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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음 May 22. 2024

오늘부터 도서관

실업자가 되었다

  실업자가 되었다. 실직한 지 삼일 째다. 오늘부터 오전 9시에 도서관에 출근해서 오후 6시까지 앉아 있기로 나 자신과 약속했다. 그런데 하루도 지나지 않은, 시작이 절반인데, 시작하는 오늘, 거의 한 시간 가량 늦게 출근했다. 집에서 늦게 나온 데다, 핑계를 대자면 버스를 20분이나 기다렸다. 버스를 타고 오는 시간은 채 5분도 걸리지 않은데 말이다. 그나마 버스를 기다리면서 사진을 찍었다. 

  빨간 방울 모양으로 겉면은 우둘투둘한, 딸기와 비슷한 저것이 무엇인 줄 아는가.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므로, 친절하게! 저 열매의 이름은 뱀딸기다. 자태가 매혹적이지 않은가. 푸른 풀 곁에 빨간 방울. 푸른색과 빨간색의 선명한 대조. 빨강의 유혹, 너무 크지도 않은, 젖먹이 엄마의 유두 같은, 아기에게 젖을 물리기를 기다리는 젖먹이 엄마의 유두 같은, 푸른 풀밭 속에 붉은 점으로 점점이 박혀 있는 뱀딸기를 상상해 보라.  

  지금은 뱀딸기를 따서 먹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어릴 적에는 잘도 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먹을 생각을 했는지 좀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그 시절 그러니까 사십여 년 전에는 먹을거리가 풍부하지 않았고, 학교 가는 길은 평지를 걷기도 하고,  산을 넘어 다니는 고난도의 등하굣 길이었다. 대충 한 시간이 소요되는 거리였으니,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늘 허기져서 무엇인가를 먹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렇다고 돈이 있어서 학교 앞 사거리에서 핫도그나 과자를 사 먹을 형편도 안 되었으니, 당연히 들에 널려있는 야생의 것들이 우리의 먹을거리가 될 수밖에 없는, 그것들에게는 슬픈 운명이 아닐 수 없었다.

  혹시, 그럴 일은 없겠지만, 지금이라도 뱀딸기를 먹어보고 싶은 사람을 위해 먹는 방법을 소개한다. 당연히 뱀딸기를 찾는 게 먼저다. 뱀딸기를 찾을 때는 뱀딸기 주변에 있을 뱀을 쫓아야한다. 딸기처럼 생겼는데, 뱀이 먹는다고 해서 뱀딸기라고 어릴 적에는 알았다. 그래서 뱀딸기 옆에는 늘 뱀이 함께 있을 거라고 단정 짓고 뱀을 쫓았다. 막대기를 하나 들고 풀숲을 휘휘 저어서 혹시라도 있을 뱀을 쫓은 다음 뱀딸기 무리 중 크기가 크고 빨갛게 잘 익은 뱀딸기를 골라 딴다.  예쁜 뱀딸기가 손에 있다면, 그 다음에는 속눈썹을 하나 뽑는다. 눈물이 찔끔 나온다. 그리고 뱀딸기를 입속으로 풍덩 빠트리면 끝이다. 좀 단순한 것 같기도 한데, 속눈썹을 뽑는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왜 속눈썹을 뽑았을까. 뱀이 먹어야 할 딸기를 사람이 먹기 때문에, 뱀의 양식을 빼앗아 먹는 것이기 때문에, 뱀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우리도 무언가 하나를 줘야했다. 그래야 뒤탈이 없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속눈썹을 뽑았던 걸로 기억한다. 

  이렇듯 큰 의미를 갖는 뱀딸기의 맛은? 실망스럽게도 좀 밍밍하다. 겉은 빨갛고 속은 흰색인데, 아주 조금, 개미 눈물만큼 단맛이 느껴질 뿐이다. 딸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딸기가 구름을 나는 맛이라면 뱀딸기는 땅을 기어다는 맛이라고 할까. 잽도 안 되는 맛이지만, 그럼에도 어린 우리의 허기를 책임져 준, 고마운 열매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잠깐 머리를 식힐 겸 도서관 뒤, 화단에 갔더니, 이 식물이 있다. 이 잡초의 이름은 모른다. 다만 이 잡초도 뱀딸기처럼 어린 시절 우리의 먹을거리였기에, 사진을 찍었다. 이 식물은 열매를 먹는 게 아니다. 잎을 먹는다. 한 장씩 따서 먹는데, 신맛이 난다. 길가나 화단에서 마주하는 이 식물을 보고는 옛날을 떠올리기만 할 뿐, 지금은 당연히 먹지 않는다.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기 때문에 그 시절에도 많이 먹지 않았다. 시금털털한 맛을 살짝 즐기기만 했을 뿐. 입맛을 돋우기 위한 식전 메뉴라고 할까.


  어린 시절에 먹었던 뱀딸기와 이름 모르는 잡초를 지금은 먹지도 않거니와 아예 거들떠도 안 본다. 그 시절에는 호황을 누리고 우리의 무한한 사랑과 신뢰를 받은 것들이건만, 세월이 흐르면서, 문명이 발달하고 먹을거리가 풍부해지면서 그 가치를 잃어버렸다. 조금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도 한때는 직장에서 어릴 적 우리의 뱀딸기와 잡초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았건만, 실직한 지금은 누가 거들떠도 보는 뱀딸기와 잡초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것은 참으로, 참으로 슬픈 일이다. 

  그러나 슬픈 일로만 받아들이고 가만히 있을쏘냐. 뱀딸기와 잡초가 누가 보아주지 않고 알아주지 않아도 봄이 오고 여름이 오면 새 생명을 꽃피워 열매를 맺듯 나도 지금의 내 자리에서 최선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보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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