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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음 May 01. 2022

엄마

엄마 마중, 빵 마중


     엄마는 우리들에게 보름달 빵을 가져다주었다. 가난한 집에 시집와서 자식을 여섯이나 낳은 엄마는 농사일이 끝나고 겨울이 오면 늘 일거리를 찾아다녀야만 했다.


     내가 열 살이나 되던 해였던 듯싶다. 그해 겨울 엄마는 이른바 ‘나이키 접붙이’는 일을 하러 다녔다. ‘나이키 접붙인다’는 말은 뽕나무를 잘라내어 접붙이는 일이었는데, 왜 뽕나무를 나이키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샛별이 새벽하늘에서 추위에 떨며 얼굴을 빛내고 있을 때 나갔다가 저녁별이 하나둘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면 트럭 뒷칸에서 짐승의 비닐천막을 벗고 다시 사람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왔다. 


     나는 매일 저녁 남동생과 함께 엄마를 마중 나갔다. 아니 보름달 빵을 마중 나갔다. 엄마를 마중 나온 것은 비단 우리 남매만은 아니었다. 엄마들을 실은 차가 도착하면 트럭을 향해 달려드는 아이들은 6.25 전쟁 때 초콜릿을 주던 미군에게 달려들던 아이들과 다름없어 보였다. 시동이 걸린 트럭 뒷칸에서 엄마와 마을 아주머니들은 여기저기 구멍이 뚫린 비닐 천막을 걷어내고 한 사람 한 사람 천천히 내렸다. 그 모습은 마치 도살장에 도착한 짐승들이 차례대로 내리는 것 같았다. 거기에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비장함이랄까 비애가 뒤섞여 있어 서슬에 눌린 아이들은 조금씩 뒤로 물러나 서 있었다.  여기저기서 엄마를 부르는 소리들이 부산스럽고 어수선하게 이어지고 각자 아이들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엄마들의 힘든 어깨 위로  반짝이는 별빛이 애잔하게 내려앉았다.


     울퉁불퉁한 도로를 오랜 시간 달려오면서 이리저리 부딪히고, 오래 쪼그리고 앉아 있었던 탓에 쥐가 난 다리를 절룩이면서도 엄마는 트럭 앞에 쭈뼛거리고 서 있는 우리를 향해 “추운데 뭐 하러 나왔느냐”라고, 새파랗게 질린 엄마의 입술이 말했다. 나는 그런 말에는 아랑곳없이 엄마가 건네주는 보자기를 끌러 그 안에서 둥근 얼굴로 한참을 기다려 우리를 맞이하는 빵을 냉큼 꺼내 들었다. 엄마는 보자기를 받아 들고 성큼성큼 집을 향해 걸어가고 나와 동생은 뒤에 쳐져서 빵을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고속도로처럼 흘러내린 두 줄기 누런 콧물을 들이마시며 함께 삼키는 빵맛은 추위 따위는 오간데 없어지고 포근하고 달콤함이 혀를 타고 목구멍을 넘어가 위장을 지나, 종내에는 온몸을 감싸고 휘돌아 몸속에서 소용돌이쳤다. 발걸음도 느리게 제아무리 빵을 아껴먹어도 빵은 구름 속으로 먹혀 들어가는 해처럼 금세 작아져 갔고, 막냇동생에게 줄 약간의 빵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보름달 빵은 왜 그렇게도 빨리 나와 동생의 입속에서 금방 사라졌을까. 매일 그 시간이 되면 엄마를 마중 나가 보름달 빵을 먹는 것이 하루를 기다리게 해주는 힘이요 남루의 시간을 보상해 주고 위로받는 마법의 순간이었다. 자칫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져도 기다림은 지루하거나 허튼 시간이 아니었고 그 시간만큼 행복한 시간은 더 길어졌다. 기다리면, 기다리기만 하면  오늘 밤 안에 반드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빵이 내 혀 끝에 스며들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야곱의 믿음이요 욥의 믿음이었다.


     내가 보름달 빵을 마중하며 느꼈던 행복에 대한 대가로 엄마는 그 빵의 달콤함을 알지 못했다. 점심 후에 먹는 간식을 먹지 못했고, 저녁까지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없었다. 엄마도 사람이었으니 먹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을 게 분명하다. 그 시절 품팔이를 하러 다니던 엄마들 대부분이 집에서 애타게 기다리는 아이들의 얼굴이 어른거려 빵을 먹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먹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가난은 엄마들의 삶에서 ‘나’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가족’만을 남긴다. 


     가면 다시 오지 않을 엄마의 젊은 시절은 한 번도 꽃무늬가 예쁘게 그려진, 성한 팬티를 입어 본 적 없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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