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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음 May 15. 2022

선생님, 나의 선생님

오솔길, 하나

     

      선생님, 나는 서른의 늦은 나이에 대학에 편입하였다. 그곳에서 내 인생을 바꾼 선생님을 만났다. 그분은 문단에서 유명한 소설가였다. 나는 대학에 편입하기 전, 선생님의 책을 미리 읽어보았다. 엉엉 울면서 소설을 읽었다. 그때 나는 소설이 무엇인지, 어떤 글이 좋은 글인지, 도대체가 아무것도 모르는, 글에 대해, 소설에 대해서는 일자무식이었다. 오직 내 삶을 살아보기 위해, 앞으로 글을 쓰면서 살겠다는, 단순하고 어쩌면 철없는 생각 하나만으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편입을 했었다. 나는 문장이 아름답다든지, 문체가 개성적이라든지, 서정적이라든지 하는 작품에 대한 평가나 분석 따위의 소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선생님의 소설은 내 마음을 너무 아프게 했다. 단지 그뿐이었다. 


     선생님의 강의는 <한국 현대 소설 연구>였을 것이다. 소설을 읽고 작품을 분석하는 수업이었는데, 조별 발표로 발표조가 발표를 하고 나면 질문도 하고 발표 내용과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들을 이야기하는 수업이었다. 선생님은 이청준 작가와 윤흥길, 그리고 오정희 작가의 작품을 특히 많이 다루었다. 세 작가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듯했다. 나는 수업에 대단히 열정적이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책 읽기와 공부를 마음껏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그때의 나는 열정이 앞서서 당당함을 넘어 좀 건방져 보이기조차 했다. 수업시간에는 열성적으로 손을 들고 대답을 했다. 어느 날 수업에서 다른 학생들은 읽어내지 못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읽어냈고, 선생님은 내 의견에 동감했다. 그 후부터 선생님이 나를 주목했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내 나이가 많아서 눈에 띄었을 수도 있다. 나 말고도 나이 많은 학생들이 몇 있기는 했지만, 나는 첫 학기였기에 공부에 대한, 문학에 대한 열정을 숨기지 않았다.


     나의 늦깎이 대학은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도서관에서 밤늦도록 거의 자정이 가까운 시간까지 책을 읽고 공부를 하다가 기숙사로 걸어가는 길에서 바라본 하늘은 너무나 신비로웠다. 쏟아질 것 같은 별들이 눈 속으로 들어와 내 가슴속을 가득 채웠다. 나는 행복함으로 충만했고, 너무 행복해서 이 행복이 깨질까 봐 두려웠다. 두려울 정도로 행복했던, 내 삶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시간들이었다. 



     2학기에 편입했던 나는 추석을 며칠 앞두고,  시골에 미리 내려가야 해서 다음 시간 수업을 들을 수 없노라고, 기숙사 방에서 전화로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그런데 선생님도 시골에 내려가야 한다면서 함께 내려가자고 하시는 거였다. 선생님 차를 타고 가자는 것이다. 나와 선생님의 고향은 같은 남쪽 도시였다. 내 말투, 억양이 세고 사투리가 많은 내 말투로 당연 고향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함께 가자는 말씀은 참으로 뜻밖이었고, 추호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황송했고, 한편으로는 너무 기뻐서 둥둥 떠오르는 느낌이었다. 집까지는 데려다줄 수 없지만, 도시 어디쯤에서는 내려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선생님 옆 자리에 앉아 나란히 차를 타고 가는 것이 여간 힘들지가 않았다. 선생님과 단둘이, 성인 남자와 폐쇄된 공간에 몇 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숨 막히는 일이었다. 평소 선생님의 조용하고 단정하면서도 순수하고 수수한 모습과 인간적인 맑은 눈동자를 지닌 선생님을 존경하고, 어째선지 채 한 달 보름밖에 지나지 않은 그때에도 별 스스럼없이 대하고는 있었다. 그런데, 둘 만이 함께하는 차 안에서는 어색함을 넘어 숨이 턱턱 막혔다. 아무 말 없이 앞만 보고 가다가는 도착하기도 전에 답답해서 죽지 싶었다.


     선생님은 원체 말이 없으신 분이라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앞만 보고 운전을 했다. 나는 이 숨 막히는 시간을 모면하고자 내 이야기를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시를 쓰고 싶은데 시를 잘 못 써서 시를 가르쳐주시는 교수님께 만날 형편없다는 소릴 듣고 있다는 것, 학교에 오기 전에는 농협을 다녔는데 명예퇴직이 있어서 ‘때는 이때다’ 하고 사표를 던지고 내 삶을 찾아왔다는 것, 그리고 학교 오기 전에 선생님의 소설을 열심히 읽고 울었다는 것까지. 별별 내 살아온 이야기를 쫑알댔다. 선생님은 내 이야기 들으면서 간혹 질문을 던졌고, 나는 지치지 않고 내 이야기들을 아낌없이 들려 드렸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내릴 때, 선생님은 “너 참 말 많다.”라고 하면서 환하게 웃으셨다. 


     쉴 새 없이 떠들었던 네다섯 시간이 영겁의 시간처럼, 그리고 찰나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많은 내 이야기를 친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해 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많은 말을 하고도 말을 많이 한 것에 대해 후회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후련하고 편안했다. 어쩐지 가슴속에 무언가 가득 찬 것 같고, 무언가 해 낸 것 같은 뿌듯함으로 충만했다. 앞으로 선생님과 참 잘 맞을 것 같다는, 잘 지낼 것 같은, 내가 선생님을 무척 좋아할 것은 예감이 들었다. 


     추석명절을 보내고 부푼 가슴을 안고, 학교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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