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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음 Sep 03. 2024

내가 사랑한 어둠을 불러

어둠 속에서

     우리 가족이 이곳 소읍으로 이사 온 지 벌써 10년째 되어간다. 이곳에 특별한 연고가 있는 것도, 그렇다고 우리 부부 중 한 사람의 직장 때문에 이곳으로 오게 된 것도 아니다. 그냥, 어쩌다 보니 이곳이 우리가 살아갈 곳이 되었다. '어쩌다 보니'라니, 삶의 터전을 이렇게 아무렇게나 고른다는 것이 말이 되나 싶을 수도 있다. 나는 서울이나 경기도심의 빡빡한 삶보다는 시골생활을 꿈꾸었다. 아이들도 시골에서 자라는 것이 정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더 건강할 거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내가 살아온 터전이 시골이었고, 시골생활이 좋았다. 나무를 하러 다니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가마솥에서 누룽지를 훑어 먹고, 마냥 산과 들로 뛰어다니면서 놀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솜사탕을 먹은 것처럼 달콤하고 푸근했다. 우리 아이들도 나처럼 자랐으면 하고 바랐다.  




     지금 친정엄마가 혼자 살고 계시는 시골집은 현대식 집이다. 그전에 그러니까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슬레이트 지붕의 미음자형 집이었다. 방 두 개의 안채가 있고 맞은편으로는 화장실, 곳간, 방과 세면실이 있는 바깥채가 있었다. 그리고 안채를 기준으로 오른쪽으로는 텃밭이 있고, 왼편은 담이 있고, 그 너머에 도로가 있었다. 대문이 있긴 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담 한쪽이 무너져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기 때문이다. 무너진 담 앞쪽에 앵두나무가 있었는데, 앵두꽃은 봄을 알리는 전령으로, 빨간 앵두는 간식거리로 안성맞춤이었다. 안채는 큰방과 작은방이 있고, 부엌이 있었다. 마루가 있고, 작은 방 앞쪽에도 부엌이 있어 군불을 지펴 방을 데웠다. 부엌 앞쪽으로 시멘트를 바른 바닥에 펌프질 하는 수도와 돌 학독이 있고, 그 위로는 자갈 위에 장독대가 길쭉하게 퍼져 있었다. 여름이면 자갈 틈 사이로 봉숭아가 올라와 흰색, 분홍색, 다홍색 꽃들을 앞 다투어 피워내고 열손가락 손톱을 물들여 주었다. 뒤뜰에는 밤나무 한 그루가 옆집을 경계로 자랐는데, 옆집 텃밭으로 떨어진 밤을 줍기 위해 울타리에 손을 집어넣거나 막대기로 밤송이를 끌고 오느라 진땀을 뺐던 기억들, 그렇게 애써 주운 밤을 들고 뿌듯해했던 마음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물론 울타리가 짜부라지고 구멍이 생긴 탓에 옆집 할머니께 오줌을 지릴 만큼 호된 꾸중을 들었던, 지금 생각하면 미소가 떠오르는 추억도 있다. 그리고 감나무가 있었다. 감은 내 엄지손톱보다 더 작은 주제에 씨만 몽땅 들어있는, 먹을 거라고는 거의 없는 포도송이 같은 산감이었다. 살이 많으면 좋았으련만, 그나마 노랗게 익은 감을 한입 베어 물면서 씨까지 함께 씹히던 떫은 추억도 있다. 뒤뜰의 담은 나무들이 대신했는데, 연한 순에서 반짝거리는 물이 나와 분홍빛으로 손톱을 물들여주는 나무가 있었다. 천연 매니큐어가 아이들의 천진한 아름다움을 덧칠해 주던 시절이었다.


     내가 특별한 애정을 갖는 곳은 재래식 부엌, 정재다. 지금보다 좀 더 나이가 들면, 작은 오두막집을 짓고 가마솥을 걸어두고 불을 지피면서, 불멍을 하면서 살고 싶은 게 나의 작은 소망인데, 시골집의 큰방 끝 옆으로 부엌으로 통하는 문이 나 있었다. 시골집 부엌에는 언제, 어떻게 부서졌는지는 모르는 찬장이 한쪽을 차지했고, 방 바로 아래로는 가마솥이 걸린 아궁이가 있었다. 아궁이가 두 개였다가 어느 결에 하나를 없애고 그곳에 설거지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뒤쪽으로는 나무를 쟁여두었다. 나무는 볏짚 단이나 깨대, 콩깍지 등 농작물의 부산물이 주류를 이뤘다. 이곳으로 닭들이 알을 낳으러 드나들었다. 닭들은 나무가 높게 쌓여 있으면 있는 대로, 낮게 있으면 낮은 데로, 안쪽 후미진 곳에 자리를 잡고 꼼짝 않고 앉아서 알을 낳았다. 닭은 사람들이 무엇을 하든지 상관하지 않고 가만히, 미동도 없이 눈알을 굴리며 꼬꼬거리며 앉아 있었다. 그리고 알을 낳고는 마당으로 나가 언제 그랬냐는 듯 땅을 헤집고 다녔다. 달걀이 병아리로 부화되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알을 낳기 위해 앉아 있던 닭들과 그 닭들이 낳았던 알들, 만져보면 따뜻하고 반질반질했던 알들이 어두운 부엌을 환하게 밝혀주었다. 


