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를 생각하며
열심히 살았음에도 우리는 늘 살아온 시간에 대해 후회를 합니다. 기준점이 성공을 거둔 이들이어서일까요. 스스로에 대한 만족보다는 부족하고 모자라고, 그래서 어떤 순간에는 한심한 삶을 살았노라 자책을 하기도 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 자기만족의 시기를 사는 시기이지만 말입니다. 특히, 개인의 경제력은 삶의 성공과 실패, 승자와 패자를 구분 짓는 주요 요소가 되어 우리를 괴롭힙니다. ‘성공한 자는 부자이며, 실패한 자는 빈자’라는 평가가 하나의 공식이 되어버렸습니다.
‘돈 있으면 못할 일이 없다’라는 말 뒤에는 ‘돈이라면 무슨 짓이라도 한다’는 말이 숨어 있음에도 우리는 삶의 기준을 돈으로 삼기에 주저함이 없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돈보다는 가족이 중요하다는 우리들의 생각은 이미 수년 전에 가족보다 돈이 더 중요하다로 바뀌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가장 많은 인구수를 구성하고 있는 50대들은 초등학교 도덕 시간에 배웠던 황금만능주의의 비판을 기억할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돈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이 있고, 돈보다 가치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극단적 이기주의를 경계하고, 정경유착의 부정부패를 없애고, 사람답게 살기 위한 방법을 알려주는 교육 내용이었습니다. 요즘의 교육은 어떤지 알 수는 없지만 그 때는 그랬습니다. 지금은 꼰대의 언어로 눈치없고, 능력없는 사람으로 쉽게 오해받을 수 있는 말이지만 말입니다.
학창시절부터 청년 시절, 그리고 중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늘 비교를 당하고 살아왔습니다. 타인과 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창의적인 생각이나 활동은 감히 꿈꿀 여력이 없었고, 시대 정신이라 일컫는 보통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보통의 삶이라는 것은 미디어가 정해준 것이었습니다. 그 기준을 따라 비교하며, 비교당하며 끊임없이 소비할 여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살았습니다. 남들보다 더 좋은 것을 쓰고,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성공이었고, 삶의 활력이었습니다. 크게는 대도시 평지의 역세권 아파트를 가져야 하고, 작게는 아이에게 등골 브레이크를 사주어야 했고, 해외 휴양지에서 기록 사진 하나는 남겨야 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온 삶의 보편적 욕구이자 기준이었습니다.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아무리 열심히 살았다 하더라도 자괴감에 빠져야 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했던 많은 이들에게는 속이 타들어가는 시간이었을 겁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부당하게 저평가된 우리들에게는 그렇습니다. 살만한 사람들에게는 루저의 변명으로 들릴 것입니다. 세상 탓하고, 부정적인 기운을 가졌다고 말입니다. 좋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다들 자신에 대한 평가가 후한 세상이니 서로를 비난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정신 승리라는 비꼬는 말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지나온 세상보다 낫다라는 말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습니다. 탈근대를 외치며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엘리트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정말로 그렇습니다.
좋고 바른 것을 이어주지 못하고, 더 나쁘게 변해가는 세상을 물려준다면 우리 세대 모두는 루저입니다. 세대 전체가 루저인데 어떻게 위너가 나타날 수 있을까요. 전체주의적 사고라 말해도 할 수 없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물려줘야한다는 관점에서는 실패한 세대가 되며, 이는 책임과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결과이니까요.
'오래된 미래'의 작가 헬레나는 가족 공동체의 자급자족 경제를 가진 라다크를 지상 최후의 낙원으로 소개했습니다. 친환경적이며 지속 가능한 경제, 가족 공동체의 따뜻한 유대 의식, 자신이 속한 문화에 대한 높은 문화적 자긍심을 통해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는 이유에서 말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행복하고, 삶의 가치를 실현시킬 미래가 과거에 있다는 의미로 '오래된 미래'라는 제목을 지은 것입니다.
