듯이 내 옆자리에 앉을 것이다.


제법 많은 수의 새 때들이 한꺼번에 물 위를 날아오른다.

무리 지어 날다, 내려앉다를 반복한다.

잔잔했던 강위로 물보라가 인다.

물보라 치는 강 위를 부지런히 내려앉고 다시금 날아오른다.

새들이 날아오른 강은 다시금 잔잔해져 온다.


비예보가 무색하게 비는 오지 않는다.

낮게 깔린 구름 아래로 강은 언제나 그러하듯 조용히 흘러간다.

창 밖으로 펼쳐진 풍광이 고요하다.


강은 온통 흙빛이다.


너는 나의 상처받음을 외면하고,

나는 너의 힘듦을 외면한다.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자.

풀 한 포기, 나무 한그루, 구름의 움직임, 강의 흐름까지 모두 다.

이 시간들 또한 너와 나를 잡아 줄 또 하나의 추억이, 기억이 되어줄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나를 위한 음식을 준비한다. 집으로 온다는 너에게 만들어주려 부랴부랴 달려 나가 사 온 돼지고기가 그대로 남아있다. 냉장고 문을 열고 너와 나를 위한 음식이 될 뻔했던 수육용 돼지고기를 꺼낸다.


압력밥솥을 꺼내고.

돼지고기 덩어리를 넣고, 정성스레 된장 한 스푼을 돼지고기에 발라준다.

대파 한뿌리 잘라 넣고, 물은 자박하게 부어준다.

그대로 불위에 얹고 압력추가 올라올 때까지 강불에 익혀준다.

압력추가 올라오면 약불로 줄이고 30분간 푹 익혀준다.


부드러운 음식을 선호하는 나는 압력밥솥으로 만드는 음식을 좋아한다.

신선한 재료를 손질하여 한 곳에 넣고 끓여내면 되는 음식은, 간단하면서도 부드럽고 상냥한 맛이다.

불위에 얹어놓는 것만으로 90% 이상 음식이 만들어지는 간단함 역시 좋다.

시간이 만들어내는, 기다림의 음식들.

오랜 시간 익히고, 뜸이 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돼지고기 수육이 완성되었다.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그릇에 담아낸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적당히 기름진 음식.

너와 먹으려던 음식을 이제는 나를 위해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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