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를 문안한다 -
J야, 안녕!
군대 입대했다는 소리 들었다. 공군으로 입대했다고. 네 엄마로부터 네게 위문편지를 보내줄 것을 부탁 받고 이렇게 네게 편지를 쓴다. 손글씨로 쓸까 하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것에 더 익숙한 탓에 딱딱하지만 인쇄를 해서 보낸다.
‘위문편지’는 어릴 적, 초등학교 때 ‘국군 아저씨께’로 시작하는 위문편지를 썼는데, 네게 위문편지를 쓰면서 그때의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 짓지 않을 수 없다. 잘 지내고 있지. 힘들어도, 잘 못 지내도, 잘 지내야 한다!
너도 알다시피 자신이 늘 원하고 힘들지 않고 편한 것만 하면서는 세상을 살 수 없지 않겠니. 힘든 일도 이겨내고, 고난과 시련도 이겨내고 힘들게 살아도 봐야지 세상이 더 아름답다는 걸 알 수 있게 되는 것이 인생이야.
이런 고리타분한 이야기 말고, 그나저나 재하 넌, 네게 편지를 쓰고 있는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니. 얼굴이나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사실 내가 좀 바쁘게 살았지.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신경을 쓰지 못 하고, 오직 나 자신의 삶에 파묻혀 살았어. 그런데 나만을 위해 살았던 삶이, 뭐라고 말해야 하나, 그래 바보 같다고 해야 할까. 후회스럽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돌이켜보건대 그때의 삶이 참으로 안타깝다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한단다.
오늘은 첫 편지니까, 내 이야기를 해야지 네가 나를 더 잘 알게 될 것 같아 내 이야기를 주로 할게. 괜찮지.
네가 살면서 보아온 대로 우리 집은 자녀들이 많은 데가 가난한 살림살이로 가난하고 힘들게 살았지. 네 엄마는 공부를 무척 잘했는데도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와 대학을 가는 수순을 밟지 못하고 실업계 고등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구해 돈을 벌어야 했어. 나도 마찬가지였지. 나는 한술 더 떠서 야간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그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고. 아르바이트 자리가 고등학교 선생님 댁 가정부였어.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갔었다. 아침 5시에 일어나서 도시락 8개를 싸고 가족들이 모두 출근하고 학교로 간 후부터는 청소며 빨래 등 집안일을 하고 4시가 되면 나도 학교에 등교했다가 10시에 수업 끝나면 버스나 걸어서 돌아와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를 하는 것이 내 일과였지. 주말에도 집에 잘 보내주지 않고 명절에도 명절 당일에 집에 갔단다. 그렇다고 그분들이 아주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어. 그럭저럭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열여섯 살 사춘기소녀에게는 너무나도 힘들고 외로운 시간이었지. 당연히 엄마한테도 그 누구에게도 힘들다고 말하지 않았어. 오직 그때 함께 다녔던 친구들만 알았지. 부모님께 알리고 싶지 않았단다. 그러면 부모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싶어서. 그냥 그 모든 짐을 내가 짊어졌어. 많이 울었어. 정말 많이 울었다. 코피도 많이 흘리고. 2년을 그 집에서 버티고 1년은 집에서 다니고는 상고를 졸업했는데, 자격증을 다 따지 못해서 또 취업이 어려웠어.
개인회사를 1년 다니다가 농협에 계약직으로 다니게 됐는데, 또 이때부터 지긋지긋한 삶이 시작되었단다. 금전을 만지고 많은 사람들을 응대하는 일들이 너무나 힘들었어. 그래서 밤마다, 일과가 끝나면 거의 매일 밤 직원들과 어울려 술을 마셨지. 취하기 위해, 모든 것을 잊고 싶어서, 급기야는 죽고 싶어서 빈 배속에 술을 부어넣었어. 술 마시고 울고, 다음날 출근하고, 이런 날들의 반복이었지. 그러다 야간대학을 다니게 되었어. 글을 쓰는 문예창작과. 그러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한 마리도 못 잡는다는 속담처럼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더라. 수업시간에 맨날 졸았지. 그래도 어찌어찌 졸업을 했고, 그나마 앞으로 글을 쓰면서 살아야겠다는 삶의 이정표를 세우게 된 기회였다. 그 후에 농협에서 명예퇴직 바람이 불자 10년을 근무한 농협을 미련 없이 버리고 오산으로 올라가 한신대학교 문창과 3학년에 편입했단다. 이후 이야기는 내일 편지에 쓸게. 한꺼번에 너무 많이 알면 재미없잖아. 후후!
내가 이렇게 옛날 내 이야기, 어렵게 살았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나 때는 말이야”, 라든지 “나는 이렇게 힘들게 살았는데, 너는 이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따위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절, 힘들고 괴롭고 외로웠던 시절을 그런 부정적인 생각들로 채우고, 나 자신을 괴롭히며 살지 않고 좀 더 긍정적으로 행동하고, 무언가 그것들을 이겨낼 것을 찾아서 시간이 아깝지 않게 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을 이야기하고 싶어서란다. 제일 안타까운 건, 책을 많이 읽지 않았던 것을 후회한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책을 읽고 싶다. 아마 책을 읽는 시간을 많이 가졌더라면 그렇게 술을 마시고 내 몸을 망치는 대신 무언가 미래를 꿈꿀 수 있고, 타인을 이해할 수 있고, 타인의 아픔에 동참할 수 있는 사람이 지금보다 더 일찍 될 수 있었을 거라 확신한단다.
J야!
너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모르겠지만, 나는 삶이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삶이란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런 일들이 있기 때문에 한층 더 아름답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 지난 내 삶이 비록 힘들고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나는 그 삶에도 감사한단다. 그런 삶들이 나를 만들고 지금의 나를 있게 했으니까. 지금 네가 처해 있는 상황, 군대 생활이 얼마나 힘든지는 나는 모르지만, 그 생활에서 최선을 다하기를 바란다. 그 삶에서 너무 힘든 것만 생각하지 말고 뭔가 즐거운 일을 찾아보고, 이렇게 일상을 살 수 있음에 감사해보면 어떨까 싶구나. 쉽지 않겠지만, 마음을 넓게 가지고 늘 웃으면서 살기를 바라.
J야!
네게 되도록 편지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쓰려고 한다. 혹시 하루라도 빠질 수 있겠지만, 되도록 그렇게 하려고. 내가 보낸 편지가 네 삶의 한 자락에 스며들어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맺을게. 안녕.
2021. 06.28(월) 넷째 이모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