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산 선암사

- 원효대사의 뜻이 저민 사찰

by 할수있다

선암사는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동 백양산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14교구 본사 범어사의 말사입니다. 675년(신라 문무왕 15년) 원효(元曉)가 창건하였습니다. 창건 당시에는 견강사(見江寺)라고 불렀으며, 절 뒷산 절벽 바위 위에서 화랑들이 무술을 닦으면서 절 이름을 선암사로 바꿨다고 합니다. 이곳은 우리 조상들이 한마음으로 공동체를 이루면서 기도를 드린 신성한 도량이었습니다. 호국불교의 시조인 원효는 선암사를 왜적을 막는 본진으로 활용했다고 합니다. 원효가 부산 지역에 창건한 사찰들은 왜적의 침입을 막는 역할을, 암자들은 감시 초소로 활용되었다고 전해집니다.

4. 선암사 경내.jpg


호국불교와 더불어 원효대사의 탁월한 부분은 바로 주체성입니다. 일체유심조로 통하는 원효의 깨달음의, 원천입니다. 당나라로 유학을 가던 중 원효는 깜깜한 밤에 해골 속의 골수를 시원하게 마십니다. 그 시원한 물이 골수라는 것을 알고 난 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달렸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당연히 중국 유학의 불필요성을 느껴 유학의 길을 멈추고, 그 깨달음을 원천으로 포교와 종교생활을 이어가게 됩니다. 좀 더 발전한 나라에서 배워오겠다는 생각을 바꾼 것입니다. 큰 나라, 다른 문영 국가에 대한 사대의식을 버린 셈입니다.


선진 문물을 배워오겠다는 생각을 사대주의라 몰아세우는 것은 분명 비약입니다. 좋은 것은 마땅히 배워야 하는 것이고, 배운 것을 통해 더 나은 것으로 만드는 것은 사람살이의 이상적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사대주의를 운운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근대화 과정 이후에 현재까지 보여준 모습 때문입니다. 조국의 근대화를 이룬 것이 외세에 의한 것이었다는 믿음은 사실 오래된 과거이기도 했습니다. 조선의 건국 이후 시작된 사대주의는 지금도 여전하기 때문입니다. 단지 중국에서 일본, 미국과 유럽으로 대상만 바꾸어서 말입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탈근대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문화의 영향에 깊이 빠져있기도 합니다. 새로운 세상과 문명을 찾는다는 마음가짐과 자세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전통의 오랜 지혜도 저버린 채 말입니다.


원효대사가 불교 유학길을 멈추고 돌아온 이유는 세상의 이치가 먼 곳에 있지 않고 바로 우리 곁에 있다는 믿음과 깨달음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내가 나고 자란 고향 땅, 그곳을 고향으로 삼아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과 어울림, 행복과 불행을 함께 나누고, 질시와 반목에도 그것을 극복해 온 지혜의 시간을 함께 해온 사람들 사이에서 얻는 깨달음이 진짜인 것이지, 다른 삶의 양식을 가진 이들에게서 무작정 배워오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2. 대웅전.jpg

전통을 중시하고, 자주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았음에도 현재 우리의 삶은 지나온 시간에 비해 뭔가 모르게 피폐한 상황입니다. 경제적으로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음에도 말입니다. 말도 되지 않고, 의미를 이루지도 못하는 일인가족이라는 말부터 타인은 지옥이라는 말까지 서방에서 배워온 것들로 서로 돕고 의지하던 전통이 무너져버렸습니다. 스스로 생각해서 개념을 만들어 내던 자주성도 없어진 지 오래입니다.


일인가족, 타인과 담을 쌓는 지독한 개인주의는 모두 오래되지 않는 과거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지금 혐오금지법, 차별금지법을 앞세워 전파되고 있는 LGBT, 가족파괴, 탈종교화, 동성결혼, 페미니즘 등 서구에서 성행하는 문화는 당장 우리 민족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들이 받아들여진 지금을 생각하면 오래되지 않아 이런 서구의 문화와 함께 할 우리의 미래를 상상하기가 어려운 일이 아닐 겁니다. 지금은 모르지만 그때는 스스로 체화되어 그리 문제 삼을 일이 아니게 될 터입니다.


개인의 실존을 부르짖었던 서구 근대 철학자들에게서 자기변명거리만을 찾는 근래의 지식인들과 다른 모습이 천삼백 년 전 원효의 행적에 남아있습니다. 더 이상 남에게서 답을 구하지 말고, 자신에게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가르침이 있기 때문입니다. 불편하고 맞지도 않는 문화가 반복된다는 이유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우리가 올바른 정체성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스스로가 자신감이 없고, 주체적이지 못하니 남의 것을 선호하고 쉬이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원효가 호국불교를 통해 우리를 지켜낸 것은 우리의 문화와 공동체만이 아니라 그것을 이뤘던 과거, 그리고 이룰 미래를 함께 지켜내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부산의 중심 역할을 하는 백양산에 위치한 선암사는 이런 원효의 가르침이 있는 곳입니다. 선암사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극락전, 관음전, 명부전, 조사전, 칠성각, 산신각, 요사채와 종각이 배치되어 있는 극락정토 도량으로 수려한 곳입니다. 그 공간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행복의 시간이 이어지는 곳입니다. 많은 이들이 인간에게 행복을 주는 자연이란 극복할 것이 아니라 그에 동화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각을 기본으로 만든 인공의 것, 아파트를 신줏단지 모시듯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 사이에 자리한 선암사는 그래서 가치가 있는 곳입니다. 비록 나를 잘살게 만들어 달라는 기복신앙의 흔적이 사찰의 곳곳에 자리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9. 뒤에서 본 사찰.jpg

시대가 변하고, 많은 이들이 이기적으로 변했다고는 하나 적어도 부처님에게 남의 것을 빼앗아 자신의 풍요를 달라고 기도하고 있지 않음을 믿고 싶습니다. 내가 중요한 만큼 타인의 삶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더불어 함께 살아왔던 인류의 지혜를 생각해야 합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해 왔던 전통의 삶을 부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서 개인의 탐욕을 부릴 수 있게 된 바탕이자 근원이었으니 말입니다. 원효의 삶의 흔적을 통해 선암사는 치유의 공간이자 행복을 주는 공간입니다. 선암사는 그런 곳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천성산, 원효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