     어스름이 밀려오는 해 질 녘, 어두운 부엌에서 가마솥이 걸린 아궁이에 불을 지피기 위해 성냥을 긋는 순간, 콧속을 파고드는 화약 냄새는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가 되어, 그 미지의 세상에 대한 상상으로 내 가슴은 두근거렸다. 가마솥에 쌀을 씻어 안치고 밥을 했다. 성냥을 그어 한 움큼 잡은 짚단에 밑불을 붙여 아궁이에 넣은 후 천천히 나무를 넣으면 불은 꺼지지 않고 잘 타들어갔다. 아궁이 앞 땅바닥에 쪼그려 앉아 부지깽이(우리는 비지땅이라고 불렀다)로 불을 들쑤셔가며 불을 땠다. 구수한 나무 타는 냄새와 너울너울 춤을 추는 불꽃들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던 환상들. 불빛이 데려간 환상 속에서 나는 언제나 마법의 세계에서 악마를 물리친 영웅이 되어 금의환향했다. 환상을 더 환상적으로 만들어 주는, 그리운 땔감이 있다. 땔감에 그립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 좀 우습지만, 아궁이에 불을 지필 생각을 하면 떠오르는 땔감이니, 그립다는 말을 써도 무리는 없을 듯싶다. 쌀을 감싸는 겉껍질인 왕겨인데, 우리는 맷째라고 불렀다. 왕겨는 아궁이에 바람을 넣는 풍노(풀무)가 있어야 불을 지필 수 있다. 풍노(풀무)를 한 손으로는 돌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왕겨를 한 주먹씩 집어서 아궁이 안으로 던져 넣는다. 한 손은 돌리고 다른 한 손은 던지는 동작, 두 손이 함께 어우러져 이루어내는 그것이, 나는 좋았다. 풀무를 돌릴 때마다 어두운 아궁이 속에서 빨갛게 빛을 내던 왕겨의 따뜻하면서 정열적인 빛이 잊히지 않고 새록새록 마음에 사무친다. 그 빛을 떠올리면 나를 환호하는 소리로 가슴이 두 방망이질 친다. 


     왕겨가 제 몸을 태워 불을 주면 가마솥 안에서는 쌀이 익어갔다. 가마솥 표면으로 하얀 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하면 밥이 거의 다 되어간다는 신호였다. 그리고 몇 분 더 불을 지피다가 풀무질을 그만두고 아궁이 속 잔불로 10분 정도 뜸을 들이면 밥은 완성되었다. 간혹 누룽지를 먹을 심산으로 불을 더 지피다가 태우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노릇노릇한 누룽지를 먹을 수 있었다. 우리는 누른밥에 물을 부으면 누룽지, 딱딱한 채로 그냥 먹으면 깜밥이라고 불렀다. 우리 여섯 형제들은 누룽지를 똑같이 먹기 위해 두 명씩 짝을 지어 순번을 정했다. 싸울 일이 없어졌다. '누룽지'하면 유리창이 깨진 찬장에서 깜밥을 꺼내 먹던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학교에서 돌아와 가방을 마루에 던져두고 어두컴컴한 부엌에서 유리창 깨진 찬장을 열면 거기, 금이 간 접시 위에 깜밥이 있었다. 엄마는 간혹 아들이 아니어서 며칠을 눈이 퉁퉁 붓게 울었다던 넷째 딸을 위해 깜밥을 훑어 놓으셨다. 그때 어둠침침함 속에서 꺼내 먹었던 깜밥이 거친 세상 속에서 내가 노릇하게 익을 수 있도록,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주고 있었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 가족이 정착한 이곳 소읍은 내가 생각한 것처럼 아주 시골은 아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걸어 다닐 수 있는 통학로도 없고 그렇다고 산길을 다닐 수도 없다. 이곳은 준도시라고 해야 할까. 시골이라고 하기에도, 도시라고 하기에도 뭣한 시골과 도시의 중간쯤 된다. 이곳에서 우리 아이들은 내가 바랐던 시골생활을 하지 못하고, 하지 않는다. 산과 들을 뛰어다니지도 않고, 자연을 벗 삼지도 않는다. 시대가 변한 탓일까. 시대도 사람도 변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있다. 엄마가 가을날, 이른 새벽에 가마솥 하얀 쌀밥 위에 쪄 주었던 알밤의 따뜻함처럼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엄마가 나를 사랑했듯 내 사랑도 이어진다.


    서른 넘어 들어간 대학에서 공부를 하다 말고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내 삶을 저당 잡혔다고 생각했던, 어둠 속을 헤매던 시절이 있었다. 환하게 빛나야 할 내 삶을 자식이라는 이름의 어둠이 집어삼켰다고, 괴로워하며 우울증을 앓았다. 잠시였지만, 그 생각을 하면 아이들에게 미안하지만, 또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은 나의 두 어둠이 내 삶을 보듬고 풍요롭게 한다. 어두컴컴한 정재(부엌)가, 가마솥이 어린 시절의 내게 마법을 걸었듯이, 불꽃을 피웠듯이, 내 삶을 무성하게 꽃 피워준다. 


    어둠이 나를 부른다. 내가 사랑한 어둠들, 깜밥과 정재와 가마솥이 내게 손짓한다. 내 품으로 들어온다. 빛은 어둠이 있어야 한다고 어둠은 늘 내게 속삭였지만, 나는 어둠을 보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빛나는 것들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더 밝은 빛일수록 어둠에 더 많은 빚을 지고 어둠이 짙을수록 빛은 더 환해진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숨 가쁘게 달려왔다. 다행히 멀리 오진 않았다. 돌아갈, 빛을 품은 어둠이 있으니, 사랑하는 어둠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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