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드름, 이, 호박, 아버지
참, 오랜만에 처마에 매달린 고드름을 보았다. 옆집 할머니댁 처마에서 눈물을 뚝뚝 떨구고 있었다.
며칠 전, 김장을 하러 친정에 갔다가 만난 고드름은 날씨가 풀린 탓으로 제 몸을 녹여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찌할 수 없는 슬픔을 온몸으로 전하고 있었다. 이런 고드름이 참 생경했다. 어린 시절에는 겨울이 되면, 참 많이도 따 먹던 고드름인데. 이젠 고드름을 보기가 어려워졌다. 지붕이 없기 때문이다.
예전 우리집은 슬레이트 지붕을 가진 작은 집이었다. 이제는 흔히 말하는 양옥집이라 불리는 슬라브 집이어서인지 고향집에 가도 쉽게 고드름을 만날 수 없었다. 엄마는 지붕 없이 평평한 옥상에다 고추도 말리고 엿기름를 널기도 하셨다. 지금 옥상에는 된장, 고추장 등을 채운 장독들이 옹기종기 모여 봄을 기다리고 있다. 옥상은 편리하다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어쩐지 예전 같지 않고 올라가서 보면 서운한 마음이 앞선다.
지금은 이를 치과에서 빼지만, 우리는 집에서 뺐다. 대체적으로 두 가지 방법이 있었는데, 그 하나는 문고리와 이에 실을 걸고 문고리를 잡아당기는 방법과 이에 실을 걸고 이마를 탁 때리면서 이를 잡아채는 방법이 있었다. 이 방법들은 문고리나 이에 실을 걸 때가 무섭지만, 막상 빼는 일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문을 밖에서 확 잡아당기면 되었고, 이마을 탁 미는 순간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빠진 이는 피를 닦아내고는 지붕으로 던졌다. '까치야, 까치야,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 하는 노래와 함께. 엄마가 이를 지붕으로 던지며 불러주는 이 노래를 따라 부르며, 정말로 까치가 새 이를 가져다 주겠거니 생각하며 텅 빈 푸른 하늘을 고개를 한껏 뒤로한 채, 오래오래 바라보았던 일이 생각난다. 우리 형제가 육형제이니 빠진 그 많은 이 들은 어디로 갔을까. 지붕에 누워 있다가 정말 까치가 물고 날아갔을 지도 모르겠다.
옥상에 올라서서 마을을 휘 둘러본다. 이제는 노인들만 남고, 외부인들이 많이 들어와 살고 있는 마을에 지붕이 있는 집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아이들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고, 거기다 할아버지들은 일찌감치 하늘의 부름을 받아서 떠나고 할머니들이 대부분인 마을은 한층 고즈넉하게 느껴진다. 뉘 집에서 개가 짖는 소리만 마을의 적막을 깬다.
지금은 실내화를 빨아 신는 아이들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다. 나도 아이 둘을 키우지만, 실내화를 빨아 준 기억이 거의 없다.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 우리가 학교에 다닐 때에는 천으로 된 실내화였다. 학교에서는 손발, 두발, 실내화 검사를 매주 월요일에 실시했다. 그래서 우리는 바쁜 엄마를 대신해 매주 일요일이면 공동 우물에서 빨래를 했고, 그때 실내화도 함께 빨았다. 이렇게 빤 실내화를 슬레이트 지붕에 널었다. 지붕에서 말라가는 서너 켤레의 실내화는 햇빛을 받아 하얗게 반짝거렸다. 지붕은 실내화의 똑똑 떨어지는 눈물도 받아주었다.
지붕이 없어져서 아쉽다는 생각을 하면서 느끼는 한 가지, 가장 중요한 감정이 있다. 아버지와 연관된 일인데, 지금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다. 창고 옆에 방을 하나 들인 아랫채는 텃밭과 붙어있었다. 텃밭에 심은 호박은 줄을 타고 지붕으로 올라가게 했다. 지붕에 호박잎이 무성해지고 호박이 하나 둘 자라기 시작하면 아버지는 사다리를 놓고 지붕 위로 올라가셨다. 그러고는 아직 다 크지 않은 연둣빛 애호박을 따서 내려오셨다. 아버지는 다 익히지 않고 설컹설컹한 식감이 있는 호박국을 좋아하셨다. 아버지가 호박을 따러 사다리를 오를 때면 나는 그 옆에 붙어서서 한 칸 두 칸 사다리를 오르는 아버지의 발과 점점 지붕 위로 사라져 가는 아버지를 두근거리며 지켜보았다. 아버지는 무섭지도 않은 지, 지붕 위에 올라 성큼성큼 걸어다니며 호박을 찾아다녔다.
이제 호박을 찾아다니는 아버지도, 지붕도 내 곁에 없다. 지붕이 사라지면서 하나 둘 내 추억도 사라져간다.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면서, 가끔 내 마음을 두드린다. 그러나 지금 지붕 없는 집에서는 나의 든든한 마음의 지붕 들이 나와 함께 산다. 남편과 딸과 아들. 이들을 지붕 삼아 오늘도 나는 행복한 삶의 노래를 부른다. 까치에게 이를 던져주며 부르던 노래를. '까치야, 까치야, 헌 행복 줄게, 새 행복 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