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원은 애들 걸음으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어 2학년 전학 이후 국민학교 졸업 때까지 학교 봄가을 소풍을 갔던 곳, 게다가 사생대회라는 어려운 말로 헷갈리게 했던 그림 그리기 대회까지 하면 일 년에 세 번은 갔던 곳, 그곳이 궁궐이었던 건 나중에 알았고 어린이대공원 생기기 전 까지는 놀이기구 타고 동물 구경하던유원지, 그리고 내가 다니던 학교는 부근 '창경국민학교'였다.
아무튼, 전학한 학교는 뭔 시범학교 타이틀이 많았던지 '불소'로 가글 하는 양치질 교육, 간식지원 같은 다른 학교에서 하지 않는 것들을 하느라 바빴고, 덕분에 장학사가 수시로 들락거려 학생들이 학교 대청소에 동원되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 학교에 베지밀이 등장했다. 이제야 추측해 보면 매달 총금액의 절반 정도는 본인이 선불로 내고 나머지는 교육청 또는 업체에서 지원해 주는 그런 게 아니었나 싶은데, 나는 그것 먹을 돈을 엄니에게 받을 수 없어 절반 넘는 아이들이 신청한 베지밀이 무슨 맛일까 궁금해하며 남 먹는 것을 구경만 하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장기 결석자 때문에 베지밀이 쌓이자 모아 두던 선생님께서 고민 끝에 이런 결정을 내리셨다.
"신청 안 한 사람 나와서 줄 서라"
"아~해 봐"
"아~~~"
그렇게 녹색 글씨가 손에 묻어날 것처럼 허름한 유리병에 담긴 200ml쯤 되는 두부물은 줄 서 있는 아이들 입으로 쪼르륵 하강해 한 모금씩 배분되었는데, 어미새가 물어온 곤충을 받아먹는 아기새처럼 두어 병을 열댓 명 아이들이 나눠 마셨다.
감질나는 한 모금,
이후 베지밀은 친근하게 다가왔다. 나중에 베지밀 B가 나와 달달함을 더해줬을 땐 우유보다 더 사랑하는 음료가 되었고, 오늘 같은 날 새벽 배송으로 출출하거나 목마를 때 사랑하는 음료가 되었다.