수많은 자기계발의 비법과 정보들, 정확히는 개인이 부자가 되는 법에 대한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정작 사람들은 더 가난해지고 있습니다. 지식산업의 한 축이 되어버린 삶의 목표, '경제적 자유'는 모두의 욕망이 되어버렸습니다. 많은 이들이 경제적 자유를 위한 학습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벼락거지'라는 말이 유행했고, 사람들은 쏟아지는 비법을 배운대로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를 감행했습니다. 성공의 달콤한 이름, 경제적 자유를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최악의 경기 침체를 겪고 있습니다. 상투를 잡은 매수인들은 은행 이자 부담에 삶의 활력을 잃었습니다. 뼈 빠지게 일해서 많은 빚을 갚아야 하는 상황으로 몰렸습니다. 누군가의 경제적 자유를 위해서 희생당하는 믿지못할 상황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불편한 진실 하나 말씀드릴까요. 시중 은행의 70% 정도가 외자 지분입니다. 한국인들이 열심히 일해서 은행빚을 갚으면 외국인의 주머니가 자동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이게 진정 돈으로 돈을 버는, 경제적 자유인의 모습입니다. 긍정적인 마인드로 부자가 되기 위한 강한 실행력을 발휘했던 많은 이들이 자산 가격의 하락으로 은행의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주식, 부동산이 들썩이는 그 과정에서 최종 승자는 은행을 포함한 자산가들이었습니다. 소득에서 빚을 갚는 비율(DSR)이 평균 소득의 40%, 각종 세금이 소득의 평균 30%이니 남는 30%로 교육비, 생활비, 경조사비, 효도비를 아껴쓰는 시대입니다. 소비 경기가 좋을래야 좋을 수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돈이 많이 풀려 물가도 많이 올랐습니다.
살기가 팍팍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물질적 성장이 과거에 비해 엄청난 성장을 거두었음에도 말입니다.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와 평등을 외쳤고,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를 노래했습니다. 대중 매체부터 전문 학술지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주장했던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인류가 더 풍요롭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더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런 세상이라 주장하는 많은 정보들을 쏟아내고 있는 중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 살만한 세상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대중 매체에 등장하는 다수의 사람들, 그 사람들의 삶을 기준으로 한다면 말입니다.
힘들었지만 모나지 않게 세상을 살았노라 스스로 만족하며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 세대인 우리는 자식 세대의 어려움을 모른 척 할 수 없습니다. 자아실현은 고사하고 새끼를 낳아 기르는 자연계의 동물들이 누리는 기본적인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는 이상한 세상을 물려줄 수는 없습니다. 힘들었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살만한 세상을 물려받았던 우리는 그런 의무가 있습니다. 지난 시간을 물질적으로 조금 부족했지만 그래도 지금보다 살만하던 때라 기억하는 세대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매정하게 더치 페이를 하고, 혼밥과 혼술을 한다고 비웃던 세대였습니다. 경쟁은 했지만 협력의 힘도 경험해 본 세대입니다. 여전히 가장 많은 인구 수를 기록하고 있는 세대이기도 합니다.
권리보다는 의무를 다할 때 더 좋은 세상이 온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세상의 이치입니다. 물질적으로 애써 일한만큼 돌려받지 못했던 아쉬움이 크지만 그것이 우리들의 권리를 되찾는 동력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욕심 많은 누군가가 그것을 세대 이기라 칭하며 인간은 원래 욕심이 지나친 생명체이니 어쩔 수 없다고 세상은 여전히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주장할테니 말입니다. 엘리트 경제인이나 정치인들이 말하는 공정, 평등, 상식의 오류와 숨은 뜻을 찾아내 바로 잡아내는 것이 우리 세대의 의무입니다. 좋던 싫던 물려받은 세상을 더 나은 것으로 물려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어른으로 사는 방법입니다. 부모 세대의 희생에 대한 참됨을 확인하고, 그것을 자식 세대를 이어주는 자연스러운 삶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