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일까, 그림일까. 좀 혼란스럽지 않은가. 사진이다. 콩고라는 식물 사이에 리시안사스 꽃과 카네이션을 꽂았다. 작은 꽃병에 꽂아놓고 위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 꽃에는, 그래 꽃 색깔만큼이나 깊은 보랏빛 서사가 있다. 선명한 보랏빛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처음부터 리시안사스와 카네이션이 함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콩고만 있었고, 그후에 리시안사스가 하루정도 함께 있다가 카네이션이 마지막에 합류한 후에 이 작품이 연출됐다.
콩고는 수경식물이다. 누군가로부터 작은꽃병에 꽂힌 콩고를 선물받은 후, 사무실 책상 위에 두고 물도 자주 바꿔주면서 정성을 쏟았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갈수록 연둣빛 새싹을 하나둘 피워내며 병을 가득 채워나갔다. 푸른 빛의 콩고는 하루를 푸르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날씨가 흐린 날에도 콩고잎은 푸른 빛을 내면서 뿌리를 깊게 내려갔고, 햇빛이 쨍한 날에는 짙푸른 잎이 반짝거렸다.
콩고는 내 책상 위에서 내 사랑을 듬뿍 받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며칠 전, 출근해서 커피를 마시려고 탕비실에 갔을 때, 쓰레기통에 버려진 리시안사스를 만났다. 리시안사스는 다른 꽃들과 함께 쓰레기통에서 맥없이 쓰러져있었다.
꽃바구니 안에 있던 꽃들이었다. 사무실에 방문했던 사람의 손에 들려서 함께 왔던 꽃바구니는, 그날 사무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탄성과 환호 속에서 수줍고도 자랑스럽게 탁자의 가운데를 차지했었다. 차츰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가 사라지고, 이제는 꽃을 쳐다보는 사람이 드물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급기야 하나둘 시들어가는 꽃을 못내 못마땅하게 여기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꽃바구니 안에서 빽빽하게 꽂힌 채 아름다움과 싱싱함을 자랑하던 꽃들은 탁한 공기 속에서 천천히 시들어갔고, 사람들의 관심도 사라졌다. 한 순간의 환호만이 꽃들을 반겼을 뿐, 그후에는 천천히 잊혀져갔다. 세상 모든 일들이 그러하듯이.
그리고 어느 날 아침 꽃들은 쓰레기통에 무참히 버려졌다. 아직 시들지 않은 꽃들과 함께 모두 폐기처분 된 것이다. 그 속에서 리시안사스 꽃을 주워 왔다.
줄기 끝을 비스듬히 잘라 주고 콩고와 함께 꽃병에 꽂았더니, 고개를 떨구었던 꽃들이 싱싱함을 되찾았다. 그리고 얻어온 카네이션을 꽂았다. 아직 피지 않은 분홍 봉오리를 활짝 핀 리시안사스와 함께 꽂았더니 한층 더 품위있고 풍미있는 한폭의 그림이 되었다.
꽃은 시간이 지나면 시들 것이므로 시들기 전에 기념할 무언가로 남겨놓고 싶었다. 한 번 죽었다 살아난 목숨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는 것. 스마트폰도 있겠다 사진으로 남겨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여 꽃병을 사무실 바닥에 내려놓고 스마트폰으로 찰칵찰칵 몇 번을 찍었다. 그중 보랏빛 꽃과 푸른 잎사귀가 잘 드러나면서 분홍 봉오리가 수줍은 듯 내밀어진 모습이 조화를 이룬 한 장의 사진을 골랐다. 몇 사람들에게 보냈더니, 사진인지 그림인지 헷갈린다고 했고, 꽃을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는 답장이 왔다.
일주일 정도 꽃은 싱싱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내 책상을 지켜주었고,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다. 지금은 물을 자주 갈아주어도 리시안사스 꽃이파리가 힘이 없다. 그래도 암술과 수술을 내보인 채, 처연히 웃고 있다. 카네이션은 꽃이 필지 확신할 수가 없다. 꽃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피고, 최선의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했고, 할 일을 다했듯이
나도 꽃에게 최선을 다했으므로, 그것으로 좋을 일이다.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이것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일이라고 한다면 너무 소박한 마음인가. 그렇다면 언제까지나 소박하게 살기를 바라면서, 꽃들과의 이별을 준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