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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음 Aug 16. 2022

선생님, 나의 선생님

오솔길, 둘

     

     고향에서 추석 명절을 보내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남은 학기를 마칠 때까지는 선생님과 특별한 일 없이, 방학을 맞았다. 나는 선생님께 메일을 보냈고, 내 메일에 선생님은 답장을 해 주시는 정도.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내 편지에 답장을 보내주신 그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행복했다. 


     문창과 공부를 시작할 때, 나는 시 창작을 하고 싶었다. 시를 잘 쓰고 싶었고, 시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소설가였고 소설 창작 수업을 하셨다. 새 학기 수업은 시 창작 수업과 소설 창작 수업이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짜여 있었다. 잠시 고민했지만, 소설 창작 수업을 수강 신청했다. 어차피 지난 학기 시(詩) 수업시간 내내 써내는 작품(?)마다 형편없다는 교수님의 핀잔만 듣고 있던 터였고, 나는 그로 인해 정말 내가 시에는 재능이 없다는 사실에 괴로워하고 있던 차였다. 그렇다고 소설 쓰기에 자신이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야간대학을 다니던 4년의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소설을 써 본 적 없었으니, 결국 삼십여 년의 시간 동안 아직 단 한 편의 소설도 써 본 적이 없었던, 소설의 ‘소’자도 모르는 문외한이었던 것이다.

 

     무슨 배짱으로, 무슨 용기로 소설 수업 수강신청을 했을까. 아마 그것은 선생님이 내게 베풀어주신 특별한 애정에 대한 보답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게다. 


     상고 야간을 나와 은행을 다녔던 나는 학력이 고졸이라는 것 때문인지, 아니면 가난한 집에서 나고 자라면서 몸과 마음에 밴 때문인지 모르지만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은행의 상사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대해 나는 나 자신이 그들의 발가락의 때만큼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아니 천시했다. 직장 생활이 못 견디게 힘들었던 것도 이러한 생각들이 나를 지배했기 때문에 더한층 심했을 것이다. 지옥의 한가운데에서 허우적거리고 빙글빙글 맴돌다가 그곳에서 간신히 빠져나와 야간대학을 다녔지만, 여전히 지옥의 문턱을 배회하고 있었다. 직장을 때려치우고 오롯이 대학을 다니는 지금의 순간만이 지옥에서 벗어났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지옥에서는 벗어나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서, 책을 읽고 생각을 하면서 내가 살아왔던 삶이 얼마나 바보 같은 삶이었는지, 얼마나 안타까운 삶을 살았는지, 시간을 낭비했는지 실감하면서 차츰 나 자신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런 내게 선생님의 나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엄청나게 유명한 소설가였고 교수님이었던 선생님이 나를 사랑해 주신다는 것, 그것은 내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이로움이었다. 생각해보라. 나처럼 미천한 인간이 어떻게 저런 위치의 사람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할 수 있었겠는가. 어디 뭐 하나 내세울 것 없이, 못생기고 가진 것 없이, 아는 것도 없는 나를 누가 사랑해 줄 거라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나는, 세상에서 가장 못나고, 아는 것, 가진 것 없이, 길에서 차이는 돌멩이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가슴을 펴지도 못하고 잔뜩 움츠린 채, 웃음을 잃고 굽어진 허리처럼 굽은 삶을 살아온 내 삶에 한 줄기 빛으로 다가온 사람이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이 던져준 한 줄기 빛이 차츰 나를 소생시켰다. 세상에 못난 사람, 잘난 사람이 따로 없다는, 누구나 사람은 평등하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달아갔다. 웃음에도 그늘이 있던 내 얼굴에 천진난만한 웃음이 피어났고 땅이 아닌 앞을 보고 나아가는 거짓 삶이 아닌 참 삶에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가고 있었다.


     선생님은 몰랐을 것이다. 내게 선생님은 제2의 인생을 살게 해 준 내 삶의 은인이라는 것을. 선생님은 무심코 내밀었을 손이 내게는 낭떠러지에 떨어져 온몸을 지탱하고 끝내는 그 줄을 타고 지상으로 올라올 수 있게 해 준 생명의 밧줄이었다는 것을, 선생님은 결코 알지 못했을 것이다. 


     수업에 열성적이었던, 여전히 열정에 사로잡혀 있던 나는 맨 앞자리에 앉아 수업을 열심히, 정말 열심히 들었다. 내 생애 그토록 열심히,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말 한마디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던 적은 없었다. 선생님도 내 마음을 아셨는지 나를 자주 쳐다보셨고, 늘 선생님께 고정된 내 눈과 선생님의 눈은 자주 마주쳤다. 나는 눈을 내리깔지 않았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사람과 대화할 때는 그 사람의 눈을 보라.’는 말을 상기하면서. 애정을 담은 선생님의 눈은 내게 늘 힘과 용기를 주었다. 


      소설 창작 실습의 기초였던 터라 엽편소설을 쓰는 것이 첫 번째 과제였다. 각자 한 편씩의 엽편소설을 써서 선생님께 제출했다. 선생님은 학생들이 낸 과제물에서 잘된 몇 편의 소설을 골라 수강생들과 읽고 이야기를 나눴다. 당연히 내 글은 제외되었다. 나 아닌 다른 학생들이 선생님께 칭찬받는 것을 보니, 속상했다. 배알이 꼴렸다. 울고 싶었다. 어떻게든 만회해야만 했다. 어떻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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