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어줌과 채움, 전포동 연가(戀歌)

by 할수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들이 어머니를 두고 아버지와 경쟁한다는 정신분석학적 용어인데 동양의 정서와는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아버지는 극복할 대상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이해하고 수긍할 대상이라는 정서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70년대생의 한국 사람이라면 유교의 삼강오륜 중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자유친(父子有親)의 의식이 잠재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MZ 세대로 이어지면 어떨지 잘 모르겠습니다. ‘라떼는 말이야~’로 대표되는 그들의 언어를 듣다 보면 그들의 의식을 예전의 인식으로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물론 MZ세대에게 꼰대로 불리는 50대의 입장에서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MZ세대의 등장과 함께 세대 갈등은 좀 더 깊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인은 가족보다 돈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고, 가족의 의미는 희석되었으며, 반려동물의 숫자는 늘었고, 결혼과 출산율은 떨어졌습니다. 부자 열풍, 경제적 자유와 함께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불문율이 되었습니다. 흙수저, 금수저 등의 이름으로 부모의 사랑보다는 능력을 위주로 평가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생각으로 살았던 어른들은 젊은이에게 혀를 차고, 과거보다 기회가 줄어든 젊은이들은 어른을 더는 존경하지 않습니다. 더는 이어지지 않고, 마치 새로운 종족이 나타난 것처럼 여러 요소에서 세대 간의 차이가 보이지 않은 장벽으로 작용하는 시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것을 가진 기성세대는 욕심과 아집을 거두지 않고, 덜 가진 신세대는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거두지 않습니다. 함께 살아가기보단 서로를 밀어내고 구분하기 바쁩니다. 척박한 환경을 함께 극복하고, 인류의 존속과 유지, 변화와 발전을 이어온 오랜 인류의 지혜는 기성세대에게도, 신세대에게도 발견하기 어려운 과거의 유물이 되어버렸습니다. 돈이 돈을 버는 시대, 기성세대는 자신의 이익을 내어줄 생각이 과거보다 옅어졌고, 신세대는 우리라는 의식을 채울 의지가 옅어졌습니다.


경제적 자유를 위한 노력이었던 투자 열풍이 식고, 경제 위기론이 터져 나오는 시기입니다. 종잇장도 맞들면 낫다는 지혜로운 말은 들리지 않고 각자도생의 외침만이 세상을 메우고 있습니다. 선배세대로부터 배워 익히고, 그것을 후배 세대에게 전달하며 쌓아 왔던 지혜로운 삶에 관해서 우리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기성세대의 내어줌과 신세대의 채움이 반복되며 축적해 온 우리의 지혜로움만이 이 어려움을 극복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는 세상이 내어줌과 채움이 있기를 원하듯 내어줌과 채움의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곳이 있습니다. 제가 태어나 자란 곳이며, 최근 핫플레이스로 역동적인 변화가 이어지는 곳, 부산 전포동입니다. 부전동과 붙어있어 함께 부산의 대표적인 공간 서면으로 불리는 지역입니다. NC백화점 서면점 등의 상업시설과 오피스텔, 롯데캐슬 스카이 같은 고층아파트가 들어섰고, 서면 아이파크, 사랑으로 부영 등의 대단지 아파트들이 들어선 곳입니다. 최근 전포역 중심으로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감각적인 술집과 식당, 그리고 다양한 가게들이 개성을 뽐내는 곳이기도 합니다.


과거의 전포동은 배가 드나들던 포구로 유명했습니다. 서면에 있던 동천이 범일동과 문현동 사이로 흘러서 바다로 나가는데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지금 서면의 중심가인 쥬디스태화 쪽은 바다 일부분이었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포구였던 남포동, 구포동, 덕포동, 노포동 등과 함께 부산의 대표적인 포구로 지명이 붙여진 것입니다. 바다와 인접한 지역이라 홍수가 잦았고, 그 홍수가 서면 주위에 있는 산의 토사를 쓸어내려서 자연적으로 바다를 메워 육지가 된 곳이 전포동입니다. 예전에는 논밭이 형성되어 채소 등이 많이 재배될 정도로 전포천의 흐르는 물가에는 논밭이 많았다고 합니다. 하천 주변이나 물가 쪽에 밭이 있다 해서 밭개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밭개를 한자로 바꾸면 밭 전(田), 물가 포(浦)인데 이게 현재의 지명인 '전포'의 유래이기도 합니다.

전포동에는 오랫동안 경남모직, 대우버스 공장 등이 위치하여 공구 및 기계부품 가게가 많이 성업 중이었는데 2010년 대우버스 공장이 울산으로 이전하면서 그와 동시에 기존의 공구 및 기계부품 가게들이 이전하고 그 자리에 소규모 카페나 음식점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전포카페거리가 만들어졌습니다. 전포카페거리는 2017년 뉴욕타임즈가 선정한 '꼭 가봐야 할 세계 명소 52곳' 가운데 48위를 차지한 적도 있습니다. 이러한 영향과 전포역을 중심으로 많은 젊은 층 유동인구로 떠오르는 신흥 상권이 구축된 곳입니다.

하천과 밭으로 이뤄진 동네에 큰 공장이 들어서 공업지역이 되었고, 공장이 떠난 자리에 상업시설이 들어서며 상업 지역이 되었습니다. 한국 격동의 시기가 고스란히 누적된 곳입니다. 누구나 그렇지만 나고 자란 곳이라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80년대 전포동의 좁은 골목길을 지나다 보면 살기 팍팍했던 그 시절의 푸념이 창문 너머로 터져 나왔고, TV 소리에 묻어 나오는 웃음이 대문 너머로 울려 나왔습니다. 가난한 것이 부끄러운 일도 아니었고, 이웃의 도움을 빌리는 것도 지금처럼 어려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부족하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돕겠다는 마음이 골목길에 온기를 주던 시절이었습니다. 대한민국 도시들처럼 80년대 전포동은 그런 곳이었습니다.

좁은 골목길은 대형 아파트 단지에 공간을 내어주었고, 골목을 채우던 아이들의 소란스러움은 그저 옛 추억이 되어버렸습니다. 친한 친구들이 살았던 집은 상가로 바뀌었고, 과거 때 묻은 아이의 얼굴 같았던 집들은 곱게 화장한 아가씨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그 시절 잘 살았던 친구의 집은 피자집으로, 자주 가던 떡볶이집은 일본식 주점으로, 호기심을 돋게 만들었던 문방구는 모던한 미용실로 변했습니다. 옛 추억의 흔적만 희미하게 남았습니다. 고집한다고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는 법입니다.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비켜주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유한한 개인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내어줌의 지혜로움이 필요한 때입니다. 내어줌의 아쉬움과 허전함이 더 큰 열정과 서로에 대한 존중으로 채워졌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립고 소중한 것을 내어주는 어른스러움과 개인의 욕심만큼 함께 욕심낼 것을 찾아 채워가는 열정이 이어지는 곳이 전포동이었으면 합니다. 전원적인 삶이 아니라 팍팍하고 부족한 도시의 삶이었지만 고향의 정서를 가진 곳이었고, 돌아보니 사무치게 그리운 공간이었습니다. 내어주고 채우고, 다시 내어주고 채우는 그 공간에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노래처럼 울려 퍼졌으면 합니다. 그것이 참으로 전포동 연가(戀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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