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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담 Jul 23. 2024

#4. 기다림이 스며야 맛이 드는 <김치찜>

서두르지 말자. 그저 천천히 기다리자.

독립해서 살고 있던 내게 어릴 적이나 왕래가 있었던 이모의 방문은 의외의 것이었다.


“퇴근했니?”


추운 겨울 걸려온 전화 한 통 후 이모가 집으로 찾아왔다.

한 손에 김치와 삼겹살을 들고 말이다.

무슨 일인지 감조차 잡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이모를 맞이했다.


“집에 김치 있니?”


김치가 있을 리가 없다.

독립 후 엄마는 단 한 번도 반찬을 만들어준다던가, 김치를 준다던가 하지 않았다.


“그럴 거 같아서 다 가져왔어. 이모가 저녁 만들어줄게.”


집안의 유일무이한 압력솥을 보며, 그래도 압력솥이 있어 다행이라며 이모는 서둘러 저녁준비를 했다.


압력솥에 김치를 깔고 덩어리 삼겹살을 올렸다. 다시 김치로 덮어주고 후추를 아주 듬뿍 뿌렸다.

그것뿐이었다. 오로지 필요한 재료는 김치와 삼겹살 그뿐.

그리곤 가스불위로 직행.


그렇게 서둘러 저녁준비를 하시곤 잘 살라는 말을 전했던 것 같다. 열심히 살라고 말을 했었던가?




돼지고기의 기름기와 잘 익은 매콤한 김치가 어우러져 자꾸 생각나는 그 맛.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엄마음식이기도 하다.

학교에서 친구와 다퉜다며, 하루종일 좋은 일이 하나도 없었다며 투정 부리는 아이를 꼭 안아준다.


“우리 사랑이~ 오늘 하루 힘들었으니까 엄마가 사랑이 가장 좋아하는 김치찜 만들어줄게!”

잔뜩 찌푸렸던 얼굴에 햇살 같은 웃음이

번진다.


압력솥을 꺼내, 참기름을 듬뿍 둘러준다.

김치를 깔아주고,

_몇 번 김장에 도전했다가 뼈아픈 실패를 경험하고 나서, 김치는 대기업의 힘을 빌리고 있다.

돼지고기 덩어리를 올려준다.

삼겹살, 목살, 앞다리살 그 어떤 부위든 상관없다.

그 위로 김치를 정성스레 덮어준다.

말 그대로 <김치찜>이 될 수 있게 말이다. 후추를 아주 듬뿍 뿌려주고, 김치국물도 넉넉히 부어준다.

이제 시간에게 맡길 차례이다.

가스불에 압력솥을 올리고 은근한 불로 천천히 익혀준다.

덩어리의 고기에 양념이 베어 들고, 육질이 부드러워지려면 서둘러서는 안 된다.


맛있게 익어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서두르지 말자.

그저 천천히 기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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