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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담 Jul 19. 2024

#3. 제철 맞은 <감자채 전>

잃어버린 나의 일상이 돌아올 수만 있다면 전부 먹어버리자.

연속된 비예보가 있더니, 밤새 많은 비가 내렸다.

창밖의 세상이 무겁게 가라앉았나 싶더니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비가 쏟아진다.

아픈 그녀와 병원에 가고 있을 그가 걱정스러워, 비 내리는 하늘을 원망스레 바라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비는 하염없이 쏟아지고 또 쏟아진다.


맑은 날보다 흐리거나 비 오는 날을 좋아했던 우리였다.

비 내리는 길을 달려 어디든 갔다.

속시원히 쏟아지는 열린 수문을 보러 가기도 하고, 비에 젖은 자연이 온통 초록의 덩어리가 되어 앉아 있는 풍광을 보러 가기도 했다.

도시의 풍경에 익숙하던 나에게, 자연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알게 해 주었다.

그 자연 앞에서 사람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차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은,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란 생각을 하게 해 줬다.

같이 있어 행복했다.

함께 할 수 있음에 행복했다.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시시덕 거리는 둘만의 시간들이 행복이라 생각했다.


감자가 4개 남았다.

봉지 그득히 담겨있던 그 감자를 샀어야 했다. 유명산지 로컬에서 판매하던 제철 맞은 감자는  놀랍게도 신선하고 말도 안 되게 저렴했다.

집에 아직 감자가 남아있고, 언제든 다시 와서 사면되니까 싶어 장바구니에 담았던 감자를 꺼내놨었다.

이제 4개뿐인데.

이 감자를 다 먹으면 우리의 일상이 돌아올 수 있을까?


함께 나눠서 샀던 복숭아를 다 먹으면 우리의 일상이 돌아올까 싶어 하루에 두세 개씩 먹어 치웠다. 스무개남짓 하던 복숭아는 금세 없어졌고, 우리의 일상은 돌아오지 않았다.


과일 좋아하는 내게 다투고 화해하는 날에도 그는 과일을 내밀었다. 미안해라는 말대신 사과를, 애플수박을 내밀던 그였다.


먹어치우자.

감자를 먹고, 복숭아를 먹고, 수박을 먹고 전부 먹어버리자. 그렇게 해서 잃어버린 나의 일상이 돌아올 수만 있다면 전부 먹어버리자.


감자 1개를 잘 씻어 껍질을 벗겨낸 후 최대한 곱게 채 썰어준다.

_ 채칼을 사용해도 되지만 감자 1개 썰자고 도구를 꺼내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채 썰어진 감자채는 소금 살짝 뿌려 10분간 절여준다.

절여진 감자채는 물에 한번 헹궈내고, 부침가루 한 스푼으로 버무려준다.

달궈진 팬을 꺼내, 감자채 반죽을 한입크기로 올려 노릇하게 구워낸다.

앞뒤로 두 번씩 뒤집어 주면 완성이다.

제철 맞은 감자는 포근하고, 따뜻하고, 고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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